3주차_위기인가? 기회인가?

궂은 날씨 (이것은 싸래기눈인가? 우박인가?)

by 슬로우 러너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는것 같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남들과 다름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부딪히며 학교생활을 한다. 인종차별과 문화 차이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운동하려고 학교 운동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정의 평화와 관계를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인정한다. 지난주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집을 나서기 전에 워밍업으로 동적 스트레칭을 먼저 했다.


첫째 아들은 기침이 조금 있어서 오늘은 쉬기로 했다. 엄마도 날씨가 조금 쌀쌀해서 집 안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 둘째 딸, 막내 아들 이렇게 넷이서 10분 정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움직이며 워밍업을 했다.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둘째 딸의 마음이 이리 저리 흔들렸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 앞에까지 왔는데 갑자기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딸은 이 정도 날씨면 후드티 하나만 입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생각했을 때 그정도 날씨가 아니었다. 기온이 영상 4도이고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7도 정도 였다. 운동하고 땀이 식으면 춥기 때문에 잠바를 입고 나오라고 말했다. 여기서부터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딸은 자신이 운동화를 신었으니 엄마에게 자신의 방에 있는 잠바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부탁이었지만 부탁처럼 들리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엄마는 딸에게 너가 직접 가서 가져오라고 말했다. 몇 분을 신경전을 벌이다가 딸은 마음을 결정했다.

"그럼 나 오늘은 안 가."
환절기 날씨 만큼처럼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이 변하는것 같다.

결국 아빠와 막내 아들, 이렇게 두 사람만 학교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약속했던 것처럼 400m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사람에게 $2를 상금으로 주기로 했다. 형과 누나가 불참(기권)했기 때문에 막내 아들은 천천히 달려도 1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싸래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착해서 운동장을 3바퀴 달리는데 눈이 점점 굵어졌다. 바람까지 불어서 얼굴에 부딪혔는데 제법 아팠다. 이정도면 싸래기눈인지 우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 정도 날씨면 막내 아들은 집에 놔두고 혼자 나왔어야 했나...'

아빠는 천천히 뛰면서 고민을 했지만 이제 와서 집에 돌아가기에는 아까웠다. 운동장에는 아빠와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이런 날씨에 운동하러 밖에 나오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았다.


가볍게 달리면서 몸을 풀고 나서, 400m 달리기 기록을 측정할 차례가 되었다. 아빠는 막내 아들과 비슷한 속도로 맞추어서 달릴지 아니면 지난주처럼 최선을 다해서 달릴지 고민을 하다가 기록 욕심이 나서 각자의 속도로 달리자고 말했다. 막내 아들은 5번 레인을, 아빠는 4번 레인을 선택했다.

스크린샷 2025-03-25 오후 2.18.45.png 아빠는 지난주보다 1초, 막내 아들은 11초 느려졌다.
스크린샷 2025-03-25 오후 3.44.35.png 큰 아들은 1번만 뛰어서 기록이 꺾은선 그래프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결승선에 도착해서 시계를 확인해보니 1분 24초였다. 분명 중간에 느낌으로는 지난주보다 빠른것 같았는데 기록은 1초 늦어졌다. 막내 아들은 1분 53초에 들어왔다. 지난주보다 11초 늦어졌다. 옆에서 경쟁했던 형이 없어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제 인터벌 트레이닝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막내 아들의 표정이 별로 안좋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막내 아들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아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왜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막내 아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평소 맑눈광 캐릭터인 막내 아들의 표정이 굳어지자 아빠는 왜 그런지 궁금했다. 뭔가 분명히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이대로는 인터벌 트레이닝은 둘째치고 더이상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막내에게 물어봤다.

"오늘은 그만 하고 집에 가고 싶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빠는 막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왜 그런지 계속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에 다 쓰여있었다. 뭔가 기분이 나쁜게 틀림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형과 같이 쓰는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밖에 없었다.

"나도 몰라!"


아빠가 방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동안 막내는 거실에 나와서 책을 봤다. 엄마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배고프다며 이것 저것 계속 먹었다. 두 시간 즈음 지나고 아빠가 거실에 나와서 막내의 얼굴을 보니 불편한 마음이 풀어져 있었다.

"아까는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보니...

"비밀!"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대답을 피하려고 하는 막내를 붙잡고 계속 물어봐도 속 마음을 알 수 없을것 같아서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왜 삐졌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풀어졌으면 그걸로 됐다.'


봄의 따스함과 겨울의 쌀쌀함이 왔다 갔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봄이 찾아온 줄 알았는데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환절기다. 날씨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게 아니라 사람 마음도 그렇다. 사춘기 아이들도 그렇고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막내의 마음도 예측하기 어렵다. 엄마 아빠 마음도 흔들리는 날이 다반사이다.


싸래기눈과 바람을 동반한 궂은 날씨 때문에 달리기 기록이 영향을 받아서 지난주 보다 조금 느려졌다. 또한 날씨와 마음의 변동 덕분에 형과 누나가 불참(기권)해서 막내는 참가한 것 만으로 부전승을 했다. 형과 누나가 오늘은 쉬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막내가 그 말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오늘은 나도 하루 쉴까?'

막내가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형과 누나 때문에(주변의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형과 누나가 달리지 않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막내는 아주 쉽게 $2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할 때는 열심히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이 안할 때는 평소보다 조금 적게 해도 눈에 두드러진다. 운동, 공부, 일... 기분 좋고 상황이 괜찮을 때는 누구나 어느 정도 한다. 반면에 마음이 힘들고 상황이 별로 도와주지 않을 때, 변함없이 꾸준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막내가 400m 달리기를 하기 전까지는 분명 기분이 괜찮았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결승선에 들어올 때 표정이 안좋았다. 그 사이에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만약, 아빠가 자신의 기록 갱신에 욕심을 두지 않고, 막내 옆에서 나란히 뛰며 격려해주고 응원해 주었다면, 두 사람 모두 기분 좋게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철이 덜 든 아빠는 오늘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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