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당통의 죽음』
로베스피에르 : 자네한테 말해두네만, 내가 칼을 뽑을 때 내 팔을 잡아당기는 자는 다 내 적이야. 그 의도가 뭐였든 상관없네. 나를 방어하는 걸 막는 자도 날 직접 공격한 건 아니지만 날 죽이려는 거나 마찬가지지.
당통 : 정당방위가 끝나는 곳에서 살인이 시작되네. 더 이상 사람을 죽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
로베스피에르 : 사회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혁명을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격이야. 구시대 지배층은 아직 죽지 않았네. 온갖 악덕을 저지르는 그들을 몰아내고 대신 ‘건전한 민중’이 들어서야 하네. 악덕은 처벌돼야 하고 미덕은 공포(Schreck)를 통해 실현돼야 해.
당통 : 나는 처벌이란 말을 이해 못 하겠네. 로베스피에르, 자네도 자네의 미덕도 말일세. 그래, 자네는 돈을 챙긴 적도 없고 빚을 진 일도 없지. 다른 여자들과 잔 적도 없을 거고 언제나 단정한 코트를 입으며, 술 취해 비틀거리는 적도 없지. 로베스피에르, 자네는 터무니없이 반듯해.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도덕의 얼굴을 하고 하늘과 땅 사이를 활보하지 못했을 거야. 그건 단지 나보다 남이 더 나쁜 인간이라고 여기는 불행한 취미에 불과해. 자네 안에서 가끔 뭔가가 조용히 읊조리지? ‘거짓말하지 마, 기만하지 마’라고.
로베스피에르 : 내 양심은 깨끗하네.
로베스피에르 : 자네, 미덕을 부정하는가?
당통 : 악덕도 부정하지. 세상엔 오직 쾌락주의자(Epikureer)들만 있네. 거친 쾌락주의자와 세련된 쾌락주의자 말일세. 그리스도가 가장 세련된 쾌락주의자였지. 어쨌든 내겐 거친 쾌락주의자냐 세련된 쾌락주의자냐가 사람에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차이점이라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본성에 따라 살아가지. 자기에게 좋은 대로 행동한단 말이세. 그렇지 않나, 청렴한 친구? 너무 잔인한가? 자네가 미덕이라 부르며 신고 다니는 구두 뒷굽을 내가 발로 걷어차 버렸는가?
로베스피에르 : 당통, 악덕은 때로 반역죄가 될 수 있어.
당통 : 부디, 악덕을 너무 막지 말게. 진심일세. 그건 뻔뻔한 일일 수도 있어. 자네는 악덕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악덕과 대조되면서 자네가 빛난단 말일세. 뭐 어쨌든 자네 말을 빌리자면, 혁명은 공화국을 위한 것이라는 거였네. 그렇다면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선 안 돼.
(당통 사라지고 로베스피에르 독백)
로베스피에르 : 갈 테면 가! 저 친구는 혁명의 말을 사창가에 묶어두려는 거야. 그 말의 마부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도 그 사나운 말들에겐 저 친구를 혁명 광장으로 끌고 갈 힘이 충분해. 내 구두 뒷굽이라고? ‘자네 말을 빌리자면’ 이라고? (…)
그래, 저 친구는 없어져야 해. 군중의 행렬 속에서 멈추는 자는 흐름을 거스르는 자야. 짓밟히기 마련이지. 혁명의 배가 저런 자들의 얕은 계산이나 진흙 둑에 좌초하도록 둘 순 없어. 감히 항해를 막으려는 자들의 손목을 잘라야 해. … 죽은 귀족의 옷을 벗겨 입고 다니다 그들의 나병에 감염된 자들을 없애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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