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

by 해나

우리가족은 모두 P형 이라 했다. P형은 MBTI에서 계획형J vs 즉흥형P 에서 따온 것이다.

아무리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라 하더라도 부모가 된 이상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가족여행이므로 최소한의 계획은 필요하다. 그 첫번째가 날짜이고, 두번째가 숙소이다. 아이들도 초등학생이 되고 각자의 사회생활 영역이 있다보니 사전에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집에서 스케줄 조정이 가장 어려운 부분은 큰아이의 축구클럽이다. 우리 큰아이가 소속된 축구클럽은 (모든 축구클럽이 동일한 기준으로 운영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성실성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해서 훈련에 참석하지 않으면 경기 출전기회가 없어진다. 이에 큰아이는 학교등교보다, 가족여행보다, 축구클럽에 출석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 한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축구클럽에 중요 경기나 훈련이 있는지를 체크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문제는 이 축구클럽도 우리가족 만큼이나 즉흥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여행을 앞두고 미리 훈련 불참을 알리자 그때서야 주말 단체촬영이 계획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거다. 신랑은 우리가 먼저 계획했고, 먼저 말씀드렸으니 사진촬영은 빠지고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고 나한테만 주장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들의 일에 관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나만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요즘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우리는 예전 세대를 살아서인지 아직도 우리는 학교건 학원이건 클럽이건 선생님 앞에서는 강하게 의견을 내세우기가 어렵다. 혹시나 나의 이러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우리 아이가 밉보일까,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어쩌겠나, 여행 몇시간 늦춘다고 큰일나지 않겠지만, 클럽 단체사진에 우리아이만 빠지는 것은 큰일이 될 것 같으니 큰아이 축구클럽 단체사진 촬영만 끝내고 출발하기로 했다.


여행 출발 전날, 아이들의 게임시간이 끝나고 여행준비를 시작한다.

'각자 외출복, 속옷 3개씩, 잠옷, 기타 각자 필요한 것들 모두 거실에 꺼내 놔' 라는 나의 외침으로 짐싸기는 시작된다. 평소에 모든 빨래는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시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 상태가 어떤지는 이렇게 여행짐을 쌀 때에나 제대로 보게 된다. 큰아이는 학교는 교복을, 그 외에는 축구 훈련복만 입고 다니는 아이라서 그런지 옷들이 모두 아슬아슬하게 딱 맞거나 너무 허름해 보였다. 평상시에 옷을 사달라고도 하지 않고, 쇼핑하러 가자고 해도 싫다고만 하는터라 여행에 마땅한 옷이 부족해 보였다. 신랑 역시 단벌신사로 하나 입고 세탁해서 또 입고를 반복하는 사람인데, 막상 여행을 가려고 옷을 챙기려니 마땅한 게 없단다. 헉,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쿠팡 새벽배송'이다. 새벽배송으로만 한정하여 검색하려니 맘에 쏙 드는 것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 최소한으로 큰아이 티셔츠 하나, 신랑 반바지 하나만 새벽배송으로 주문했다. 이미 잠든 큰아이에게 물어보고 주문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혹시 맘에 들지 않을까봐 걱정되긴 했지만, 뭐 와우회원 무료반품이라는 좋은 기능이 있으니 우선 지르자!.


캐리어를 펼쳐놓고, 쌓여있는 옷들을 종류별로 차곡차곡 캐리어 한쪽에 담는다. 다른 한쪽에는 우리 가족의 여가생활을 위한 노트북,게임기,보드게임류,충전기들을 넣으니 한쪽이 가득 채워진다. 여름여행에 빠질 수 없는 물놀이용품- 래쉬가드, 구명조끼, 아쿠아슈즈, 수모, 수경, 튜브등은 여름엔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이미 전용가방에 준비가 되어 있다. 물놀이를 워낙 좋아하는 가족인지라 지난주에도 이미 웨이브파크에 다녀온 그대로 다 셋팅이 되어 있다. 그 어렵다는 인터넷쇼핑을 빼면, 여행가방을 싸는 것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모든 여행을 할때마다 빠르게 여행가방을 싸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하나씩 꼭 빠진게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나와 우리 아이들은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없으면 없는대로 뭐 큰 문제가 없으면 되는거고, 혹시 꼭 필요하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것들일 테니까 말이다. 단 한사람, 우리 신랑은 이런 구멍구멍에 심적 불편함을 호소하지만, 막상 그도 그리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아니다. 아니면, 나랑 12년을 살면서 포기한 것일지도... ㅎㅎ

keyword
이전 01화여행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