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판타스틱」
날밤이는 강원도 최전방에서 복무 중이다. 입대를 두고 우리 부자는 좀 맞섰다. 고3 무렵부터 녀석의 삶에 일절 끼어들지 않았지만, 적극적 부모 노릇 딱 한 가지만은 마저 싶었다. 군대 사건 사고 이슈는 죽 있었다. 다행히 전공과 학벌 여건이 되니 충분히 알아봐서 안전하고 상처받지 않는 군 복무를 했으면 하고 바랐다.
이공계 대체복무가 마뜩찮으면 공군이나 해군의 기술 모집병 지원은 어떠냐고 몇 차례 권했다. 비교적 쉬운 기술 자격증도 하나 마련해두라 했다. 웬걸. 어느 날 그냥 최전방의 육군 신병교육대로 징집되겠단다. ‘요새 일반 군대도 좋아졌대’와 복학 일정에 맞더라는 게 이유였다. 신교대 입소 날짜는 12월 말.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했지.
혹한기 신교대 3박 4일 맛보기 캠프 어디 없나 싶었다. 입영 연기신청 마감일 전날 끝내 녀석에게 전화했다. 모집병 말고 일반 징집병이어도 상관 안 할 테니 날씨만이라도 풀릴 때 가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했다. 하여튼 ‘퐈이팅’ 하나는 넘치는 녀석이었다. 가도 가도 설산이었던 신교대에 녀석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는 “내가 어쩌자고 아들을 낳아서는….” 했다.
녀석은 결국 철책 두른 산악을 헤매는 병사로 배치됐다. ‘괜찮다. 군 생활 제대로 하겠네’ 그렇게 말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의연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지막 ‘의욕적 개입’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대부분 자기 신념을 기반으로 부모 노릇을 계획한다. 통념이 옳다는 신념을 지녔다면 현실적 관행을 따를 테고, 아니라면 좀 벗어난 역할 플랜을 짜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됐든 부모 역할을 지탱하는 신념은 대부분 자기 기억과 결핍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자녀들 삶의 방식에 깊숙이 개입한 아빠와 엄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옆집 엄마’와는 어마어마하게 딴판인 신념을 지닌 채 자녀의 삶에 개입한 의욕적인 부모 사례다. 미국판 정글의 김병만이라 할 만한 「캡틴 판타스틱」의 벤 부부다.
벤 부부의 양육법은 물론 유별나다. 문득 양육 장소와 교육 커리큘럼의 유별남으로부터 잠시 눈을 떼보면 어떨까 싶었다. 벤 부부의 부모 노릇이나 선생님 노릇이 일상적 부모나 선생님의 그것과 그렇게 다르기만 할까.
모닥불 옆에서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는 벤 가족의 학습법. 이건 프랑스 바칼로레아 학습 커리큘럼이나 유대인식 하브루타 교육법과 닮았다. 태권도 학원에 가듯 숲속에서 무술을 배운다. 자기 힘으로 암벽을 끝까지 올라야 하는 문제 해결법은, 부족한 과목 자기주도학습법과 닮았다. 사슴을 사냥한 아들에게 성인식을 치러주는 아빠 벤은 자녀의 첫 월급을 칭찬하는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숲속의 명상은 한강 둔치의 아침 요가 같았다. 공중도덕을 가르치듯 가족공동체 윤리를 가르쳤다. 벤 부부의 ‘장기 기숙형 숲스쿨링’이 50년 뒤 전면 제도화할 교육부의 교육과정이 되지 말란 법 있을까.
육아에 정답은 없다는 말처럼 현실적이라 믿는 일반적 관행도 실은 명확하지 않았다. 영어 조기 교육을 두고도 아빠 다르고 엄마 달랐으며 옆집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교육 당국마다 달랐다. 벤의 커리큘럼 역시 떠올리지 못할 변용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벤 부부는 양육 커리큘럼이 유별난 부모라기보다 그 양육 철학을 오래 일관되게 지키려 했던 부모라는 점에서 내 눈길을 끌었다.
양육 철학, 그러니까 부모의 관점과 신념을 자녀에게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보면 벤 역시 주류 학부모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자녀를 구하고자 대안적 가족공동체라는 신념으로 오래도록 자녀의 삶에 적극 개입했다. 하지만 또 어느 순간 어긋난 톱니에 혼란스러워했다. 스케일은 턱없이 달라도 나 역시 기억과 경험에 얽매여 날밤이의 입대 전략을 구상했다가 속상하고 혼란스러워하고 포기하고 마는 어쩔 수 없는 부모였다.
지속적 학교폭력이 무서운 건 자기가 자기인 걸 끝없이 혐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밤이를 보내고 잠을 설친 날 아빠에게는 불안함도 불안함이었지만 신교대 기억 속 분노와 두려움과 자책감이 되살아났다. ‘그 많은 방법 놔두고 왜 내 아들만?’ 같은 억울함마저 일었다. 자녀 인생 진로에 대한 아빠의 관점이 부정당하는 기분도 없지 않았다.
현실적이고 쉬운 길이라는 이름 아래 자녀를 부모 기억의 틀에 맞추려다 실패하는 일을 반복하는 게 양육일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어렵게 자란 이에게는 부유한 삶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또 그렇게 확고했던 벤 같은 이라도 자녀의 안전사고 앞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정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나이가 들어도 부모 관점을 이식할 수밖에 없지만 어느 순간 좌절하며 바꿔 가는 거였지.
날밤이식 군 생활도 나름 배울 게 많겠지. 고생 좀 해보고 나면 선택과 갈등 상황에서 관점 간의 협상과 조정, 그리고 설득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겠지. 잘 모를 때 어른 말 듣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배울 기회도 되겠지. 반대로 아빠가 몰랐던 세상을 아빠에게 깨우쳐 줄 수도 있겠지.
‘하필 나만 그렇게 재수가 없지?’ 같은 억울함도 ‘나라고 그런 일 생기지 말란 법 있나. 어째서 내 가족에게만 생기면 안 된단 말인가’ 하는 마음으로 바뀌기도 하겠지. 남의 밥그릇 부러워하다가 청춘 낭비되는 불행이 아니라 학사 일정에 맞춰 후다닥 다녀오는 행운일 수도 있겠지.
직장에서는 자유로움을 바랐지만 막상 퇴사하니 직장의 안정감을 바랐다. 현실적 틀에 갇힌 듯해도 나름대로 틀 밖이었으며 틀 밖을 찾은 듯해도 결국 틀 안이었다. ‘틀로부터 자유로운’이라는 건 판타지였다. 양육의 모든 순간도 기억과 결핍으로 빚어진 부모 자신의 틀이 개입하려는 순간임을 망각하지 않는 걸로 족할 듯하다. 자녀의 틀은 부모의 틀과 다를 수 있다. ‘판타스틱’한 양육이란 그 과정을 견디며 수정해가는 소중한 여정인 듯하다.
누군가를 이상하게 여기는 순간은 그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기는 순간임도 잊지 말아야겠다. 한겨울에 그냥 육군 징집병이 되겠다는 날밤이에게 ‘아주 아름답게 미쳤구나’라고 하지는 않았으니 나름 선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