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는 오는 애들만 오더라는 통계를 봤다. 재미 붙으면 계속 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그랬다. 늘 본 애를 늘 봤다. 책 보는 게 좋은 거면 집에서 볼 수도 있고 빌려 가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도 꾸준히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는 뭔가 있었다.
영화관은 기억이었다. 직장 동료와 함께 본 영화가 ‘썸타는’ 이와 본 영화와 같을 수 없었다. 옷장 속 옷과 백화점의 무수한 ‘신상’ 가운데 어디에 마음이 끌리던가. 집에서 책읽기와 도서관 나들이의 차이가 대충 그랬다. 골프 연습장과 필드의 차이랄까.
다 자란 날밤이에게 도서관 나들이 기억을 물었더니 두 가지 느낌이 남아 있단다. 첫 번째는 ‘문득 둘러보면 모두가 책 보던 분위기’란다. 녀석은 그냥 놀고만 온 날에도, 심지어 지루했던 날조차도 책 보는 이를 바라보다 온 것이었다.
느낌 안다. 책의 바다만으로도 뭔가 있다. 이용객들의 진지한 열기는 독서를 북돋아 빛나게 한다. 저마다의 세계에 몰입한 눈빛들은 호기심과 동경을 퍼트린다. 사서들의 차분하고 진중한 업무 태도도 책의 권위를 높인다. 도서관 아이는 그 기운에 감긴다.
300권인가 한정 발간됐다는 세로 80cm 남짓의 스타워즈 도판 책을 넘겨보던 날밤이의 황홀한 눈빛이 기억난다. 도서관에서 가끔 마주치는 희귀 전시 서적은 늘 접하는 책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서가에 꽂힌 주옥같은 제목을 훑으면 자극을 얻는다. 서가와 습기는 상극이라 통유리에는 햇살이 밝고 계절이 흐른다. 아무 데서나 접하는 기운은 아니다.
두 번째 기억은 이것저것 뒤적여 보던 기억이란다. 자유로운 탐색이었다는 말 같다. 성향마다 다를 테고 늘 그럴 리도 없겠지만 도서관이 일단 친근하고 흥미진진하며 뭣보다 편한 기억이었던 듯하다.
도서관에서 우선 내 책을 뽑았다. 아동자료실로 가서 날밤이를 풀어 놓았다. 칠 만한 사고가 별로 없는 데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배울 나쁜 짓이라야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싶어 멀찍이 앉았다. 읽어주는 교감은, 우리 경우에는 집에서도 족하다 여겨 조르지 않는 한 읽어주진 않았다. 지루해하면 ‘권정생 선생님 책 3권 찾아오면 젤리 준다’ 했다.
공공 매너를 지키는 선에서는 편한 곳이라는 기억을 주는 게 중요할 듯했다. 오자마자 나가자 할 때도 있었는데 허벅지를 찌르며 나오려 했다. 녀석에겐 인내심 수련장보다 자유로운 출입의 기억이 더 중할 듯했다. 좀 쑤셔 하지 않고 만화책이라도 꺼내 든다면? 3대의 공덕으로 은혜 받는다 여기자. 도서관에 들른 것으로 족하니 나머지는 덤이다. 오가는 길이 ‘맛있는 도서관길 혹은 서점길’인 것도 괜찮지 싶다. 아무래도 너무 어릴 때 데리고 가는 건 모두에게 못할 일이었다. 전통 나이 6~7세부터가 어떨까 싶다.
도서관 첫 나들이를 앞두고 자녀가 좋아하는 요리와 선물로 축하 의식을 벌였다는 분이 있었다. 위층부터 짓는 고층건물은 없으니 생활 독서를 위해 아이 학원이나 골프 라운딩을 확 줄였다는 분도 만났다. 대게 그렇듯 우리 가족도 품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가기 시작하니 도서관의 온 기운이 치어리더였다. 도서관 활용법 콘텐츠는 많을 테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을 뿐 홈런은 못 쳐도 포볼은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