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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당벌레 Apr 15. 2024

Round 6. 회초리 들까 말까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 「퍼펙트맨」

“지난번 무당벌레 차를 얻어타고 가다가 날밤이 회초리 얘기를 나눴죠.” 어린이집 교사의 날밤이 날적이장 글 일부였다(무당벌레 : 아이들이 지어준 내 별명). 15년도 넘은 글이 계속 이어졌다.


이후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회초리를 드는 건 두 분의 결정이라고 말을 시작하며 제 의견을 살짝 얘기했는데, 너무 깊은 참견은 아니었나 싶더라구요. 집에 와서 만약 제 아이를 기를 때 필요하다면 저도 회초리를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 분의 결정을 심사숙고하지 못한 건 아닌지, 또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공동육아는 여러 부모와 교사들과 함께 우리의 아이를 키우자는 육아공동체다. 별명을 지어 불렀고 늘 말과 글을 나눴다. 교사는 남자친구 문제를 날적이를 통해 날밤이 엄마와 나누기도 했다. 서로가 네 아이의 부모이자 이웃이고자 명암을 교차시켰던 초창기 4년이었다. 적혀 있던 내 답글을 넘겨봤다.


알아서 결정했겠지 하며 넘어가지 않고 얘기 꺼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날밤이는 진달래 엄마가 자기한테도 같이 책을 읽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 회초리는 우리 가족이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사용하겠습니다.


잘난 척 오졌던 답글이었다. 쪽팔리고 가증스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다. 번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라니, 뭘 그리 확신했는데?


어릴 때 두어 번 회초리를 들었다. 쉽진 않았다. 왜 맞는지 몇 대 맞는지 알려줬다. 하나 둘 센 뒤 셋에 친다는 걸 알려줬다. 통증은 있되 공포는 없게 회초리 간격은 최대한 짧아야 할 듯했다. 다른 손은 허리를 감싼 채 쳤다. 끝나자마자 품에 안겨 날밤이는 엉엉 울었다. 붉은 종아리 자국에 연고를 바르고 어루만졌다. 눈에 안 띄게 회초리는 치웠다.


어째서 들었는지 시시콜콜 안 적으련다. 보기 나름이니까. 뭣보다 사랑인지 ‘참교육’인지 화가 치밀었을 뿐인지, 혹은 그런 게 서로 다른 건지 알지 못하는 아빠의 회초리였으니까.


사람이 감정의 동물인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윤리를 말하고 신념을 외지만 실은 감정과 이어져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감정의 동물이란 말을 언제 주로 사용할까? 상대를 지적하거나 객관적 사태를 잴 때 종종 사용한다. 상대와 척지고 싶지 않을 때나 예상과 향후 전략을 위해서도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감정의 동물임이 ‘저절로’ 떠오를 때는 나를 변호할 때였다. 내가 나임에 취해 무릎 꿇기 싫을 때 쉽고 찰지게 사용했다. 반면 가장 드물게 떠올렸던 경우가 상처 주는 상대를 향해서였다. 지금, 그러는 나를 어루만져 품을 작정이다.


감정으로 움직이고 감정은 십인십색이니 우리는 결국 외딴 섬들일까. 그러면 사랑인지 윤리인지 감정인지 분간 못 했던 내 회초리를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까. 나를 어떻게 품고 너를 또 어찌 품어야 할까. 생각만 해도 먹먹해지니 대중 영화나 한 편 보자.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 캡틴 아메리카 vs 아이언맨


BTS급 수퍼히어로 어벤저스 팀이 해체된다. 소속사와 갈등은 아니다. 내전이다. 계류장을 때려 부수며 정의를 위해 서로 치고받는 수퍼히어로들. 백주대낮에 멤버끼리 대판 싸움이 붙는데 정작 소속사 마블은 대박이 난 이상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어벤저스 팀은 심란했다. 엄한 죽음과 손실이 넘쳤다. 막가파식 활약의 대가였다. 입국 심사조차 없이 참사를 일으켜대자 각국 정부의 인내심이 시험에 들었다. 급기야 수퍼히어로 등록법을 위한 국제협정문에 사인을 요구한다. UN 통제를 받을래 오두막에서 낚시할래?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는 사인 못 하겠다 한다. 반즈, 팔콘, 완다, 호크아이, 앤트맨도 뒤를 따른다. 아이언맨 토니는 사인하자 한다. 블랙위도, 블랙팬서, 로디, 비전, 스파이더맨도 동의한다. 친캡 vs 친아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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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  결정하고 말고 할 게 없어. 우린 통제될 필요가 있어. 어떤 방식이든 난 찬성이야. 지금 같아선 우리가 나쁜 놈들과 뭐가 달라?


캡틴 아메리카  :  희생자가 생겼다고 포기하면 안 돼.


아이언맨 : 누가 포기하재?


캡틴  :  스스로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게 포기지. 이 협정은 책임 회피일 뿐이야.


로디  :  미안 스티브, 근데 너무 막 말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이건 세계보안위원회라던가 쉴드나 히드라 같은 게 아니라고. UN의 협정이야.


캡틴  :  그들도 의도를 가졌고 의도는 변하는 법이야.

아이언맨  :  바로 그거야, 말 한번 잘하네! 내 아이언맨 수트라 해도 오작동을 일으켜. 그때 난 수트를 꺼야 했고 그제야 오작동이 멈췄어.


캡틴  :  그건 니가 선택한 통제였어. 하지만 여기 서명하면 우린 아무것도 선택 못 해. 원하지 않는 곳에 강제로 보내지고 정작 가야 할 곳에 못 가게 되면?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해.


아이언맨  :  지금 아니어도 언젠가 닥칠 일이고 그땐 문서로 끝나지 않을 거야.


블랙위도  :  아마 토니 말대로일 거야. (…)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야. 그동안 우린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어. 다시 신뢰를 얻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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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반대파 캡틴 아메리카는 불신한다. 악당이 실은 정부 고관이었으며 참혹한 전쟁도 정부가 일으켰다. 강력한 공권력이 악으로 치달았다. 신념에 스스로 떳떳한 게 차라리 공익 대행이자 공익 캠페인이다. 최대한 많은 이를 구해야 하지만 모두를 구하진 못한다. 자책감으로 신념의 손발을 묶으면 아무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폭력의 악순환? 그래서, 언제까지 눈 감을 건데? 대중, 언론, 법, 국가, 아니 온 세상 앞에서 오직 자기 신념과 책임으로 외쳐야지! “니가 가라 하와이.”


서명 찬성파 아이언맨은 묻는다. 무고한 희생 위의 정의가 정의냐 자기만족이냐? 정당한 자책감과 정의가 다른 것이기만 하더냐? 제도를 넘나들고 주권을 무시하는 강한 힘은 위험하다. 더 나쁜 강한 힘을 부른다. 충돌하면 재앙이다. 우리 책임은 아니니 떳떳하다? 원인일 수는 있잖아? 쿨하게 통제에 맡기고 합법으로 싸우자. 자기 수양 10년보다 3일 완성 전문가 코칭이 나을 수 있다. 자기 신념을 향한 정직이 최선이라고? 니가 그리 잘 났냐, 어벤저스냐?


이 영화는 일단 사적 보복 vs 공적 처벌, 혹은 사적 정의 vs 공적 정의를 말한다. 적정 처벌과 처벌 주체의 문제다. 눈만 뺏되 팔다리나 목숨까지는 건들지 말라는 게 ‘눈에는 눈’ 법전이다. 그 법전 이래 3,700년 넘게 풀지 못한 과제다. 지고한 가치의 충돌이란 실은 늘 그렇듯 감정의 시소게임에 관련된 문제기 때문이다.




내 회초리가 그랬듯 ‘자기 책임의 정의’ 옹호자 캡틴의 신념도 순수하진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장을 직접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와 복수심, 그리고 왕따 경험이 실은 뒤섞여 있었다. 유달리 예민하고 과격한 정의감의 배후 감정이었다. 아이언맨이 추구한 가치도 그랬다. 무고한 희생자라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자기연민, 귀찮은 뒷수습을 피하려는 무의식, 혹시 나도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일반적 염려에 붙잡혀 있었다.


압권은 영화 후반부 아이언맨의 안면몰수식 태도 변화였다. 뜻밖에도 반즈의 ‘실수로’ 부모님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 아이언맨은 눈이 돌아 버렸다. ‘통제되는 정의’의 옹호자가 반즈에게 대놓고 사적 보복을 벌인 것이다. 정의도 효능감 그러니까 쾌감을 동경한다. 죄송하다. 재밌자고 꺼낸 영환데 모호해졌다.


어벤저스는 관객을 모을 줄 아는 팀이다. 영화 내내 살벌하게 치고받다 종영 1분 전 서로를 품는다. 캡틴은 수감됐던 협정 반대파 팀원을 모두 탈출시키며 사라진다. 그러면서 아이언맨에게 직통폰과 편지를 보낸다. 서명에 반대하는 신념이나 팀을 위한 일이라는 가치는 불변이지만, 그게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것이었음 또한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우리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아이언맨은 그들의 탈옥을 눈감는다.


건널 수 없는 강은 가치보다는 감정 탓에 생긴다. 더불어 다리를 놓는 것도 감정 덕분이다. 가치는 3,700년간 평행선이었어도 감정은 연결될 수 있다. 그 연결감의 구조는 사유로 번역된다.


캡틴도 아이언맨도 자기가 대충 사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퍼펙트한 것의 주인이 되기에는 한없이 모자라며 갑자기 눈 돌아 버리는 동물일 수밖에 없음에 슬퍼했다. 그러니 감정의 심연에 붙들린 나와 너 모두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동질감이 생겼다. 그러니 함께 그 너머의 연기된 정의를 염원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의 유대감이 생겼다. 그게 다리다.


원수 사이조차 그 다리가 놓인다고 말하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봤다. 그 연결감의 성립 구조를 퍼펙트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퍼펙트맨」에 있다.



「퍼펙트맨」 - 장수 vs 석현


자동차 충돌로 아내와 딸을 모두 잃은 변호사 장수(설경구). 본인도 전신마비로 누워있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석현(윤상화)이었다. 막노동꾼 석현의 어린 딸이 재벌가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당시 장수가 법 기술을 발휘해 놈의 무죄를 끌어냈다. 눈이 뒤집힌 석현은 장수 가족의 차를 들이박았다. 장수만 홀로 살아 침대에서 시한부 인생의 지옥을 견딘다.


어느덧 죽음을 앞둔 장수는 사과를 받고자 석현을 찾는다. 석현에게 먼저 사과한 뒤 석현의 딸을 위한 학자금과 전셋값을 건네려 한다. 맡지 말아야 할 변호를 맡았던 마음의 빚을 그렇게라도 던 후에 석현의 진심 어린 참회를 받아낼 작정이었다. 그래야 눈감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석현은 흐느낀다.


석현  :  죽었어예, 우리 딸내미. 내 빵에 가고 1년 있다가…. 자살했다고예. (…) 그 더러븐 돈 필요 없으니까 … 우리 딸내미, 내 앞에 다시 살려 놓으이소.

장수  :  (흐느낌)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되잖아…. 당신도 나한테 잘못했잖아. 당신도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잖아! 근데 이러면, 그러면 내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잖아…. 난 어떤 용서도 받을 수 없잖아….

석현  :  (오열) 일이 그리될지 몰랐어예…. 내는요, 일이…, 그리될지 몰랐어예….


죽어서라도 죗값을 치르겠다며 둘은 저녁놀이 지도록 함께 오열한다. 무슨 수로 죗값을 치른단 말일까. 어떻게 없던 일로 한단 말일까. 넉넉한 배상금을 받거나 무덤에서 살려낸들 그간의 상처가 지워지기라도 한단 말일까. 둘에게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도리가 없다. 둘만의 탓일 수도 없으니 불행의 재발을 막을 힘도 없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는 장수와 석현의 흐느낌에는 동질감이 담긴다. 서로에게서 절실히 받아내야 하지만 내가 줄 수 없고 상대도 줄 수 없다는 그 동등한 결핍이야말로 원수 사이인 둘을 오랫동안 같은 저녁놀 앞에 세우는 유일한 다리다.


상대를 통해 간절히 고통을 벗으려 하지만 결코 없던 일이 되게 할 도리가 없으며, 그렇게 홀로 또 하루를 견딜 도리밖에 없는 변변찮고 외롭게 대등한 관계다. 상대 탓을 해봐야 시간의 생채기 앞에 아무 소용없음이 사무치게 평등했기에 함께 부둥킬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 처지일 수밖에 없는 분노와 슬픔과 무력감과 자책감과 외로움을 절감하는 이들 사이의 유대감이다. 쪽팔림, 모멸감, 손해, 삐딱한 시선 그리고 내숭을 신경 쓰지 않고도 깊숙이 함께 토해낼 수 있는 안전한 신뢰감이다.


‘#그 사건 #그놈’ 연관 기억만 선별 삭제하는 두뇌 활동 혹은 측두엽 해마를 이용한 트라우마 자가치유 장치 같은 건 없다. 어떤 관계가 진정으로 해결을 보던가. 모자란 우리는 일단 주고받은 상처를 무슨 수로도 되돌리지 못한다. 다만 그 위에 더 여물고 안전한 신뢰와 유대를 지을 수 있을 뿐. 사회적 연대도 그렇게 나온다.



어벤저스도 퍼펙트맨도 아닌 자유


“(회초리를 드셨다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라는 어린이집 교사의 우려를 읽고는 비참했다. 나는 섣불리 ‘사랑’의 타이틀을 내걸어서는 안 됐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랬으니 그 순간의 감정이 뭔지 조금이라도 헷갈렸다면 더욱 그랬다. 나는 소중하니까 내 감정을 고이 돌아봐야 한다. 나는 위험하니까. 엉뚱한 타이틀을 달면 막가파식 힘이 되니까.


그렇다고 감정에 매였음에 붙들리지도 않으련다. 그 비참함을 받아들이련다. 자책이나 분노에 매이거나 추궁하거나 계몽하거나 대안을 내려고 하지 않으련다. 내가 나임이 아파서 비참하다고 고백하고 어쩔 줄 몰라서 무너지게 두련다. 상처를 입히거나 받을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련다. 받아들여서 깃털처럼 품으련다. 아프니까 아파할 것이고 아프다며 웃으련다.


살다 보면 살아질 뿐 어벤저스도 퍼펙트맨도 아니다. 일단 주고받은 상처를 되돌리는 연고는 없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게 정의라니 날밤이의 감정은 날밤이의 몫이 되게 하련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받아들여 더 커다란 숨을 나누련다. 그렇게 날밤이 앞에서 자유로워지련다. 행여나 회초리를 기억할지 모르는 날밤이도 그렇게 자유로워졌으면 참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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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  #결핍의 유대감  #서로주체성

인용대사 출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 마블 스튜디오, 2016. (각본 : 크리스토퍼 마커스)

「퍼펙트맨」, 맨필름, 2019. (각본·감독 :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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