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나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책 볼 시간에 축구 혹은 농구를 하러 나가거나 게임을 한 판 더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뒤로 하고 놀러만 다닌 그런 내가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인 곳은 이상하게도 군대였다. 훈련소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할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같은 생활관 전우들과 수첩으로 빙고나 오목 같은 걸 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마저도 친구들이 같이 있을 때야 할 수 있고 혼자 혹은 소수로 있을 때는 더더욱 아무것도 없다.
그때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성경이었다. 훈련소에서는 조그마한 성경을 나눠주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종교를 가지지 않고 성경을 읽다 보니 신앙심 있는 구절로 읽히지 않고 그저 소설을 읽는 듯했다. 그렇게 성경을 한 달 내내 읽게 되었다. 전입 이후 싸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의 준말)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모세의 기적’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홍해로 알려진 ‘Read Sea’는 오번역이며 사실은 ‘Reed Sea’였고, 갈대밭이 무성한 드넓은 호수를 바다로 착각했다는 것이며 바람이 세차게 불 때에 호수 물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호수 바닥이 나온다는 것이 입증가설이었다. 나름대로 위성과 지질학적 데이터로 충분히 그 가설은 신빙성이 짙었고 여론 또한 그 가설을 확실시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는 실제로 실현가능한 자연현상임에도 모세와 수많은 유대인들 앞에 그 현상이 필요로 할 때 딱 이루어졌다는 기적 같은 사실은 불변하다는 것이었다.
이 영상을 시청한 후 성경을 소설로 믿고 있던 나는 성경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소설로 생각하고 읽을 때와 수필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읽을 때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새로운 책을 읽는 것과 똑같았다. 그렇게 성경의 신비한 지식에 매료된 나는 또 다른 종교적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불교 서적부터 힌두, 이슬람 등 다양한 책들을 접했다. 어렵고 기이한 단어들로 가득 찬 그런 책을 왜 읽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내 꿈은 인디아나 존스였기에 더 관심이 깊어 잘 읽을 수 있던 것 같다.
왜곡된 사실들도 여럿 있었지만, 상당수가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여 쓰인 책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책들을 많이 접하다 보면 그와 더불어 많은 예술작품들도 알게 된다.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벽화와 조각상, 세계 여러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명화 등 많은 것들이 종교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닌 나는 어릴 적 꿈이 아직 남아있듯 세계 각국의 역사적 명소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는 걸 좋아했다. ‘폴 세잔’의 생가를 찾아가거나 '베이커가'를 방문하고,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나 '앙투앙 드 생텍쥐페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여러 역사와 예술을 접한 나는 교황청에 꽂혔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보관하고 알고 있는 듯한 교황청을 꼭 가보고 싶었고, 유럽 여행 중 나는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을 더불어 수많은 작품을 감상했다. 서적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그림들을 보며 그동안 읽었던 종교 서적들을 뗘 올렸고,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던 12제자 부분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12제자가 나오는 ‘최후의 만찬’ 그림에 관심이 생긴 나는 그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찾아보게 되었고, 우연히 영화 ‘벤허’를 알게 되었다. 벤허의 풀 네임은 유다 벤허. 12제자 중 예수를 배신한 그 유다와 같은 이름이다. 그렇기에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줄 알았지만, 영화 ‘벤허’는 소설이었다. 영화를 보진 않고 내용만 대충 알고 지나간 후 몇 년이 흘러, 뮤지컬 벤허가 나에게 다가왔다.
뮤지컬, 벤허
명망 높은 유대인 가문의 귀족 유다 벤허는 예루살렘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어릴 적 옛 친구인 메셀라가 로마의 장교가 되어 돌아와 간만의 재회를 하게 된다.
비교적 낮은 신분의 메셀라는 여러 전쟁을 겪으며 살아왔고 공을 세워 충실한 로마의 로마 장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벤허에게 로마 총독의 행군 날에 유대인의 폭동이 있을 예정이며 소탕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벤허는 당연시 이를 거절한다.
다음 날, 벤허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 로마인 그라투스 총독의 행군이 진행되었다. 벤허의 여동생 티르자는 집 옥상에서 행군을 구경하다가 기왓장을 밟아 행군열에 떨어뜨리는 사고를 내고 만다.
벤허의 옛 친구 메셀라는 이를 문제 삼아 벤허 가문 전체에 반역죄라는 누명을 씌운다. 억울한 누명을 쓴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노예가 되고, 어떤 우연으로 그 군함의 사령관 퀸터스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에 자유의 신분을 얻게 된 벤허는 메셀라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
비록 창작 뮤지컬이지만 유대인과 로마인의 갈등, 골고다 언덕 등 성경과 더불어 역사와 큰 연관이 있는 극이었다. 벤허는 자유를 얻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메고 고문을 받는 사람을 만난다. 아무래도 예수를 상징한 인물인 것 같았다. 무교임에도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다. 예수로 비치는 인물은 벤허에게 복수를 멈추고 그들을 용서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고, 벤허는 깨달음을 얻은 듯 그리 나아갔다. 이에 벤허의 솔로 넘버인 골고다는 그 메시아에게 한을 쏟아내는 듯한 울부짖는 넘버인데, 개인적으로 극의 클라이맥스인 만큼 매우 인상 깊었던 장면인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종교적 얘기가 있는 뮤지컬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속칭 지크슈, 짘슈가 있다. 아직 관극을 해본 적 없지만, 벤허와는 달리 예수와 마리아에 초점을 더 두고 있는 극인 걸로 알고 있다. 종교와 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는 나이기에 이런 극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