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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당벌레 May 13. 2024

귀엽고 어린 독서가의 시간

<격투기>의 3분 브레이크 (1)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의 상급학교 진학은 폭포를 향해 가는 조각배나 다름없다는 교육학자의 말도 있었다. 다행히 날밤이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이른바 저력을 뿜었다. 독서가 한몫 했다고 여긴다. 초등 취학 무렵까지 집에서 나눴던 독서 경험 몇 가지를 적으려는 참이다. 독서교육이라 할 것까진 못 되고 주변 분들이 낯설어하던 방식 몇 가지만 기억해 본다. 혹 도움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겠다.



읽다 멈추기


만 2~3살 무렵 한글을 읽기 전이었다. 그림과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책들을 읽어줄 때는 가끔 손가락으로 글밥을 꼼꼼히 짚어가며 읽어줬다. 품에 앉은 채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주다가, 특정 장면에서 일부러 멈춘 적이 종종 있다.


‘결정적 문장’ 직전 혹은 중간에서 손가락을 짚은 채 읽기를 멈췄다. 헛기침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어깨를 주무르며 잠시 기다렸다. 그러다 다시 읽어 나갔다. 하루 한 권 정도는 그랬던 것 같다. 한 달이나 됐을까. 거리의 간판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효과에 좀 놀랐다. 어쨌든 어린이집 등원 전까지 녀석에게 맞는 한글 교육은 또박또박 짚어가며 읽어주다 물 몇 잔 마시기였다.


이후부터 멈추는 시간을 조금 늘렸다. 주로 처음 접하는 이야기책이었는데, 간단한 통화를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왔던 것 같다. 궁금증을 살짝 자극한 격이랄까. 돌아오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머지를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짚으며 물어올 때도 있었다. 계속 읽어줄 때도 있었고 가만히 놔두기도 했다. 결정적 장면 직전까지 읽어주고 잠깐 기다리기.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던 것 같다.


읽어 달라 하기


피곤할 때 쓰던 고육지책이었지만 돌아보니 좋은 기억이었다. 녀석이 내게 읽어주는 거였다. 원하는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누워서 들었다. 재미있게 들어주고 맞장구치고 물어보는 일이었다. 입장을 바꿔 보는 일이었고 내 읽기 톤과 태도를 돌아볼 계기도 됐다. 에너지를 쓰게 해서 일찍 잠들게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녀석은 피곤한 아빠에게 뭔가 해줬다는 뿌듯함이 생겼던 것 같다. 또박또박 꼼꼼히 읽는 습관, 어휘력, 집중력, 지구력 같은 효과도 있었지 싶다. 뭣보다 책으로 뭔가 주고받는다는 느낌. 아이만 좋다고 하면 이런 교감은 최대한 오래 잇는 게 어떨까 싶다. 중학생이 돼서까지도 한동안 서로 읽어줬던 기억이 난다.


읽은 책 이야기해 달라 하기


낮 동안 읽었던 책에 대해 자주 들려달라고 했다. 스토리 요약도 좋고 인상적 장면과 느낌도 상관없었다. 만화책도 오케이였다. 이야기를 짜 맞추어 정리하고 느낌을 간추리는 습관이 됐지 싶다. 이것도 피곤할 때 주로 쓴 방법이었지만 늘 그렇듯 칭찬과 추임새, 그리고 이야기 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으려 했다. 아빠와 스파링을 거친 뒤 가끔 뵙는 할아버지를 상대로 실전을 벌여 거금의 용돈을 손에 쥐곤 했다.


초등 입학 후엔 학교 가정통신문으로도 이런 연습을 하곤 했다. 가통 한두 개를 넘겨줬다. 아빠 엄마가 할 일이 있으니 읽어보고 뭔 말인지 알려달라는 식이었다. 가통은 난해한 암호 같은 문장이 많아 성취감과 독해력의 좋은 재료였던 기억이다. 학교생활을 나눌 이야기거리도 됐다. 초등 때 선생님과 친구들 말로는 녀석의 발표력은 압권이었다고 했다.


수준보다 관심사


어릴 때 최애 리스트 중 하나가 기차였다. 기차에 타서도 기차가 보고 싶다 했다. 기차 책을 엄청나게 봤던 터라 일본과 독일 책까지 구해줘야 할 때도 있었다. 증기기관과 디젤 엔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사진이나 그림만 있으면 성인 교재를 보여줘도 관심을 보였다.


호기심과 관심사 앞에서는 ‘연령별·수준별’ 도서란 크게 의미 없었다. 기차, 공룡, 곤충, 목공, 고래 등 지속적 관심사가 생기면 한두 단계 높은 수준의 책과 연결시켜 주려고 애썼다. 안 보면 그만이고. 결과적으로 글밥 많은 책이나 어려운 내용에도 두려움이나 거부감 없이 덤비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쇼츠’ 영상 시대에 날밤이에게 얼마만한 영향으로 남았을지 확신하진 못하지만, 돌아보면 유아기 독서는 딱 두 가지였던 듯하다. 교감과 공부머리.


교감은 책으로 뭔가 주고받는다는 느낌 아닐까 싶다.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지기 마련이고 수준은 부차적이었다. 좋은 책 나쁜 책 구분보다 재미있는 책읽기, 애정 어린 눈맞춤과 스킨십, 함께 하는 놀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관심받았다는 느낌, 이야기와 정서를 주고받은 기억…. 독서를 늘 즐거워하는 하늘이 내려준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저 독서와 멀어질 때를 버텨낼 좋은 기억 몇 조각을 남겨주고자 애썼던 시간이었다.


공부머리는 뇌를 가급적 풀가동시키는 거다. ‘보거나 듣는 공부’보다 ‘받아들이고 간추리고 상상하고 표현하고 설명하는 공부머리’일 테다. 독서는 세 가지 점에서 문제였다. 너무 단순한 방법이었고 너무 돈이 안 들었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나눌 방법이었다. 귀엽고 예쁜 꼬마 독서가들의 행복한 책읽기가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


* 독서 이전에 책 자체와 친해진 이야기는 'Round 1. 두 얼굴의 믿음'

이전 10화 Round 9. 격투의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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