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만 모시는 어린 자녀 때문에 속 터지거나 가족이 함께 나눌 거리가 마땅찮다 싶으면 보드게임 라이프는 어떨까. 우리 가족은 보드게임이 열일 했다. 날밤이가 포노 사피엔스로 더디게 진화(?)한 건 모르긴 몰라도 오랫동안 ‘호모 보드게이머쿠스’였던 게 일조했던 것 같다.
주의사항. 보드게임 라이프도 무한 체력과 지구력을 요한다. 뭣보다 골치 아픈 보드게임 따위가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에 가당키나 한가 싶은 취향이라면 아쉽지만 아니 보신 듯 넘기셔도 되겠다.
날밤이 초등 저학년 때 ‘클루’라는 추리게임을 했는데 스스로 범인을 밝힌 게 뿌듯했던지 뒤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보드게임 카페로 가족 나들이를 나서 봤다. 어느 날부터 완구 대신 보드게임을 원했다. ‘스타크래프트’도 PC보다 보드게임으로 했다. 둘러앉을 놀잇감 덕에 중고등 때까지 친구가 자주 놀러 왔다. 친구끼리 우르르 보드게임 카페에 갔다.
선생님이 양해하신 덕에 학교에도 가져갔다. 쉬는 시간이나 동아리 시간을 이끌었던 모양이며 수련회 때도 챙겨가곤 했다. 복잡한 룰을 맵시 있게 알려주는 데 능숙해졌다. 머리 굵어져도 가족이 둘러앉을 거리가 돼서 좋았다. 스마트폰 충돌에도 생존했던 보드게이머쿠스는 고생대 2기쯤 입시 폭탄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1+1’ _ PC·모바일 게임과 달리 게임 룰을 바꿔도 뭐라는 이가 없었다. 날밤이는 새로운 룰을 만들기 시작했고 필요한 피규어나 카드를 추가했다. 피규어는 컬러점토로 빚거나 나무로 다듬었고 카드에 새로운 능력을 적어 붙였다. 1+1이었달까.
‘2+1’ _ 하자는 게임이 각자 다를 땐 합쳐 보자 했는데 잘 먹혔다. ‘메모아44’ 게임판과 규칙에 ‘스타워즈 에픽 듀얼’의 카드덱으로 놀 만한 요소를 찾는 식이었다. 몇 번 그러다 여러 게임 속 재미 요소로 새 게임을 고안하기도 했다. 보드게임 기획자를 꿈꾸기도 했다.
영어와 친해지기 _ 한국어학당에 유학 온 미국 원어민을 섭외했다. 주 1회 2시간 보드게임으로 날밤이가 하자는 대로 놀아달라 했다. 식사 제공에 수업 준비 부담이 없었으니 다행히 저렴한 금액으로 응해 줬다. 보드게임 같이 하자고 미국인 형이 왔으니, My와 I가 구분 안 되던 녀석이었지만 손·발짓 동원해 규칙을 설명해야 했다. 역시 ‘놀이하는 인간’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 방에서 킬킬킬 둘의 웃음이 새 나왔다. 6개월쯤 했는데 녀석은 단어 몇 개만으로도 쏼라쏼라 형과 브라더가 되는 데 아무 지장 없다는 걸 배웠다.
두루두루 영어와 친해진 계기였다. 중학 무렵에는 두툼한 게임 매뉴얼을 번역했다. 당시 미처 번역 안 된 게임이 많아서였다. 한시라도 빨리 플레이하고픈 마음에 영문 설명서라도 읽으려 했다. 기본 규칙은 인터넷을 뒤지거나 번역해 주기도 했지만 방대한 세부 규칙은 직접 읽으며 익혀야 했다.
생사 확인 기회 _ 벌일 엄두가 안 나는 게임도 있는데 플레잉타임 기본 5~6시간 게임들이다. 오히려 느긋하게 놀기 좋았다. 대개 여러 스테이지가 이어지는 게임이었다. 한 번에 한 스테이지 정도 하고 펼쳐뒀다가 틈날 때 이어서 했다. 중고등 때 했던 게임들이라 며칠에 한 번 두런두런 생사 확인할 핑계가 됐다.
가족 간 일상에 더해 게임 배경 지식을 나눌 계기도 됐다. 녀석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전략 게임을 좋아했는데, ‘한니발’ 덕에 로마와 카르타고 전쟁사와 고대 유럽 민족 간 역학 관계에 친숙해졌고, ‘메모아44’로 놀면서 2차 대전의 주요 전투를, ‘카멜롯의 그림자’로 아더왕 이야기와 영국 고대사를 배울 기회가 됐다.
보드게임은 우리 가족 취향의 최소공배수여서 좋았다. 보드게임이 진입 장벽이 있긴 하다. 뭐가 됐건 가족 간의 공통 취미를 발견하실 수 있으시면 좋겠다. 자녀가 어릴 때보다 오히려 자랐을 때 가족 활동으로 조율하고 일상화할 게 필요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