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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당벌레 Mar 11. 2024

Round 7.  두 얼굴의 믿음

희곡 『당통의 죽음』

책 보는 거 참 좋았는데!” 중3 날밤이가 전에 없이 벌게진 얼굴로 대들었다. 흠, 저 녀석이! 아빠라고 치밀어 오르는 게 없었을까.


아장아장할 때부터 책을 좋아한 날밤이었다. 독서 말고 책을 좋아했다는 뜻이다. 누구를 좋아하고 나면 보고 싶고 읽고 싶어진다. 독서로 나아가는 과정도 당연히 같겠지 싶었다.


책을 장난감 삼아 어린 날밤이와 놀았다. 요즘 이런 류의 독서교육이 어떨지 조심스럽긴 하지만 당시 녀석에게는 책이 밟히는 게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었다. 비유가 아니다. 거실 바닥에 늘 책을 흐트러트려 놓았다. 그래서 했던 놀이 중에 책 징검다리 놀이가 있었다. 남아도는 책을 깔아 놓고 신나게 건너뛰게 했다. 바닥 매트는 까는 게 좋더라.

 

블록 삼아 계단을 쌓아 오르내리기도 했던 것 같고, 책 멀리 던지기 놀이도 해봤다. 던져보면 아시겠지만 멀리 날리기 쉽지 않다. 무게를 재서 제일 무거운 책을 찾아오게도 했다. 얇은 책이 더 무거울 때도 있다며 신기해했다. 사람 10명 이상 그려진 표지그림을 찾아오면 젤리를 내주기도 했다. 책으로 꽤 큰 집도 지을 수 있었다.


눈높이보다 높이 매끈하게 꽂은 책보다 바닥에 흩어진 책이 갖고 놀기 좋았다. 2주에 한 번씩 책 수십 권을 대여하곤 했는데, 방이며 거실 바닥에 흩어놓고 출근했다. 대여료가 저렴해 보면 좋고 안 봐도 그만이었다. 반납 무렵에 사달라는 책이 생겼고 이유 불문 사줬다.


책마다 제본 방식이 다른 걸 알려주거나 판권 페이지를 보는 법도 알려줬다. 책 속지마다 다른 질감과 냄새를 느껴보게도 했다. 다 자란 날밤이는 책 대부분을 나눔하거나 대물림했지만 막 눈 뜰 무렵의 첫 책인 노란 하드커버 『초점 맞추기』만은 아직도 책꽂이에 꽂아두고 있다. 책만 한 장난감이 없다 싶어지니 책을 읽으려 들었다. 초등 내내 책을 끼고 살았던 듯하다.



    

중학생 이후 조금씩 책과 거리두기를 시전했다좌뇌형·우뇌형 아이 가릴 거 없더라. 지나면 죄다 스마트형 외뇌로 살더라. 토끼전이냐? 학교 도서관에서야 모르겠고 집에서 책 보는 시간은 확실히 줄어갔다. 오래 모른 척했다. 고1 선행보다 중학 때까지 독서량이 더 중요할 거라는 주의였지만 날밤이 앞에서 ‘책무새’가 되긴 또 싫었기 때문이다. 아뿔싸, 중3이 돼서도 점점 안 좋아지는 듯했다.


그 무렵 아빠는 초중고 교과학습에 도움 될 만한 교양도서 커리큘럼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고교 교과학습의 배경 지식이 될 과목별 도서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없었다면 모를까 생고생을 해 손에 쥔 리스트였고 애초 책 좋아하는 밤이었던 지라 읽히고픈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중3 여름에 기어이 들이밀고 말았다. 나름 추린다고 10권 정도를 줬던 것 같다. 어렵게 결심한 마당에 자칫 어정쩡한 어조는 ‘뻐꾸기 날리기’가 되는 역효과가 날 듯했다. 판단형 아빠는 드물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가운데 최소 여섯 권은 읽자. 이걸로 앞으로는 네 공부에 관여하지 않으마.’ 날밤이는 말없이 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 만 하던?’ 지나가며 물으면 ‘어’라는 환상 속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려니 했다. VCR 판독 결과 개학 때까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부모가 자기 전문분야 직종에서 귀한 인턴 기회를 어렵게 섭외해 왔는데 내키지 않는 대로 해보겠다고 했던 자녀가 대놓고 땡땡이를 친 격이랄까.


“책 보는 거 참 좋았는데!” 얼마 뒤 녀석은  그렇게 대들었다. ‘책 보는 즐거움을, 좋은 기억을 뺏어갔어, 아빠가!’ 정도가 생략된 듯했다. 아, 소탐대실이었나. 허벅지를 더 찔렀어야 했나? 아니다! 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믿었는데! 우리 사이는 급격히 싸해졌다.


믿음사람을 향한 신뢰.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늘 사람 본성 덕에 기쁘고 사람 본성 탓에 슬펐다. 자녀를 믿고 뭔가를 계획하는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인물들은 고전 희곡 『당통의 죽음』 속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였다.



당통의 죽음』 로베스피에르 vs 당통

   

혁명의 용암 같았다.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때 파리 광장 단두대에 솟구친 5만 명의 핏물 말이다. 시민 봉기와 반혁명 전쟁 그리고 공포정치의 회오리가 연일 몰아쳤고 프랑스 전역에서 50만 명이 죽어 나갔다.


대혁명 과정의 기린아는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이었다. 급진 정파 지도자들이었다. 루이 16세의 절대왕정 체제는 물론 성직자와 귀족의 봉건체제까지 전복시킨 인물들이었고 단두대로 상징되는 공포정치를 설계한 단짝이기도 했다.


두 인물은 결국 갈라섰다. 당통은 혁명을 이뤘으니 살육으로 변한 공포정치를 멈추자 했다. 로베스피에르는 미완의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단두대의 온도계가 내려가서는 안 된다 고집했다. 실존했던 이 두 인물의 갈등에 허구를 입힌 19세기 희곡이 『당통의 죽음』이다. 독일 현대극의 아버지, 요절한 천재 극작가 뷔히너의 고전이다.


국가 권력을 틀어쥔 로베스피에르가 당통 일파마저 처형하려는 무렵 당통은 살육의 공포정치를 그만 멈추라며 로베스피에르와 말다툼을 벌인다. (※ 작품 속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모습이기에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대혁명 과정에 대한 관점도 역사의 한 단면으로만 읽히면 좋겠다.)



로베스피에르 : 자네한테 말해두네만, 내가 칼을 뽑을 때 내 팔을 붙잡는 자는 다 내 적이야. 의도가 뭐였든 상관없네. 나를 방어하는 걸 막는 자도 날 직접 공격한 건 아니지만 날 죽이려는 거나 마찬가지지.


당통 : 정당방위가 끝나는 곳에서 살인이 시작되네. 더 이상 사람을 죽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


로베스피에르 : 사회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혁명을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격이야. 구시대 지배층은 아직 죽지 않았네. 온갖 악덕을 저지르는 그들을 몰아내고 대신 ‘건전한 민중’이 들어서야 하네. 악덕은 처벌돼야 하고 미덕은 공포(Schreck)를 통해 실현돼야 해.


당통 : 나는 처벌이란 말을 이해 못 하겠네. 로베스피에르, 자네도 자네의 미덕도 말일세. 그래, 자네는 돈을 챙긴 적도 없고 빚을 진 일도 없지. 다른 여자들과 잔 적도 없을 거고 언제나 단정한 코트를 입으며, 술 취해 비틀거리는 적도 없지. 로베스피에르, 자네는 터무니없이 반듯해.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도덕의 얼굴을 하고 하늘과 땅 사이를 활보하지 못했을 거야. 그건 단지 나보다 남이 더 나쁜 인간이라고 여기는 불행한 취미에 불과해. 자네 안에서 가끔 뭔가가 조용히 읊조리지? ‘거짓말하지 마, 기만하지 마’라고.



로베스피에르는 자기의 양심은 깨끗하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당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양심보다는 가능한 자신의 가치를 꾸미는 나름의 즐거움을 누리고 살 뿐이며, 타인의 그 기쁨을 망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고 맞받는다.



로베스피에르 : 자네, 미덕을 부정하는가?


당통 : 악덕도 부정하지. 세상엔 오직 쾌락주의자(Epikureer)들만 있네. 거친 쾌락주의자와 세련된 쾌락주의자 말일세. 그리스도가 가장 세련된 쾌락주의자였지. 어쨌든 내겐 거친 쾌락주의자냐 세련된 쾌락주의자냐가 사람에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차이점이라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본성에 따라 살아가지. 자기에게 좋은 대로 행동한단 말이세. 그렇지 않나, 청렴한 친구? 너무 잔인한가? 자네가 미덕이라 부르며 신고 다니는 구두 뒷굽을 내가 발로 걷어차 버렸는가?


로베스피에르 : 당통, 악덕은 때로 반역죄가 될 수 있어.


당통 : 부디 악덕을 너무 막지 말게. 진심일세. 그건 뻔뻔한 일일 수도 있어. 자네는 악덕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악덕과 대조되면서 자네가 빛난단 말일세. 뭐 어쨌든 자네 말을 빌리자면, 혁명은 공화국을 위한 것이라는 거였네. 그렇다면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선 안 돼.


(당통 사라지고 로베스피에르 독백) 


로베스피에르 : 갈 테면 가! 저 친구는 혁명의 말을 사창가에 묶어두려는 거야. 그 말의 마부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도 그 사나운 말들에겐 저 친구를 혁명 광장으로 끌고 갈 힘이 충분해. 내 구두 뒷굽이라고? ‘자네 말을 빌리자면’ 이라고? (…)

그래, 저 친구는 없어져야 해. 군중의 행렬 속에서 멈추는 자는 흐름을 거스르는 자야. 짓밟히기 마련이지. 혁명의 배가 저런 자들의 얕은 계산이나 진흙 둑에 좌초하도록 둘 순 없어. 감히 항해를 막으려는 자들의 손목을 잘라야 해. 죽은 귀족의 옷을 벗겨 입고 다니다 그들의 나병에 감염된 자들을 없애야 해!



오래전 여름 구체제 폐기와 시민계급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깃발 아래 파리 민중들은 바스티유 요새의 무기를 탈취했다. 그 이래로 피를 부르는 단두대의 손짓은 멈출 줄을 몰랐다. 옳은 이가 옳은 이를, 그른 이가 그른 이를 끝없이 단두대에 올렸다.


첫 희생자는 특권층인 성직자와 귀족이었다. 몇 년 뒤 신성불가침의 상징 국왕의 목이 날아갔고 왕비의 목도 뒤따랐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이끈 민중들은 뒤이어 기득권 세력을 대학살했다. 그 뒤 이들 급진 정파는 혁명 동지이자 실세였던 온건 정파마저 숙청하면서 독재 권력을 가동하는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급진 정파 내부의 극좌익 파벌에 대한 추가 처형도 이어졌고, 공포정치 1년간 3만 명이 더 희생됐다.


어느덧 혁명은 열렬한 벗이었던 당통의 목까지 동경했다. 언제까지 머리 자르기 놀이를 계속할 거냐며 상대적 온건파로 변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는 그들마저 단두대에 세웠다. 여름 퇴약볕에 녹아내릴 듯한 40kg 칼날 아래 로베스피에르의 목이 드리워진 것은 그 석 달 뒤였다. 반혁명이 일어났고 턱에 총탄이 관통된 로베스피에르는 급진 정파 모두와 함께 목이 떨어졌다.


5년간 50만 명이 죽었지만, 늘 그랬다. 민중이 고팠던 것은 빵이었을 뿐이다. 공포정치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였던 토지개혁은 혁명이 끝나도 말뿐이었다. 프랑스는 총재정부 시기로 넘어갔지만 그조차 나폴레옹 황제의 전제정치로 뒷걸음질 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로베스피에르월세방에서 출퇴근한 프랑스 유일무이한 지도자. 혁명 전 인권변호사이자 평민 대표로서 파리 민중의 신망을 받았다. 그가 검사를 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형을 구형하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애초 독재보다 공화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깊이 신뢰했던 이였다. 당통이 차를 마시겠다며 설탕을 달라 하자 설탕은 악마의 유혹이니 자기 집에 설탕은 없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신의 덕스러운 활동 없는 감각적 쾌락은 악덕이었다. 탐욕과 이기주의, 무절제와 나태함, 사치와 향락 같은 것이었다. 혁명을 이끌게 됐을 때 금욕적 개인 윤리를 혁명의 윤리, 나아가 공동체의 운영 윤리로 확대해 사회적 미덕이 넘실대는 프랑스를 만들려 했다.


“덕이 타고난 열정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로베스피에르에게 인간 본성은 빛 조각이어야 했다. 고결한 덕스러움의 환한 빛을 이루는 일부가 될 건전한 민중을 믿었다. 정치적 격변과 경제난이 이어지자 모두가 자유로워질 공화국을 수호하려면 악덕을 절제하는 개인의 미덕이 절실하다고 여기게 됐다. (로베스피에르 연설문집, 《로베스피에르 : 덕치와 공포정치》, 배기현 역, 프레시안북, 2009. 254p.)


악덕을 억누를 미덕의 수단을 어디서 찾으려 했을까. 본성 내부에서였다. 처벌을 두려워하는 내적 공포감만이 도덕적 인간성을 북돋울 동력이 될 거라 여겼기에 공포와 처형이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당통이라는 흔들림을 지워야 한다.


당통은 미덕을 북돋을 수단만 멈추자는 게 아니었다. 도덕적 절제라는 미덕 자체에 절망했다. 끝없는 살육에 대한 환멸, 민중의 여전한 현실이 주는 부질없음, 건전한 민중이란 혁명이 만든 허상일 뿐인지라 혁명은 혁명을 배반하더라는 회의, 급기야 자신까지 동경하는 단두대의 은밀한 손짓….


살과 피를 지닌 인간 본성은 세련되든 저급하든 쾌락과 욕망 추구였다. 그 본성을 충실하게 껴안는 것만이 유일하게 덕스럽다 여겼다. 그 디딤돌 너머에 세우겠다는 유일한 미덕이란 대체 어느 허공을 걷자는 소리며 어느 연금술사가 면허증을 갖는다는 말인가.


당통의 눈에 로베스피에르는 근엄하게 화장한 금욕주의자이자 불쌍한 엄숙주의자 같았다. 신념의 정당방위를 넘은 정치적 괴물이며, 목마른 이에게는 핏물을 배고픈 이에게는 머리를 던져주면서 갈증과 배고픔의 욕구에서 자유로워지라 했다. 인간은 빛 조각이라기보다 깊은 심연의 수수께끼 조각일 뿐인데.


불신과 무기력에 붙들린 당통의 목소리는 과잉 희망이 조명 받는 혁명의 무대에서 음울한 암전 속 읊조림일 뿐이었다. 눈먼 단호함보다 성찰하는 주저함에 기대려 했으나 마침내 혁명이 그마저도 벌세우려 하자 당통은 파리 유흥가 팔레 루아얄의 쾌락에 젖고 무덤의 허무에 몸을 맡겼다.



눈높이혼자만의 믿음


자유를 바커스의 여사제로 바꾸려는 자*)라며 로베스피에르가 당통파를 몰아세우기 시작한 지 불과 2달 만에 당통은 처형됐다. ‘다음은 자네 차례일세.’ 단두대로 끌려가던 당통이 로베스피에르의 집을 지나며 뱉은 독설이 실현되는 데도 3달이면 충분했다. 수십만의 피가 단두대에 엉겨 붙을 때 혁명의 오랜 동지는 적대했다. (로베스피에르, 위 연설문집, 234p. (바커스 :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로베스피에르는 질서 있는 자유의 공동체에 참여할 인간 본성을 믿었다. 당통은 어둡고 어리석은 다양한 본성의 엉킴을 껴안지 않는 것은 기만이고 억압이라 믿었다. 인간 전체를 믿으면 믿을수록 개개인의 허물 많은 성품에 눈 흘기게 되고, 개개인의 허물 많은 성품에 마음을 쏟을수록 인간 전체를 못 믿곤 한다. 사람을 향한 믿음은 어디쯤 서는 걸까.


믿음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기대라 적혀 있더라. 기대는 기준이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달랐지만 같았다. 선한 본성이든 어두운 본성이든 사람을 믿는다고 하면서 타인에게 자기 기준과 기대를 비추고 실망과 분노를 전가했다. 그게 좌절되자 한 명은 괴물이 됐고 한 명은 절망했다. 어두운 시대에는 그 여정의 끝에서 실제보다 더 많이 미워하기, 그러니까 혐오와 마주치기 쉬웠다.


한창때 아빠는 직장 ‘메뚜기족’이었다. 동료를 향한 좌절과 울분에 휘감겨 지냈던 적이 많아 어디에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노력은 소진되는 듯했고 진의는 이용당하는 듯했다. 신뢰를 하려고 할수록 줄어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서 떠넘겼을 뿐이었다. 상대가 내 눈높이 같기를 바라는 건 신뢰라기보다 합격이다. 비교·판독·채점이다. 나 속의 타인인 또 다른 나조차 실은 그 커트라인을 넘지 못한다.


날밤이 키울 때의 착각이기도 했다. 부모 눈높이를 떠넘기는 게 믿음이며 부모 마음에 든다고 믿는 게 신뢰라면 누군들 못 할까. 책 지정 문제로 충돌했던 그 날, ‘그래도 믿었는데!’라며 아빠가 속상했던 날 날밤이도 속으로 외쳤을 게다. ‘제발 날 좀 믿어주세요!’ 신뢰의 뒤끝이 왜 이럴까. 내 기대에 틀리더라도, 혹시 내 기대에 틀리기에 필요한 게 신뢰 아닐까.



믿음의 품격달라서 믿는다

  

몇 달 뒤 예비 고겨울이었다. ‘문송한’ 내가 이과 개념을 이해할 일이 생겼다. 어째서 별의 질량이 커질수록 표면 온도가 올라가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안드로메다발 수식과 블랙홀행 개념의 아사리판이었다. 그냥 모를래 하며 접으려다 장난삼아 날밤이에게 보였다. ‘진짜 공부는 이런 거야, 까불지 마’ 하는 마음이었을 수 있다. 고1 과학 선행조차 안 된 녀석에게 자극이 될지 모른다는 속셈이었을 수도 있다.


녀석이 망설임 없이 ‘약을 파는’ 게 아닌가. 진지한 데다 신명까지 난 표정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설명인지 자기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도넛을 그리더니 별의 수축과 핵분열이 어쩌고 원소 주기율표가 저쩌고 하다가 급기야 E=mc2이니 아리스토텔레스 삼단논법에 따라야 한다 뭐 대충 그랬다. 주워들은 걸 죄다 갖다 붙이는 듯했다.


딱 하나 알아먹었다. 어설픈 방식과 속도일지라도 얼마든지 맹렬하게 배움과 만나고 있었구나. 나름 교과 배경지식을 주겠다며 쌓은 아빠 시간만 애틋했구나. 아빠의 아쉬움과 배신감과 씨름하느라 네 시간과 속도는 못 봤구나. 방식이야 여러 가지일 텐데…. 그 뒤로 녀석 방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도 불안이 줄었다.


어쩌자고 신뢰를 한쪽이 하는’ 것이라고만 여겼을까. ‘우리 사이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서로의 허물이 건너다녀 허물없어지는 감정이 신뢰일지 모르겠다. 허물 많은 나를 대면하고서야 받아들이는 허물 많은 너와의 끈끈함 말이다. 그 끈끈함만이 상호관용의 고단함을 떠받친다. 서로 맞선 공감들을 상호관용 속에 공존시키는 고단함. 그 고단함은 서로를 포기하게도 했지만, 각자의 기준이 함께 건너다닐 우리의 더 나은 기준을 찾아 나서게도 했다.


상대의 다른 점만 부각하는 혁명의 시대에는 옳고 그름이 허물없이 섞일 신뢰의 자리가 있을 수 없었다. 일상 속 신뢰 프로세스가 뭔지는 날밤이가 알려줬다. 사람 고쳐 쓰지 못한다니 남이 내 마음 같을 것이며 내가 남의 눈높이 같을까. 서로 다른 게 만나고서야 한 뼘씩 자라야 한다는 걸 느낀다. 달라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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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신뢰) #독서교육

인용 대사 출처 : G. Büchner, 『당통의 죽음』(Dantons Tod), 1835, 독일. 1막 6장. 독어판 발췌 번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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