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의 XX, 그넘은 자식도 아냐!” 친구 A가 고래고래 술상을 내리쳐댔다. 골뱅이 접시가 들썩들썩, 소주잔이 출렁출렁, 술상 엎을 분위기. 야밤에 친구 B의 아파트에서 이어진 술자리였다. 자녀는 건넛방에서 자고 이웃도 누웠을 시간. 학을 떼는 B의 부인 앞에서 A의 성난 주먹 망치질은 쾅쾅 거세졌다. 시뻘겋게 핏대 세운 30년 지인의 처음 접한 변신…. 야밤에 「부산행」 찍는 줄.
모두 청소년 자녀를 뒀을 무렵이었다. A는 눈물 콧물 범벅 뒤에야 좀 잦아들었다. 이윽고 내게 물었다. "너네 부자 사이는 어떠냐?" 언제 물어보나 했다. “마찬가지야.” 솔직히 답했다. “파도 없는 집구석 있더나. 괜찮다.”
얼마 전 C의 와이프는 자기 자녀를 ‘공공의 적’이라 불렀다. 이 나이에 부부 사이가 가까워지더라는 ‘웃픈’ 얘기. 남편 친구에게 편하게 속내를 내보여주니 감사했다. 마음이 짠해 분연히 연대의 깃발도 올렸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아빠랑 말이 안 통해”, “이런 것도 몰라?”, “나한테 뭘 해줬는데!” 등도 세지만 끝판 결정타는 역시 “그러면 뭐 하러 낳았는데!"다. 자녀로부터 받는 상처 vs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는 서로 만만찮아 보였다. 다른 이가 아닌 자녀로부터 입었다는 걸 시인해야 하는 상처가 부모의 상처였다. 그러니 별일 아닌 듯 얼버무려야 하는 상처기도 했다. 엄마끼리는 어떤지 모르나 아빠끼리는 대게 그랬다. 드러내기 창피해 질겨졌다.
한밤중 술자리는 그런 상처에 침울했던 무렵이었다. 내 경우엔 ‘대답하지 않는 아들’이라는 속상함이었던 것 같다. 10대 후반부터 녀석과 뭘 의논하거나 협의하기가 버거웠다. 의논은 간섭, 제안은 잔소리였다. 대답을 구걸하면 ‘응’, ‘아니’, ‘맘대로 해’가 다였다. 대답하지 않는 대답, 참여하지 않는 참여는 무적의 빌런이었다. 그래 놓고 언제 그러기로 했냐는 식이기도 했다.
바락바락 대들지 않고 자라준 것만 해도 거저 키운 거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참선하려 해도 서운한 마음은 플라나리아처럼 재생했다. 결정할 가족사나 의논할 규칙도 엄연했다. 가정의 민주적 의사결정이니 갈등 조율의 공정한 규칙이니 해도 자녀의 참여 없이는 공허했다. 얼러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입은 여전히 굳고 대답은 멀었다.
그 무렵의 부자가 꼭 친한 사이여야 할 건 없다. 그래도 영향을 깊게 주고받는 붙들린 사이인 것만은 틀림없다. 의논이나 합의에서 호응 없는 태도는 꼼꼼하게 과정을 밟는 아빠의 성향이 거북했다는 표식 같았다. 좋은 소통 파트너라는 양육 목표가 심각하게 삐걱대는 듯했다. 긍정 받지 못했나. 속상하고 주춤거려졌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덧나기 시작했다. 대답을 피하거나 얼버무리는 이가 새삼 미워졌다. 톡톡 말 잘라먹는 무리도 싫어졌다. 모르면서 묻지 않기, 뒤집는 줄도 모르는 말 뒤집기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아예 입을 닫아 걸기도 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뒤틀리는 소통의 밑바닥에 답변 받지 못해 속상한 아빠가 똬리 틀고 있는 건 아닐까. 쪽박을 찬 듯했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그 속상함을 남의 일인 듯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다. 12명 중 한 명은 나와 많이 닮았다. 내 괴로움은 타인의 괴로움에 비춰볼 때 바로 보인다. 연원과 맥락을 짚을 수 있고 크기와 가치를 잴 수 있으며 어떻게 덧나는지 알아챈다. 상처를 맵시 있게 드러낼 방안까지 고민하게 해줬다.
로튼 토마토 지수 100점 만점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법정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1957년 미국 고전 영화지만 여러 나라에서 영화, 연극,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12인의 심판자」(2019)나 문소리 배우의 영화 「배심원들」(2019) 같은 리메이크작도 있다. 대학 때 법학 과목 리포트 과제로 처음 접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도 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 3번 배심원 vs 8번 배심원
송아지 같은 눈망울의 히스패닉계 소년에게 전기의자 사형 선고가 임박했다. 잭나이프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빈민가 소년의 혐의를 두고 배심원 평결중이다. 목격담이 넘치고 증거가 뚜렷하니 건전한 상식은 유죄를 지목한다. 전과자 소년이었기에 사회적 지탄도 쏠린다. 판사는 합리적 의심과 양심에 따라 유죄 여부를 평결해 달라 한다.
푹푹 찌는 한여름의 배심원 회의실. ‘시간 끌 거 없네’가 대세다. 차고 넘치는 증언과 각자의 양심에 기댄 11명의 배심원은 5분 만에 유죄를 합의하려 한다. 재수 없는 8번 배심원만 삐딱선을 탄다. ‘혹시 실수 아닐까요? 확신이 안 듭니다. 1시간만 이야기 나눠 보시죠?’ 만장일치 평결이어야만 했다. 고장 난 선풍기 아래 그렇게 짜증 실린 논박이 시작된다.
확실하다던 증거와 증언에 차례대로 균열이 간다. 주장과 반박을 되짚고 대립과 설득을 헤집는 사이 배심원들의 양심적 주장에 온갖 필터가 끼워져 있었음을 깨닫는다. 배심원은 한 명씩 마음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해당사자가 아니라도 마음을 고쳐먹는 게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어떤 배심원은 유죄 확신이 단순히 착각이나 지레짐작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빈민가 소년을 향한 선입견이나 인종적 편견을 놓기 싫었다고 고백해야 하는 이도 있었다. 그저 관심 받고 싶은 억하심정이었거나 자기 논리의 덫에서 허우적댔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도 있었다. 군중 심리였거나 메이저리그 경기 시간을 놓치기 싫은 조바심일 뿐이었음을 시인해야 하는 이도 있었다.
다행히 마음을 돌아보며 서로를 다독인다. '만들어진' 유죄 확신일 지 모른다는 무죄 합의로 나아간다. 가장 고귀한 판단인 ‘우리는 알지 못함을 인정해요' 합의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절대 합의 못하는 이가 있다. 유죄를 확신하는 3번 배심원이다. 유죄를 가리켰던 사실들이 '진실의 방으로' 들어야 할 때마다 어째선지 발끈하며 흥분한 이다.
3번 배심원 : (…) 모두들 빈민가 소년을 향한 연민과 불의에 대한 피 끓는 마음으로 여기 온 모양이군. 흥, 당신의 그 동화 같은 얘기가 다른 사람 마음은 움직였는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어림도 없지. 아니, 도대체 왜들 이래요? 유죄란 걸 다들 알고 있잖소! 그놈은 곧 전기의자에 앉게 될 거요. 그런데 당신 탓에 우리 손에서 빠져나갈 판이잖아?
8번 배심원 : 손에서 빠져나간다니? 당신이 사형집행인이라도 되나?
3번 : 그중 하나지.
8번 : 스위치를 직접 누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군.
3번 : 이놈한테면 기꺼이 그러지!
8번 : 당신도 참 딱하네. 스위치를 누르고 싶은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군. 처음에는 공적 응징자처럼 굴더니 실은 소년이 죽는 걸 보고 싶은 거였군. 사실에 기대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원해서 말이야. 당신 가학증 환자야?
3번 : 뭐? 죽여 버리겠어! 이거 놔, 죽여 버릴 거야!
유죄를 의심하는 어떤 시도도 3번 배심원에게 통하지 않는다. “왜 사실에 집중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윽박지른다. 어째 이리 독하게 굳건할까. 한 명이 죽었고 또 한 명의 엄중한 목숨이 달린 지라 모두가 마음을 다잡은 마당에.
“모든 사실이 이 안에 있어. 이거야! 이게 모든 걸 말해준다고!” 3번 배심원의 떨리는 손. 기어이 지갑 속에서 아들 사진을 꺼내 보인다. 아들 16살 때 대판 싸웠다. 아버지를 쳤고 아들과 의절했다. 지금껏 얼굴도 안 보고 사는데 결혼도 하고 별 탈 없이 사는 모양이다. 배심원들 앞에서 사진을 찢으며 욕을 쏟아낸다. 소년에게 대리 응징하고 싶어 못 견뎠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흐느끼다 이윽고 유죄 주장을 포기한다. 모두 말이 없고 평결은 끝난다.
12인의 상처 중 마지막까지 버틴 상처가 자녀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반대 상처라고 달랐을까. 받아들이거나 드러내거나 걷어내기 제일 어려워 덧나기도 제일 쉬운 상처였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스며들어 ‘사실과 확신’을 구성해 냈고 곧잘 성난 사람들로 변신시켰다. 영화 주인공은 늘 8번이지만 우리는 대게 3번이었다.
가족 규칙, 함께 들여다보기
아무리 바빠도 점심때마다 가족끼리 통화하기로 했다는 지인이 있었다. 그 외 가족 간 소통을 위한 추천 규칙은 다양했다. 몰라서 안 하나 싶으니 문제였다. 그렇게 하자고 정하기가 어려웠다. 굴러 내려온 감정과 오해의 눈덩이 탓이었다. 그게 녹지 않은 채 다른 규칙을 들먹이려니 방구석 솔로몬일 뿐이었다.
‘자식 잘되라’고 가르치는 규칙으로 충분할 시기도 있었다. 어느 때부터 ‘서로 잘 지내보자’는 규칙을 정하는 게 더 절실해졌다. 들이밀며 전하는 건 익숙해도 함께 정하는 건 낯설었다. 스치듯 말하면 규칙이 가벼워졌고 의논이 무거워지면 부담스러워했다. 어차피 ‘답정너’라 여기기도 했다. 사무실 업무 회의와 달랐다. 묵묵부답, 발끈, 감정의 골도 패는 듯했다. 새로운 규칙보다 서로 맺힌 걸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3번 배심원이 아들 사진을 꺼내보였듯, 불리지 못하는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고 서성이는 응어리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이었다.
INTJ 아빠를 둔 죄로 우리 가족이 택한 방법은 집안 규칙이라 여기는 걸 각자 정리해 보기였다. 기존 규칙을 먼저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중요한 규칙이든 사소한 규칙이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지켜지든 말든, 옳든 그르든 상관없었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 비교하기로 했다. 무작정 마주 앉는 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기 십상. 부모도 아들도 한 번에 말하기 버거웠다. 틈틈이 녀석의 기분이 올라갔을 때마다 넉살도 동원해야 했다.
날밤이가 정리한 리스트가 압도적으로 길었다. 규칙이라 여기지 않았던 집안 규칙이 이렇게 널렸었나. 대물림된 가치관, 묵시적 규율, 좌우명, 매너, 잔소리처럼 부모에게는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주로 녀석을 향할 때만 예민한 규율과 제한이었다. 시선에 숨은 규칙도 있었다. 부모 역시 ‘답하지 않는 답, 참여하지 않는 참여’의 망토를 휘날리는 빌런이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낳은 똥고집도, 말본새와 행동에 숨긴 금기도 의외로 많았다.
부모가 정리한 리스트 중 날밤이한테 생소한 것도 많아 놀랐다. 내가 아는 건 녀석도 안다고 여겼다. 의도를 달리 해석했거나 의미를 반대로 받아들인 규칙도 많았다. 안다고 여겨 몰랐던 게 널렸다. 날밤이도 깨달은 게 많았을 게다. 가급적 시시비비 없이 바라보려 했다. 이름이 없어도 불릴 자격이 있는 응어리들. 그걸 바라보고 나누는 것만으로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부모를 거부하고 싶은 자녀는 없다고 한다. 자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더라도 부모 자체가 밉다기보다 특정한 면을 거부할 뿐이란다. 기존 규칙을 점검하다 보니 그게 드러나기도 했다. 자녀를 향한 사과는 쉽지 않았다. 양육의 시간 전체가 채점돼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르쳐야 할 것까지 사과할 수는 없는 게 부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럴 때 부모의 자아를 끌어안는 반성의 모노드라마만으로는 모자랐다. 서로 기대서 체크하는 방법도 필요했다.
집안의 규칙을 함께 돌아보는 시도는 조심스러웠지만 사실 낯선 것도 아니었다. 내 야속한 마음과 성난 알리바이만 보지 않기, 나 혼자 보지 말고 드러내 보기. 추궁하지 말고 떨어뜨려놔 보기….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게 사회생활 속에서 그리 새삼스런 시도도 아니었던 것 같다. 혼자 보던 걸 함께 보는 순간에, 늘 보는 걸 다르게 보는 순간에 우리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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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없는 자녀 #가족규칙 #함께 들여다보기
인용 대사 출처 :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오리온-노바 프로덕션, 1957 (각본 레지날드 로즈, 감독 시드니 루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