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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당벌레 Apr 01. 2024

Round 4.  아들, 카운터펀치를 날리다

영화 『결혼 이야기』

“하나도 없어.” 날밤이의 짧은 대답에 10중 충돌사고를 내지 않았던 게 용하다. 시공간을 뒤흔들어버린 역대급 ‘멘붕’이었달까.


차 속에서 날밤이와 참 신나게도 떠들었다. 특히 어릴 때. 픽업뿐 아니라 장거리 가족 여행을 자주 했다. 자연히 운전대를 잡고도 할 수 있는 놀 거리를 떠올리게 됐다. 즐겨 했던 게 ‘차 번호판 놀이’와 ‘공통점 찾기 놀이’였다. ‘스무고개’ 같은 일반적 놀이 외에 저런 놀이까지 만들어냈던 건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초등 저학년 때 날밤이는 또래보다 사칙연산이 느리고 자주 틀렸다. 미취학 때 배운 적이 없어서다. 사칙연산과 암산 학습의 레전드 『기적의 **법』을 떠안겨놓고 풀었니 안 풀었니 하기 싫어서 떠올린 게, 운전 중 차 번호판 놀이였다.


임의의 번호판을 택한 뒤, 각 자릿수를 더해 끝자리 수를 정했다. 3758이면 3+7+5+8=23이니 아빠의 끝자리는 3이 된다. 날밤이가 그보다 높은 끝자리 수가 나오는 번호판을 발견하면 이기는 거였다. 번호판 천지라 날밤이는 부지런히 찾았다. 재미있어할 무렵 두 자리 더하기 두 자리, 뺄셈, 곱셈, 나눗셈…. 20~30분이 훌쩍 갔다. 보상은 필수.


공통점 찾기 놀이는, 사고 능력의 끝판왕쯤 될 거라 여기고 만든 놀이였다. 종이 vs 보트처럼 얼핏 관계없는 두 개념 사이에서 떠올릴 수 있는 공통점을 최대한 많이 뽑는 놀이였다. 가령 재료가 나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 개씩 주고받다 막히는 사람이 진다. 처음부터 너무 동떨어진 두 개념은 버거웠다. 주로 나한테.


녀석이 뽑은 공통점의 이유를 들어본 뒤 무조건 칭찬해 줬다. 날밤이는 귀뚜라미 vs 다스베이더에서 ‘되고 싶은 것(희망 사항)’이라는 공통점마저 찾았다. 한쪽은 노랫소리가 아름답고 다른 쪽은 간지 좔좔 이란다.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야 녀석도 더 뽑아내려 애썼으니까. 3~4가지 뽑기 만만치 않았다. 조심운전!


동떨어진 것을 하나로 잇는 개념을 다양하게 상상하는 습관은, 의미 직관형 아빠에게는, 사고· 창의·분석·융합·직관·공감·연상·추상화의 결정판으로 보였다. 톱 CF모델과 상품 특징의 공통분모를 찾는 능력, 완전히 다른 기획안 간 공통 전략을 추상하는 능력, 사회 이슈와 원주율 공식을 연결하는 능력, 모험소설 속 말다툼 주제와 육아 갈등을 매개시키는 능력이니까.


전능한 신과 유한한 인간을 연결하는 ‘메시아’, 나와 대중을 연결하는 ‘미디어’, 그리고 SNS 같은 ‘메신저’ 등은 고대 유럽 어원이 같다. 언어 자체가 나와 세상을 만나게 하는 근원적 매체다. 드러난 성격 차이점보다 더 깊은 닮은 점을 찾아내는 능력, 나 속의 수많은 이질적 나를 화해시키는 능력, 나와 너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연결점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나와 날밤이가 서로의 세상을 엿듣게도 해줬다.




그렇게 신나게 떠들어대던 날밤이가 10대 중후반부터 자기 세상을 닫아걸었다. 새하얀 아이팟만 삐져나온 시커먼 벽이 옆 좌석에 솟은 듯했다. 친구 같은 부자, 그러니까 부자유친이 모토였던 지라 ‘나나 잘 하자’라 해버리기엔 많이 슬펐고, 사춘기를 지나 빙하기로 굳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의 숨 막히는 냉기가 계속 흘렀다.


좋은 기억을 나누면 좀 풀린다는 말이 생각나 어느 날엔가 가볍게 물었다. 웬만하면 단답형 대답은 못 할 거란 용감한 착각을 담아 꺼낸 얘기였다. “날밤아, 요새 좀 생각 중인데, 아빠의 단점 말고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 0.1초쯤 걸렸을까.


“없어”. “…”. “…”. “하나도?”. “어”.

왜 말 거냐는 눈빛은 덤이었다.


가슴에 싸늘한 비수가 날아와 꽂힌 아귀 앞의 고니 심정이 이랬을까. 후~ 왜 이래, 나 연대 나온 남자야. 내 아버지 생각도 스쳐 갔다. 더없이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언젠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 내가 그냥 사라지면 되겠냐?”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내가 이러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라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몰라’도 아닌 ‘하나도 없어’. 단호한 전면 부정. 상대의 전부가, 현존 자체가 싫다는 몸짓…. 우리는 괜찮았던 걸까.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상대의 모든 걸 부정하며 영혼을 할퀴는 7분간의 말다툼이 휘몰아쳤던 영화 『결혼 이야기』가 떠오른다.



『결혼 이야기』 - 찰리 vs 니콜


뉴욕의 매력적인 젊은 부부 찰리와 니콜은 브로드웨이 극단을 운영 중이다. 찰리(애덤 드라이브)는 큰 키에 자수성가한 천재 연극연출자. 니콜(스칼릿 요한슨)은 극단의 핵심 여배우. 8살 헨리는 사랑의 결실이다. 부부는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미래를 꿈꾸며 열정을 쏟았다. 10년 동안이었다. 극단은 호평받기 시작했고 연극은 심심찮게 수상 후보에 올랐다. - 니콜과 찰리는 이혼 소송 중이다.


니콜은 결혼 전 LA 할리우드의 유망한 청춘 영화스타였다. 촬영 건으로 뉴욕을 방문했을 때 “대화가 섹스보다 좋았고 섹스도 대화 같았던” 신예 연출자 찰리를 만나 결혼했고 기꺼이 할리우드를 떠나 찰리의 뉴욕 무명 극단에 둥지를 틀었다. 니콜의 이름은 할리우드에서는 아스라해졌다.


10년 뒤 할리우드로부터 드라마 출연 섭외가 들어온다. 니콜은 자신을 찾겠다며 이혼을 선언하고, LA로 건너와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더니 헨리까지 전학시켜 버린 후 LA에서 살겠다며 기습적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남편 찰리는 가족의 생활 터전이었던 뉴욕을 두고 LA로 건너다니며 소송에 임해야 했다.


재산 분할은 쉬웠다. 다툼의 계기는 헨리를 누가 어디서 키울 건가였다. 양보 없는 싸움임을 느낀 부부는 ‘헨리의 미래’를 얘기해보자며 직접 마주 앉았다. 양육 장소 문제는, 곧바로 뉴욕 결혼 생활과 LA를 지향하는 니콜의 삶 간의 충돌로 드러났다. 니콜은 자신의 희생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으며 ‘뉴욕의 행복과 성취’는 지옥이었다고 소리친다. 뉴욕이 부정당하면서, 말다툼은 ‘헨리’를 벗어던지고 노골적으로 찰리와 니콜의 전부를 찌르고 들어간다.


니콜  :  원하지도 않으면서 소송에 매달리기는…. 아버님을 똑같이 닮아가고 있어.

찰리  :  절대! 아버지랑 비교하지 마!

니콜  :  비교한 게 아니라 아버님처럼 한다고.

찰리  :  장모님과 똑같은 당신은? 불평하던 장모님 행동을 그대로 하잖아. 헨리를 숨 막히게 한다고!

니콜  :  뭐? 난 엄마를 사랑해, 좋은 분이야!

찰리  :  당신이 했던 말이잖아!

니콜  :  어떻게 내 양육을 엄마랑 비교해? 아빠랑은 몰라도 엄마와는 안 닮았어!

찰리  :  닮았어! 게다가 우리 아버지하고도 닮았어. 가끔 우리 엄마 같기도 해! 세 분의 단점이 다 있어. 그중 장모님을 제일 닮았지. 침대에서 당신을 보면 가끔 장모님이 생각나 징그러웠다구!

니콜  :  당신이 날 만질 땐 구역질 났어!


찰리는 게으른 니콜 탓에 침대와 찬장 정리도 자기가 했다고, 니콜은 찰리와 섹스할 때 피부를 벗겨내고 싶었다고 악을 쓴다. 찰리는 니콜에게 어떤 남자를 만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못 냈다고 징징대기만 할 것이며, ‘발연기’를 해대는 삼류 배우이자 피해의식을 덮으려고 남편 탓을 떠들어대는 어린애일 뿐이라고 쏘아붙인다. 니콜은 찰리에게, 이기적이라 절대 위대한 연출가가 못 될 것이며 가스라이팅에만 능한 악질이라고 맞선다.


찰리  :  늘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얼마나 부족한지 절실히 느끼게 했어! 당신과 사는 거 하나도 재미없었어!

니콜  :  그래서 다른 여자랑 잤어? 그래?

찰리  :  잔 거에 화가 나니? 내가 즐거웠단 사실에 뒤집어져야지!

니콜  :  그 여자 사랑해?

찰리  :  아니! 그 여잔 그래도 날 미워하진 않아. 당신은 날 미워하잖아!

니콜  :  당신도 나 미워하잖아. 당신은 우리 극단 사람이랑 잤어!

찰리  :  작년부터 섹스를 거부했잖아! 난 당신을 속인 적 없어.

니콜 : 그게 바람 핀 거야!

찰리  :  아니, 그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어. 난 자수성가한 20대 감독이었고 잡지 표지도 장식했으니까. 잘나갔고 즐기고 싶었지만 안 그랬어. 당신을 사랑했고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 20대를 놓치는 것도 싫었다고! 그런데 당신은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걸 원했어. 난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구! 그래서, 젠장, 난 놓친 게 너무 많다고!

(…)

니콜  :  악몽이야, 평생 당신을 알아야 한다니!!

(…)

찰리  :  매일 아침 니가 죽길 원해! 헨리만 괜찮다면 병에 걸리거나 차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려 흐느낀다.) 맙소사!

니콜  :  (눈물을 훔치다 찰리를 쓰다듬는다.) 알아….

찰리  :  미안해….

니콜  :  (찰리를 어루만지며) 나도….

찰리  :  (니콜의 다리를 보듬고 운다.)


서운함과 억울함과 원망과 박탈감이, 미움과 배신감과 울분으로 꾸려졌다가 결국 상대를 아예 지워버리려는 증오로 치닫는다.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함께 극단을 이끌어온 열정과, 서로에게 가장 세심한 연기 지도자이자 가장 사랑하는 배우였던 시간 전부를 한순간에 부정해 버린, 가장 소중한 이의 가장 지독한 난도질. 핏발 선 눈빛. 담담한 카메라.


니콜은 창의적이고 명석한 찰리의 매력에 반해 할리우드를 포기했었다. 촉망받는 연출가 찰리가 자기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찰리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으며 가구와 물건도 찰리 취향을 따랐다.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 무척 좋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게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줄 뿐 자기는 점점 작아진다고 느끼게 됐다. 천재 연출가 극단에 속한 그저 그런 여배우이자 할리우드 반짝스타로 전락한 듯했다.


예전에 LA의 한 극장으로부터 찰리에게 연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을 때, 니콜은 함께 LA로 가서 자기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바람은 외면당했고 희생은 계속됐다. 그때 니콜에게 할리우드 출연 섭외가 들어온 것이었다. 여전히 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니콜의 출연료마저 극단으로 돌리자고 했었다. 결정적 뒤통수. 얼마 전 찰리는 무대감독과 잤다. 모른 척했다. 하지만 그 배신감과 상실감이 어떤 건지 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찰리는, 니콜 앞에서 늘 부족한 듯 느껴져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려고 애썼다. 서로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 뉴욕이 아니라 LA라고 선언 당했다. 니콜이 피해자라는 것이다. 황당하고 억울한 찰리. 니콜은 늘 너무 많은 걸 요구한 사람이었다. 니콜은 누구와 살아도 만족하지 못할 테다. 자기의 싫증이 아니라 상대 탓의 상실이니까.


찰리의 외도를 니콜이 알아낸 건 찰리 메일을 훔쳐봐서였다. 잠자리를 거부당하고 벌어진 찰리의 하룻밤 외도가 이혼 귀책사유가 될 판이다. 찰리가 소송에 지면 ‘애초 LA 기반 가족이었는데 니콜이 10년간 양보’한 게 된다. 양육권마저 뺏길 상황이다. 직접 해결하자는 약속과 달리 니콜이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헨리 학자금과 극단 운영비도 고스란히 소송비로 나갈 참이다.


상대를 후벼 파는 말들이 맹렬하게 엉켜 지나간 뒤 부부는 보듬고 울며 멘붕에 젖었다. 말로 말을 건드린 흉터가 파여 둘 다 가해자의 얼굴을 한 피해자가 됐다. 뭘 쏟아낸 걸까.




부부가 쌓은 시간 양편에 감정 응어리가 생겼다. 그 감정 응어리들에는 딱히 죄가 없다. 원인과 형체도 흐릿하다. 그 응어리의 어둠과 깊이만큼 서로의 관계도 깊다는 말일 테니, 기어이 바라보고 나누고 어루만져줘야 마땅할 응어리들 아닐까. 그런데 상대에게 쏟아내며 응어리의 뒤를 캤다.


자기 눈높이의 삶을 살지 못한 피해의식의 책임이 그제야 쉽게 보인다. 나는 아이인데 너는 어른이길 바란다. 찰리는 ‘당신에게 늘 부족한 듯 느껴져 내 마음이 안 좋아’라고, 니콜은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 참 겁나’라고 자기감정을 그때그때 말하지 못했다. 자기는 불편하고 상대는 쉽다. 처음 배운 말과 글의 타깃도 나보다는 너 아니던가. 철수야 영희야, 너를 가리키고 사물을 재고 세상을 평하는 언어 아니던가. 나를 돌보는 언어는 원래 그런 듯 흐려서 밀려난다. 나를 받아쓰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던 말과 글은 너에게 가서야 거처를 튼다.


그런데 마음까지 실어 가진 못한다. 왜 니콜한테 LA가 소중한지 찰리에게 닿지 못하며, 왜 찰리가 늘 니콜의 눈치를 봤는지 니콜은 듣지 못한다. 그래 놓고 공감 미숙 탓마저 또 얹는다. 답답함은 울화로 치민다. 풀리지 못한 울화는 비난이 모자란 탓인 듯해 비난을 더 얹는다. 그러고 운다. 내 걸 네게 떠넘기고서 어찌 기쁠까. 네게 떠넘긴 내 걸 어찌 껴안을까. 상대 탓을 쌓고 쌓아 관계의 탑을 허문다.


옳고 그름이 없는 감정싸움을 벌였을 때, 내 생각을 확신하기에 싸운 게 아니었더라. 내 고집을 내게 밀어붙이려고 싸웠더라. 내 감정이 상대 탓인 증거를 탐문하자고 싸웠고 상대 탓이 아님을 용납할 수 없기에 싸웠더라.


“맙소사!”, “알아….”, “미안해….”, “나도….” 상대의 악마성을 그렇게 넘치도록 날카롭게 입증해 놓고는, 부부는 왜 그리 부둥켜안고 울어야 했을까. 왜 그렇게 서로 미안했을까? 정말 상대 말이 납득돼서 울었을까. 상대 입장에 고개가 끄덕여져서 미안했을까. 헨리 양육 문제가 합의돼서 그랬을까?


끝까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부부였지만, 각자의 방식이 부족했다는 것만은 느꼈기에 그렇게 슬펐던 것 아닐까. 내 원하는 대로의 상대이기만 할 것, 그렇게 내가 나를 과신하다 상대에게 쏟아내 버린 것, 그것만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미안했던 것 아닐까. 미안해서 버틸 수 없을 때 내가 바뀐다. 자기 울타리를 겁나게 무너뜨리는 미안함과 슬픔이, 명확한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손 내밀게 하는 힘이 된다.


바닥을 쳤던 이혼을 겪은 후 니콜은 자기가 연기자보다 연출가로서 훨씬 열정적이며 어울린다는 걸 깨닫게 된다. 찰리에게 말한다. “이제야 이해하겠어. 당신이 왜 그렇게 늘 붙들려 있었는지.” 찰리를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 이해하고 찰리가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 이해한다. 그게 서로의 탓이라기보다 서로의 최선이었음을 받아들인다.



아빠 vs 아들의 공통점 찾기


그날 그 차 안에서 날밤이도 실은 엄청 미안했을 것이다. 욱하는 맘에 그리 내뱉고는 아빠와 아들은 제 속으로 오래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차를 세우고 부둥켜안는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대학생이 된 날밤이에게 어느 날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이 달랐다. “아빠? 내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줬지. 뭐 어려운 주제도 이야기 나눌 수 있고, 또….” 날밤이는 용서했고 용서받았다. 나도.


소중한 두 사람 사이의 이해와 용서가 성립되는 구조를 알 것 같다. 내가 완전해서 너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며, 너에게 용서 면허증이 있어 나를 용서하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해 면허증 따위는 없으니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교대운전이었다. 너를 이해하거나 용서하기에 버거운 나에 대한 슬픔과 미안함 때문에,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 너를 용서하는 구조였다.


미안할 때 미안함을 부인하려 들면 감정만 소모한다. 거긴 어두운 터널이고 외로운 빈집이다. 나를 그 터널로 내몬 혐의자는 타인이기에 그 존재를 밀어내곤 한다. 시인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썼다(기형도, '빈집'). 자기감정에 갇힐 수밖에 없음을 용감하게 슬퍼하고, 상대도 상대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아빠 vs 날밤 사이의 공통점 찾기 놀이는 의외로 킬러 문항이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아들도 아들이 처음인지라 ‘둘 다 끝없이 미숙하다’가 첫손 꼽을 공통점이었다. 모자람의 평등함은 밀쳐낼 이유가 아니라 스며들 이유이자 조건이었다. 밀쳐낼 이유가 서로 수만 가지라는 바로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나와 너는 우리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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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이해 #사고력과 연산력 놀이

인용 대사 출처 :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각본·감독 : 노아 바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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