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세요

몸에서 힘을 빼고 여유로움으로 채우는 것

by 느루



아침이 되면

어느새 익숙해진 일상의 반복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손주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밥을 차려 먹인다.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해야 한다.

울음을 달래고 싸움을 말린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한숨 돌리나 싶으면 또다시 해야 할 일들이 밀려온다.

쉬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버티는 날들이 반복된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진다.


주말 아침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시선이 손주들에서 책으로 옮겨진 찰나의 순간, 부엌에서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싱크대 아래 유리컵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되자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조심 좀 하지!”

순간 효은이의 얼굴이 굳었다.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작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효은이가 나를 피해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마음속에서 후회가 차올랐다. 손을 뻗어 효은이를 다독이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효은이는 아무 말 없이 깨진 유리컵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한숨을 삼켰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바닥에 쪼그려 앉아 유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바닥 위로 흩어진 작은 파편들이 내 마음 조각들 같았다.

내 자신이 점점 낯설어졌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며 감정은 바닥을 드러냈다.


무언가라도 해야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다 엉망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요가가 떠올랐다.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까지 다독일 수 있는 명상 요가라면 더더욱 꼭 필요한 시간이리라.

요가 선생님께 처음부터 내 상태를 솔직히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단체 빈야사 수업과 개인레슨을 주 2회 추천해 주셨다. 개인레슨 시간에는 명상과 아로마테라피를 포함해 깊은 호흡과 이완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기를.

그래야 손주들에게 더 따뜻한 손길을 줄 수 있을테다.


"제발 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요가 선생님이 말했다.

“단체 수업 시간에 제가 느루님 옆으로 잘 안 가는 거 아세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제가 가면 느루님 몸이 경직되는 게 보여요.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들켰다. 선생님의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니.


”힘을 빼세요.“

힘을 빼라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어깨를 내려볼까? 손끝의 힘을 빼볼까?

그래도 여전히 몸이 딱딱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힘을 풀어야 하는지 몰랐다.

남은 한 동작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쓸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숨을 내쉬자, 몸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 순간 강사님이 원하던 동작을 해냈다.

숨을 내쉬니 마음을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이 낯설면서도 편안했다.

처음 느끼는 작은 변화였다.


수업을 마치고 강사님은 차크테라피를 해주셨다. 타로카드를 뽑듯 아로마오일 카드를 뽑아 해당 오일로 테라피를 하는건데 은은한 향이 공간에 퍼뎠다.

가만히 눈을 감고 향을 맡았다.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과 함께 몸에 가득한 긴장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긴장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힘을 빼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 있다.

몸은 알고 있었다. 무겁게 쌓인 피로와 작은 근육의 떨림과 나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불안까지.

그 신호를 무시한 채 살아왔다. 그게 나를 지탱해주는 방법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힘을 빼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 그 과정 역시 나를 위로하는 방법과 닿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버텨왔다는 걸 이제야 돌아본다.

힘을 빼는 법을 몰랐을 뿐이고, 이제라도 천천히 배워가면 되겠지.

아직 내게 남은 계절이 있다. 이번에는 그 계절을 서둘러 흘려보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

깨닫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이 시간도 언젠가는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란다고 해서 모든 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작은 것이라도 하다 보면, 그 순간에 조금 더 머물 수 있고,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언젠가 내 앞날을 조금씩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한다는 압박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끌고 갔다. 하지만 조급하다고 해서 몸이 더 유연해지거나 마음이 더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몸이 긴장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천천히 풀어주면 된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했다.

조급함은 긴장을 만들고, 긴장은 실수를 만든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욕심보다는 감사함을 담아, 여유라는 사치를 누리며 느릿한 오후를 보내듯 그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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