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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질이 탈출

by 해우소 Mar 11. 2025

목욕이 좋아요. 그렇다고 매일 하는건 아닙니다. 하다가 안 하면 더러운 사람이 된 것 같겠지만 안하다가 하면 극강의 상쾌함과 개운함을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 엄만 참 깨끗하고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위생교육이 미숙했는지, 어릴적 언니 몸에 검은 반점이 자꾸 생겨서 엄마가 병원에 데려갔더니 곰팡이가 핀 거라고 했던 게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네요. 나무에 버섯도 아니고 사람 몸에 곰팡이라니. 언니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가끔 정수리랑 앞머리만 비누칠을 하곤 했습니다. 어디가 가장 기름이 끼고 냄새가 나는지 잘 알아서요. 겉모습은 멀쩡하니까 나만 그런 더러운 비밀을 알아야한다는 사실이 억울할 때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나는 깨끗했느냐, 언니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글쎄요. 곰팡이가 안 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씻길 때 즐거워요. 허리춤에 닿는 뒷통수와 조그만 손발을 조물조물 거품내며 만지작거리는 기분이 좋아요. 품에 꼭 안고 따뜻한 물을 뿌리며 앉아있으면 옛날 그 때 그 아가가 아직 내 뱃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되면 좋겠어요. 물기를 닦고 침대에 널부러진 아이들이 티비에 눈을 고정하는 동안 몸에 로션을 듬뿍 발라 마사지 해주고 말랑말랑한 손과 깍지를 낀 채 잠들 때까지 볼록한 뒷통수에 코를 갖다박고 냄새를 맡으면 극락이지요. 목욕이 언제라도 즐거우면 좋겠어서 배스밤과 스프레이, 버블 등 다양한 물놀이 장비를 구비해두고 있어요.


기분이 많이 다운될 때는 나도 거품목욕을 합니다. 그게 오늘이고요. 러쉬에서 나오는 레인보우라는 제품을 연말에 산타 할아버지께 선물 받았는데요, 색깔도 오색찬란하고 클레이처럼 매끌매끌 촉감도 부드러운 걸 조금만 떼어 물에 문질러 풀면 거품이 몽글몽글 아주 풍성하게 피어오릅니다. 향기와 색, 습도와 온도의 조화가 정말 몇 시간동안 큰 행복을 줘요. 그 안에 앉아있으면 생각도 마음도 꽤 부드러워지지요.


이상 간만의 목욕에 대한 특별한 소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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