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 어른 vs 아이의 저울질

소설 『모비 딕』

“니 감정만 중요한 게 아냐!”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다. 언성까지 높았으니 더구나 그랬다. 날밤이가 10살을 갓 넘겼을 무렵 같다. 그 순간 날 쳐다보던 날밤이의 눈빛이 10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배신감과 슬픔과 자책감이 깊이 어린 눈빛.

로드킬을 당한 길고양이와 마주친 날이었다. 눈발이 실린 칼바람 추위가 매서웠던 밤 11시 무렵, 늦은 업무를 마치고 날밤이를 픽업한 귀갓길로 기억된다. 빙판길 반 질퍽길 반에 컴컴하기까지 한 경사로였다. 조심조심 거의 내려왔을 무렵, 전조등 앞에 누운 회갈색 고양이를 겨우 알아봤다. 제법 덩치가 컸다.

하반신이 짓눌려 있었다. 흥건하게 말라붙은 검은 핏자국도 보였다. 그런데, 축 늘어진 뒷다리를 겨우 끌면서 꿈틀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앞발을 날카롭게 휘두르며 험악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듯했다. 또 치일 수 있으니 굵은 막대를 주워들고 갓길로 밀어둬야 했다.

어느새 하차한 날밤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장갑은 없었고 외투도 차에 벗어둔 채였다. 덤빌 듯 갸르릉 거리며 나무막대를 쳐내는 고양이에 붙들린 아빠를 도우려 했던 건지 어쨌는지, 그 날씨의 그 시각에 어두운 눈길 경사 차로로 자꾸만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내 시선은 날밤과 고양이 사이에서 혼비백산했다. 급하게 고양이를 밀어놓고는 서둘러 날밤이를 태우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운전중 어지러운 사정에 신고는 늦춰졌다. 당장 급하지는 않은 상황이고 나와 날밤이 마음도 가라앉혀야 했다. 날밤이는 계속, 돌아가면 안 되냐고 했다. 나는 집으로 마저 가자고 달랬다. 맨손으로 어쩔 수 없었고 위험했던 상황도 떠올랐다. 날밤을 데려다 놓고 다시 나올까도 고민해 봤지만 혼자 두기엔 또 아직 불안했다.

귀가하고서도 그런저런 일에 날밤이는 불편했던 듯했다.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일상적 눈높이는 신고로 규격화돼 있으며 그건 눈 감아버리는 게 아니라고 여러 번 설명했다. 하지만 날밤이는 잠시나마 집으로 데려오던가 최소한 옆을 지켜주기라도 하자는 듯했다. 나는 혼비백산했던 장면을, 날밤이는 공포와 추위와 위험 속의 울음소리를 붙잡고 있었다.

“니 감정만 중요한 게 아냐!” 결국 소리치고 말았다. ‘네 감정은 안다만 그렇다고 물불 안 가리면 안 된다, 게다가 아빠가 어벤져스냐’ 뭐 대충 그런 뜻을 내뱉고야 만 듯하다. 평소 주변의 불행 앞에서 약은 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날밤이의 미래에 대한 남모를 불안함도 은근 깔린…. 날밤은 움찔했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그때의 내 비좁았을 눈빛이 제발 날밤이를 깊이 찌르지 않았기를, 아니 아예 무의식 속에라도 남아 있지 않기를 헛되이 바라며 남몰래 오래 괴로웠다. 그 괴로움에서 헤어나는 법을 깨닫게 된 건 소설 『모비 딕』을 읽고 나서였다.

누구나 저마다의 ‘뇌피셜’에 붙들려 살아간다. 나름의 이유와 감정 때문에 물불 안 가리는 불굴의 의지로 주변 사람을 이끈 인물 중 하나가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이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선장에게 태클을 걸면서 둘의 말다툼이 벌어진다.

『모비 딕』 - 에이해브 vs 스타벅

대충 170년 전의 전 세계 바다가 배경이다. 모비 딕이라는 새하얗고 거대한 향유고래를 추격하는 고래잡이배 피쿼드호 이야기. 향유고래는 이빨 달린 생명체 가운데 가장 거대하며 거칠다. 대신 귀한 고래기름이 머리에 가득 담겨, 석유 시대 이전엔 움직이는 시추선이라 할 수 있었다. 대양을 홀로 떠도는 모비 딕은 어마어마한 몸집과 뛰어난 지능으로 수많은 고래잡이 보트와 작살잡이에게 재앙을 안긴 고래로 등장한다.

크고 뭉툭한 이마에는 음습한 주름이 지고 흰 아가리는 비틀려 있고 날카로운 이빨은 칼날처럼 솟았으며, 폭풍우에 찢길 듯한 삼각돛 같은 꼬리를 내리쳐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새하얀 고래…. 포악하고 사악하며 가증스럽고 저주스럽다는, 인간의 두려움을 덧씌운 온갖 수식어가 붙은 악마의 고래이자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다.

늙은 선장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자신의 처지를 강탈당한 인물이다. 작살포가 없었던 당시 보트를 내려 향유고래에게 직접 다가가는 일은 위험천만했다. 에이해브 선장은 이전 항해에서 모비 딕에게 왼쪽 다리를 절단당했다.

복수를 꿈꾸던 에이해브는 어느 크리스마스날 저녁 피쿼드호를 이끌고 미국 동부 해안을 출발했다. 대서양 한복판까지 나아갔을 때, 에이해브는 선원들에게 이 항해의 진짜 목적이 고래기름보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임을 공표한다. 악명 높은 모비 딕 사냥은 높은 명예를 안겨줄 것이다! 제일 먼저 모비 딕을 발견하면 빛나는 스페인 금화를 주겠다! 선원들은 열광했고 술자리는 떠들썩했다. 오직 일등항해사 스타벅만이 에이해브를 반대하고 나섰다.

스타벅  :  에이해브 선장님, 나는 모비 딕의 비뚤어진 아가리건 죽음의 아가리건 겁내지 않을 겁니다. 그게 우리가 하는 고래잡이 일에 정당한 것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저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만약 복수에 성공해도 그놈한테서 고래기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을까요? (…) 녀석은 눈먼 본능에 따라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인데, 이건 미친 짓입니다! 어리석은 동물에게 원한을 품다니, 선장님, 신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에이해브  :  그놈 너머에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하지만 녀석이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괴롭히는 것만으로 충분해. 나는 녀석에게서 잔인무도한 힘뿐만 아니라 그 힘을 북돋우는 가늠할 수 없는 악의도 본다네. 그 가늠할 수 없는 존재야말로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이지. 모비 딕이 그 대리인이건 본체이건, 내 증오를 놈에게 쏟아부을 거야. 자네, 신성모독이니 하는 말 따위는 집어치워. 태양이 날 모독한다면 태양이라도 공격할 거니까.”

피쿼드호는 3년 동안 지구를 돌아 태평양 적도에서 모비 딕과 맞닥뜨렸다. 이틀간 사투를 벌였으나 처참하게 패하고 만다. 보트들이 박살 났고 작살잡이 한 명이 또 빨려가 버렸다. 에이해브도 의족이 부러진 채 간신히 구조됐다.

스타벅  :  늙은 선장님, 당신은 절대, 절대 그놈을 잡지 못할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일을 그만둡시다. 악마의 광기보다 더 나쁜 일입니다. 이틀 동안 추격했고, 보트가 두 번 산산조각 났고, 선장님의 다리마저 또 부러졌습니다. (…) 이 이상 뭘 더 원합니까? 이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쓸어가 버릴 때까지 계속 추적할 겁니까? 그놈에게 바다 밑바닥까지 끌려가야 합니까? 그놈에게 지옥에까지 끌려가야 합니까?

에이해브  :  이보게,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이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고 바뀔 수 없는 장면(Act)이라네. 이 바다가 물결치기 10억 년 전에 이미 자네와 나는 리허설을 마쳤어. 바보 같으니! 나는 운명의 부하야. 나는 그저 명령에 따라 행동할 뿐. 이봐, 너희들도 그 부하야. 내 명령에 복종해!

다음날에도 작살질은 이어졌고 분노한 모비 딕은 거대한 머리로 보트가 아닌 본선 피쿼드호를 들이받았다. 3년 전 크리스마스 밤 고래기름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며 출항했던 선원 모두는 마침내 침몰하는 피쿼드호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항해를 저울질하기

당시 포경선은 한번 출항하면 중간 기착지 없이 3~4년 동안 폭풍우의 대양을 홀로 헤맸다. 맛집 없이 임신 네 번 하고 휴가 없이 군대 두 번 가는 시간이다. 에이해브는  40년 넘게 견뎌왔다. 첫 작살을 잡은 이래 육지 생활은 3년이 못 됐다. 쉰 살이 넘어 얻은 어린 아내를 곧바로 생과부로 만들었다며 한탄한다. 소금에 절인 마른 것만 먹으며 황무지 같은 바다의 시련을 버텨 온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험한 항해와 불같은 작살질이 삶의 전부였다.

포경산업의 절정기에 탁월한 실적으로 추앙받아왔던 잿빛 머리 더부룩한 노인은 지난번 항해 때 모비 딕과 대결했다. 박살 난 보트 위에서 단검을 빼 들고 놈에게 뛰어들었다. 거대하고 컴컴한 아가리가 벌어지며 단검보다 날카로운 이빨이 스친 찰나 에이해브의 왼 다리가 찢겨 나갔다. 놈은 그걸 씹어 으깼다. 몇 달의 귀향길 동안 선원들은 그물침대를 찢으며 날뛰는 선장을 묶어놔야 했다. 잘린 다리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영혼을 집어삼켰고 영혼에서 흘러나온 피는 육신을 적셨다.

귀향 후 향유고래 턱뼈를 갈아 만든 상앗빛 의족을 달았다. 170년 전 의족인지라 충격을 받으면 자주 비틀리며 신경을 건드렸고, 쉽게 빠져버리면서 사타구니를 강타해 에이해브를 자빠뜨렸다. 다리가 잘려나간 순간의 공포, 이어진 신체 통증, ‘불구’를 대하는 은근한 무시와 값싼 동정, 독불장군의 말로라는 수군거림, 상처 난 자존감, 타의에 의해 온 인생을 강탈당한 박탈감과 무기력함.

늙은 선장은 분노했다. 복수! 막막한 대양 깊이 정체를 숨긴 새하얀 어둠 모비 딕의 가증스러운 눈동자에 빛나는 작살을 내리꽂아 검은 피를 뿜게 한 뒤, 광폭한 꼬리를 맥없이 늘어뜨린 채 떠오를 때까지 놈을 추적해 마지막 숨통을 끊는 일이었다. 그 항해를 통해 기어이 운명의 탑을 새로 지으려 했다.

개신교 세계관에 갇힌 19세기 미국이었다. 빈부격차도 인종차별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에이해브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조차 신의 의지라 여겼다. 신의 대리인 모비 딕을 향한 분노의 항해가 에이해브에게는 사적 복수를 넘어 압도적인 신의 질서에 맞서 새 운명을 세우려는 자유로운 인간의 굴하지 않는 의지로 여겨졌다.

커피를 좋아했던, 스타벅(Starbuck)에게는 달랐다. 기름을 가득 싣고 귀향하려는 선원들의 부푼 꿈과 생업의 열망, 그리고 가족과 투자자를 내팽개친 항해였다. 다른 포경선의 선장이 바다에 휩쓸린 아들을 수색하는 데 단 하루만 도와달라 애원했을 때에도 차갑게 눈돌릴 수밖에 없던 항해였다. 돛대가 상해 폭풍우에 시달렸고 전염병과 불길한 조짐도 잇따랐던 3년이었다. 결국 피쿼드호가 바다의 거대한 관이 되는 걸 감내해야 했다. 한낱 짐승의 방어 본능을 향해 복수를 벌이려는 뒤틀린 피해의식이 흐르는 몰락의 물길이었고 강박을 되풀이하는 파멸의 항해였을 뿐이었다.

‘한겨울 에베레스트 남서 빙벽 무산소 단독 등반’에 도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클라이머가 있다.  한낮 기온 영하 40도. 끊임없는 크고 작은 눈사태…. 포터도, 자일 파트너도, 산소 장비도 없이 신들의 자이로드롭 같은 세계 최대 수직 얼음벽을 피켈로 찍으며 정상에 도전하는 일이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신들의 봉우리』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에이해브’Ahab를 닮은 ‘하브’Hab다.)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적 감정에 기대는 스타벅이 만약 이 인물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당신의 가치는 절실할 것이며, 고통은 비범할 것이며, 인간과 신의 경계선을 정하는 위대한 도전, 그리고 죽음이 될 것입니다. 혼자 한다면 말입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삼겹살을 포기하면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자기와 가족과 지인의 목숨을 감수해야 했다. 내버리고 감수하는 것의 크기가 얻으려는 가치의 크기를 내 비춘다. 에이해브는 전부 내버렸다. 얻으려는 가치는 40년의 긍지를 빼앗긴 박탈감과 모멸감을 향한 싸움이었다.

에이해브에 공감하며 그 불굴의 의지를 추앙하는 사람도 있고, 스타벅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나름 이유 있는 감정이었다면, 그렇다면 이 항해의 가치를 어떻게 저울질할 수 있을까? 결국 나와 네가 함께 나누고 감내할 괴로움이었는지를 돌아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할 일이었을까. 그 항해의 가치는 당시 사회에서 보편적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보편적일까.

후회막급에서 살아남기

길고양이와 마주친 날 날밤이가 자기감정에 충실했듯 나도 내 가이드라인에 붙들릴 수밖에 없었다. 두 인격체가 가졌던 감정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다. 날밤이의 연민은 우리가 함께 나눌 감정이며 손 맞잡을 이유로 충분한 보편적 가치였다. 나는 어땠을까. 정말 아들의 위험에 대한 우려뿐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언성을 높였을까?

솔직히 귀찮았다. 귀찮은 감정과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음을 부인할 도리가 없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날밤이가 고양이가 불쌍하고 아빠가 걱정스러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내 피곤을 합리화하려고 다른 인격의 허물을 키워 버렸을 뿐이다. 얼마든지 날밤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경찰이 올 때까지 고양이 곁을 지켜줄 수 있었다. 하다못해 담요라도 덮어줄 수 있었다. 편해서 사용하는 일상적 표준인 신고 말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었다.

책임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하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우선하겠다는 사람은 어른이다. 그날 둘 다 자기 괴로움에 묶였지만 날밤이가 나보다 어른이었다. 아빠는 어른을 보여주지 못했다. 날밤이는 그래서, 무책임했던 내 눈빛과 고성 탓에, 이제껏 남의 슬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으로 자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타인이라는 거울이 있어야 내가 보이는 거였구나. 나와 맞선 상대의 괴로움과 감정에 내 그것을 비추고서야 내 것의 가치를 알게 됐다. 그게 함께 나눌 가치가 있는지 비춰볼 때 그 진정한 무게나 왜소한 크기가 드러났다. 그게 자기감정을 분별해 내면의 감옥을 벗어나게 하는 능력, 그러니까 이성이다. 날밤아, 아빠가 정말 잘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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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살아남기  #책임(어른)

인용 대사 출처 : 허먼 멜빌, 『모비 딕』(Moby Dick : or, The Whale), 1851, 미국. Chapter 36과 134.

발췌 번역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