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닫힌 방』
“아빠는 쫌 가만있어.” 고3 날밤이가 차 옆좌석에서 한 말이었다. 뒷좌석에 경찰을 태운 상황이었다. 얼마 뒤 나를 놓쳐버린 듯 날밤이를 야단쳤다. 아니 몰아세웠다. 그렇게까지 흥분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
택시기사와 경찰을 상대해야 했던 한여름 밤이었다. 늦은 11시 무렵. 날밤이의 학원수업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차라 부랴부랴 시내 픽업길에 올랐다. 차선도 없이 한적하게 이어진 일직선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앞선 택시가 산보하고 있었다. 와~ 저리 빠른 거북이도 있었나. 한쪽으로 비켜주면 충분히 앞지를 수 있는 도로인데…. 잠깐 뒤따르다 좌측 깜빡이를 켰다. 이어서 전조등 상·하향. 비켜주지 않았다. 한 번 더. 역시 무반응. 짧게 빵. 무반응. 빠앙. 그 순간 택시는 멈춰섰다.
불빛 사이로 택시기사님의 험악한 인상이 다가왔다. 뻔한 실랑이. 기분 나쁘게 왜 빵빵대냐? 좀 비켜달라 픽업에 늦었다. 제한 속도 이하면 내 마음 아니냐? 알았으니 어서 가든지 비켜주든지…. 기사는 임자 만난 거라는 듯 질질 끌었다. 택시 몬다고 깔보냐 …. 많이 돌더라도 유턴했어야 했다.
늦었다는 조급함에 하차를 택하고 말았다. 시동 끄고 벨트를 풀면서 문을 여는데, 투웅, 문밖으로 느닷없는 소리가 났다. 내려 보니 택시기사가 땅바닥을 구르며 죽네 사네 하고 있었다. 엉? 문을 걷어차며 연 것도 아니요 팔꿈치로 연 상황. 설령 좀 닿았기로서니? 황당했다.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주춤주춤 일어서더니 병원을 가야겠단다. 하, 오늘 헛웃음 반 짜증 반 ‘헛짜면’을 제대로 시식하는구나.
병원비 운운하던 기사는 경찰을 부르겠단다. 맘대로 하시라. 경찰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잘됐네, 귀가부터 시키고 오겠다 했다. 기사는 어딜 도망가려 하냐면서 막아섰다. 내 차 본닛과 막무가내 포옹을 시전하는 기사. 뭐야, 유튜버야? 천호동 자해공갈단 물방개파야?
경찰이 도착했다. 신분증을 건네주고 곧바로 픽업부터 마저 하겠다 했다. 경찰은 폭행범으로 신고된 거라 현장 이탈은 어렵다고 했다. 좀 의아스러웠고 버스도 불확실한 열대야였다. 픽업이 먼저라며 우격다짐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한참을 기다렸던 날밤이를 픽업하는 내내 경찰은 언제 오냐고 연락을 했다.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기사의 진술을 듣고 있던 경찰과 마주쳤다. 어차피 접수된 신고인지라 사후 출두해 진술해도 됐지만, 바로 근처고 고3이니 일단 귀가부터 시키고 돌아오겠다 했다. 빨리 내려 문서에 사인하란다. 귀가가 먼저니 못 믿겠으면 차에 타라 했다. 진짜로 탔다. 그렇게 뒷좌석에 탄 경찰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경찰의 느닷없는 질문. ‘택시기사 팔이 긁혔다는데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아이가 전후 사정을 모르니 귀가부터 시키고 이야기하자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경찰이 또 한마디 얹었다. ‘도구를 사용한 특수폭행’ 혐의일 수도 있는데요…. 후~ 거꾸로 타는 열불. “일단 내려놓고 보자니까요!” 바로 그 순간. 왜 그랬냐는 듯 날밤이가 던진 한마디. “아빠는 쫌 가만있어.”
귀를 의심하며 귀가를 시켰다. 현장으로 돌아갔고 어느새 택시기사 편이 된 듯한 경찰과 이내 헤어졌다. 외톨이라는 분을 삭이며 돌아왔다. (※ 나중에 ‘특수폭행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차 문이 열릴 때 기사가 문으로 다가선 장면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안 자고 기다린 날밤이와 자초지종을 나눠야 했다. 그렇게 시작했건만 급기야 뭔가를 쏟아내고 말았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아빠가 뭐 때매 쌔빠졌는데? 상황도 모르면서 경찰 말보다 아빠 말부터 끊으려고! 열아홉 되도록 키워놨더니!’ 부르르 떨며 나를 완전히 놓쳤던 것 같다. 무방비의 아들에게 방송심의규정에 저촉될 언어들을 쏟아 부었다. 녀석은 두려움에 떨며 기겁했을 게다. ‘특수폭행’의 실제 발생 시각이랄까.
초5 때 친구들이 급식 시간에 학교 밖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들어온 걸 ‘나의 10대 사건’이라 적은 녀석이다. 질서와 권위를 존중하며 자라려는 녀석의 눈에 아빠는 늘 경찰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우리 세대가 실제 그랬다. 그 DNA는 두고두고 은연중 내비쳤다. 날밤이는 아마 그날 아빠가 경찰과 충돌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나 까짓것 알아서 귀가하면 되는데 아빠는 어째서 순순하지 않을까 안타까웠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눈치 빠른 녀석이라 픽업을 기다리는 동안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고 크게 번지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겠다고 여겼다 한다. 녀석은 열아홉이었다.
나는 경적을 몇 번 울렸는지까지 세세히 복기한다. 반면 고3 날밤이가 그 사건 전에 또 어디에서 무슨 헛짜면에 시달리다 온 하루였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맺힌 것 없이 자랐으면 싶었건만 깊은 응어리를 맺게 한 꼬라지다. 내 잘못이다. 돌이키지 못하는 ‘이불킥’은 벌써 몇 수십 번했다. 더 말할수록 쪽팔린다. 붙들린 관계. 굳이 말하려는 건 그거다.
머리 검은 고등학생과 실수로라도 마주치면 서로 진돗개 하나를 발령해야 한다. 고등학생 자녀에게 매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관계에 집중하려 애썼다. 집에서도 그랬다. 옆지기는 퇴근이 늦으니 서재에 틀어박혀 자극적 모바일 게임을 일삼다가 잠들곤 했다. 그날 날밤이에게 그러고 나서야 부질없음을 받아들였다. 벗어날 수 없구나. 나를 뿌리째 붙든 자의 제스처 앞에서는 무력하게 전 포문을 개방하는구나.
살다 보니 외톨이가 될 때도 있었다. 견딜 만하다 여기며 진실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고단함을 이어가는 분도 뵀다. 하지만 견디기 정말 어려운 외톨이도 있더라. ‘틀린 외톨이’다. 누군가의 ‘좋아요’를 받아야 나를 긍정할 수 있다. 그의 찬사가 내 콤플렉스를 성형하니까. 그것 없는 외톨이는 붕괴한다. 모자람은 명확해지고 잘못은 전적이며 위선은 고스란히 추악해진다.
붙들린 이로부터 긍정을 받지 못해 붕괴하는 세 인간 ‘가르생, 이네스, 에스텔’에게 진한 마음이 가닿는다. ‘타인은 지옥’의 출처인 작품을 볼까 한다. 인간이 지옥을 셀프서비스한다고 말하는 철학자이며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작가 사르트르의 작품. 희곡 『닫힌 방』이다.
조명이 꺼지지 않는 창문 없는 방. 가르생과 이네스, 그리고 에스텔이 삼자대면한다. 왜 여기 갇힌 건지 의아해하던 그들은 서서히 서로의 추악함을 까발리고 위선을 역겨워하며 잔인함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각자가 이승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됐으며 남은 시선이라고는 상대방 둘과 청동 흉상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죽어서 저승에 떨어진 영혼들이다.
그 방은 저승이다. 의자 3개, 벽난로, 청동상 그리고 칼 하나 외 어떤 것도 없는 닫힌 방이다. 각자가 입맛에 맞는 시선을 나머지 둘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내면의 비겁함을 숨기며 ‘사는’ 남자 가르생은 비겁자가 아님을 인정받아야 한다. 대중의 인정이 내 죄를 감면해 주는 듯니까. 여성인 에스텔은 가르생이 자기의 성적 매력에 빠지길 원한다. 뭇 남성의 수많았던 시선을 즐기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에스텔은 그래서 가르생의 키스를 유혹한다. 그때 에스텔에게 외면당했던 여성 이네스가 가르생에게 꼬집는다. 저년은 당신이건 다른 남자건 그저 남성의 체취와 욕망만 원하는 거라고. 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라면 하느님이라고도 부를 여자가 에스텔이라고.
가르생 : 에스텔! 정말이야? 대답해, 그게 정말이냐구?
에스텔 : 내가 뭐라 답해 주면 좋겠어요? (…) 대체 뭐가 이리 성가신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비겁자라 해도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래, 이걸로 부족해요?
가르생 : 당신들 역겨워!
서로의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서로의 추악함을 꿰고 있기에 서로에게 부르르 떤다. 결국 가르생은 미친 듯 문을 두드린다. 차라리 황산에 불타겠으니 내보내 달라고. 벌컥 문이 열려버린다. 회로가 정지되는 가르생. ‘왜 열렸는지 생각해야겠다’가 못 나가는 변명이다. 에스텔도 나가지 못한다. 이네스는 우리를 붙잡는 게 대체 누구냐며 미친 듯이 웃는다. 에스텔은 저 재수 없는 년을 끌어내야 편해지겠다며 이네스를 덮친다.
이네스 : 에스텔! 에스텔! 제발 날 내보내지 마. (…)
가르생 : 그녀를 놔줘.
에스텔 : 미쳤군요. 이 여자는 당신을 증오해요.
가르생 : 그녀 때문에 내가 남는 거야.
(…)
가르생 : 내가 설득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네스)이야. 당신은 나하고 같은 종류니까. 내가 떠날 거라고 여겼어? 난 당신을 여기에 둘 수 없어. (나를 비겁자라 여기는) 그 모든 시선을 지닌 채 의기양양하게 지내게 둘 수 없단 말이야. (…) 당신, 나를 증오하는 당신, 당신이 날 믿어 주면 난 구원받는 거야.
(…)
이네스 : 어서! 어서! 용기 내서 해 봐요. 날 설득하는 것쯤은 당신한테 쉬운 일 아네요? 반박해 봐, 노력해 보라구요. (…)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야, 가르생, 비겁자라고. 왜냐면 내가 그걸 원하니까. 내가 그걸 원한다고, 듣고 있어? 내가 그걸 원해. (…) 나는 당신을 쳐다보는 시선일 뿐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래,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지. 날 설득해야 돼. 내가 당신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보통 미워할 이유가 흐려져도 미워할 필요는 남는다. 그런데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는 그들은 괴롭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한지 혹은 미움의 대상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인정이 더 필요한지 헷갈리니까. 뺏어내려는 게 상대의 위선인지 시선인지 모르니까. 미워하는 게 내 추악함인지 상대 속에 비친 내 추악함의 실루엣인지 모르니까. 서로에게만 붙들린 그들은 붕괴한다. 이미 죽은 상대를 죽이겠다며 기어이 칼질까지 한다. 이윽고 경악한다. 유황불도 석쇠도 지옥의 어떤 고문 도구도 필요 없다고.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L’enfer, c’est les autres)”이라고. 그리고 영원히 함께라고.
거울 없는 세상도 실은 견딜 만하다. 남들이 예쁘다 해주면 괜찮다. 좀 불안하고 짜증나겠지만 길들여진다. 번진 립스틱에 까무러치게 놀라도 아무도 본 사람 없으면 오케이다. 뼛속까지 타인을 느낀다.
관심과 인정 없는 예쁜 얼굴로 뭘 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칭찬하는 거울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들이’ 더 예쁜 건 백설공주라고 수군거리면 마녀는 못 견뎠다.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은 훈남 목동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 빠져 죽는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시선은 자아도취보다도 강하다. 타인은 언제나 있다. 혼자일 때조차.
타인은 심지어 내 근원이었다. 내 행복과 기쁨과 슬픔과 고통 가운데 타인에게 빚지지 않고 홀로 있는 게 있던가. 내 행복의 출처는 누군가의 노고이며 내 기쁨의 점수는 박수소리의 높이였다. 내 풍요의 정체는 누군가의 빈곤이며 내 괴로움의 크기는 누구의 모자람의 크기에서 건너온 것이었다. 나는 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뿐이니 타인의 꿈속에서 내가 숨 쉰다. 죽어서까지 타인의 기억 속에 산다. 나는 서 있지 않는 곳으로부터 서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타인의 시선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니 그 시선의 ‘주인’이 못 된다 했다. 사랑하는 사람 눈에 비칠 자기 이미지를 불안하게 탐색하는 일을 제외하면 사랑조차 떠올릴 수 없다고도 했다.(『불멸』) 너를 떠올리지 않고 나를 돌아볼 수 없고 나를 떠올리지 않고 너를 돌아볼 수 없었다. 진실로 ‘나’는 처음부터 나+너 그러니까 만남의 흔적이었다.
타인이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선언마저도 이 진실의 실루엣인 듯하다. 타인의 오롯한 시선 안에서만 마침내 자기를 구할 기쁨, 그러니까 ‘개별적 주체성’도 설 수 있다는 걸 살벌하게 일깨우는 굴레 말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만난다, 고로 존재한다. 나와 날밤이 간의 붙들린 시선이야 말해 뭐할까.
그렇다고 시선이라고 다 같은 시선은 아니었다. “아빠는 쫌 가만있어”라던 시선. 만약 그때 반대로 아빠는 짱이라는 화려한 갈채였다면 어땠을까. ‘내 취향 저격’ 시선만으로는 그 나물에 그 밥의 알고리즘만으로 살기 십상이다. ‘나는 2% 아빠야’라는 포승줄에 스스로 묶인 무기수로 살면서, 택시기사들과 경찰 조직을 향한 편견의 닫힌 방에 갇혔을 수도 있다. 입맛에 안 맞는 불편한 시선이었기에 비로소 내 허물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길을 잘못 잡았다. 스스로 상처받기 싫어서 날밤이를 몰아세우고 말았다. 녀석을 거쳐 직감한 내 외로움과 부끄러움에 손가락질해댔다. 나중에야 그랬음을 받아들이고 사과하면서 자유로워졌다. 수치와 괴로움과 슬픔은 결국 내 감옥을 무너뜨리며 바꿨다. 그 시선 앞에 울며 화해하고서야 한발 깊어지고 넓어지며 가벼워졌다. 파괴하는 시선은 창조하는 시선일지 모른다.
슬픈 이는 슬픈 이를 알아봤다. 부끄러운 이도 부끄러운 이를 알아봤다. 상대와 만나면서 직감한 자기 부끄러움 탓에 상대를 용서 못 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그 부끄러움의 너비와 깊이만큼 상대의 부끄러움을 품는 이도 있었다. 부끄러움은 손가락질거리이기도 했고 서로를 도울 아픈 지렛대이기도 했다. 가르생, 이네스, 에스텔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다 같이 지옥에 머물든지 함께 문을 나가든지. 아빠는 날밤이와 함께 문을 나가야 한다.
혼자서 자기를 구할 수 없으니 우리는 약하다. 그러니 타인의 허약함을 초대할 힘과 연결될 감정을 타고 났다. 우리는 그래서 강하다.■
==============
#붙들린 관계 #타인의 시선 #만남
인용대사 출처 : 장 폴 사르트르, 『닫힌 방(Huis Clos)』, 1943, 프랑스. 5장. 발췌 번역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