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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Oct 14. 2023

엄마와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손절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살아보기로 했다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책과 유튜브 영상에서 추천해 주는 나르시시스트 대처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나르시시스트 대처법은 많지만, 크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상대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2. 나르시시스트와 거리를 둘 수 있다면 반드시 거리를 두고 만나지 않는다.

3. 거리를 둘 수 없고 계속 대면해야 하는 관계의 경우, 나르시시스트의 말이나 행동에 크게 반응하지 말고 회색돌 기법을 쓴다.

4. 나르시시스트가 공격을 하거나 괴롭힐 때,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나르가 하는 말들은 나르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대답하지 않거나 자리를 피한다.

5. 나르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면서 스스로 '내가 너무한가?'라고 자책하지 않는다.

6. 모든 대처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은 물론 모든 연락(모든 연락 차단, sns팔로우 취소  등등) 관계를 끊는 No Contact를 한다.


만약 내 지인이나 회사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였다면 거리를 두거나 손절하면 그만이었다.

사귀는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냥 헤어졌을 거다. 물론 안전 이별을 해야겠지만.


문제는 내 가족인 엄마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이었다.

"뭐야 이 사람 나르시시스트였어? 아, 빨리 손절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르시시스트라는 점 때문에 나는 위에 언급된 대처법들을 적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많은 정신과 전문의 들은 나르시시스트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까지의 엄마 언니와의 관계와,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어떻게든 두 사람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내 가족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악한 존재인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심적으로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는데, 엄마와 언니가 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몇 배 더 힘들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엄마와 언니가 하는 폭언이 심해지는 것을 겪으면서 나는 두 사람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문가 들은 나르시시스트 들은 관심을 너무나 원하고,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관심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했다. 나르들이 선 넘는 행동을 하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화나고 슬픈지 말하고 싶을 수 있지만, 그래봤자 나르시시스트 들을 더 기쁘게 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게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넌 나르시시스트 같아"라고 말하거나, 나르들의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고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자.


정상인들의 경우는

"너가 나에게 그 말을 하고 선을 넘어서 내가 불쾌하니 사과를 하라"라고 주의를 주면 미안해하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하겠지만,

나르시시스트 들은 "다 널 위한 거였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너 때문에 내가 상처"라고 말할 것이다.

"아, 미안해 됐지? 이제 그 얘기는 그만 좀 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너 나르시시스트 같아"라고 말해 봤자 나르들은 오히려 "니가 나르시시스트야!"라고 대꾸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대화나 이해를 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추천한 회색돌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요즘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정보가 매우 많아서 회색돌 기법이라고 검색하면 예시별로 적절하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나와있다. 하지만 간략하게 요약을 해보자면 회색돌 기법은 아래와 같다.


회색돌 기법

말 그대로 그레이 락이 되어서 나르시시스트들이 원하고 좋아할 만한 피드백이나 반응을 해 주지 않는 것이다. 회색 돌이 되는 것!

내가 발끈할 만한 말을 하며 공격해도,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를 해도,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말하며 불쌍한 척을 할 경우에도 딱히 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어중간하게 회색돌이 되는 것이다.

화이트도 블랙도 아닌 그레이 락이 되는 것이 바로 회색돌 기법이다. 무색 무취 그 자체인 회색돌.



나르시시스트인 상대가 나에게 비난을 하거나, 나를 공격할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던지는 미끼를 무는 것이라는 걸 안 나는, 이전까지 내가 엄마 언니에게 했던 대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와 언니가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고 조롱하면서 공격을 할 때,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흥분하며 화를 내 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나는 회색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 언니와 이전의 관계를 정리하고 무미건조하게 행동하며 거리를 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와 언니를 대면하기 전이면 늘 전문가들이 조언한 대로,


"나는 회색돌이다. 나는 회색돌이야. 두 사람이 아무리 개소리를 해도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야."라고 중얼거리고 회색돌에 대해 떠올리며 스스로 되뇌었다.  


회색돌이 된다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비난을 할 경우에만 돌처럼 반응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르시시스트에게는 돌처럼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나르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도 크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와 언니가 상처되는 말을 하거나, 막말을 하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반박한 적도 있다.

가족 단톡 방에서 두 사람이 흥미로운 얘기를 해도 답장을 안 하고 무시하는 것은 그나마 쉬웠다.

엄마가 카톡과 전화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결혼식과 관련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볼 경우, 많은 정보를 주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답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와 언니를 만나고 나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 경우에는 나 스스로

'아... 아까 그냥 대꾸도 하지 말고 무시할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나르시시스트들이 하는 공격적인 말에 할 수 있는 대답 중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의 말을 반박하면서 구구절절 내 감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NO'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고, 나는 열심히 학습을 했기 때문에 회색돌 기법을 잘 사용하게 되었다.


엄마가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나서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게 너 생각만 하니?", "너 엄마가 말을 하는데 무시하니?"라고 말을 해도 이전처럼 내가 이기적이지 않고 엄마를 무시한 게 아니라고 변명을 하거나 화를 내고 반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할 경우 차분히 눈을 쳐다보며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걱정되는 문제라고 말하는 것들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고, 엄마가 비상식적인 말을 하며 본인이 힘들다고 아무리 내게 말해도 그건 내가 책임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 언니가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거나, 비상식적인 말을 하면서 나를 공격해도 나는 전처럼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빤히 응시하거나, "아닌데요.", "아니야.", "아니", "NO."라고 말하며 무 반응으로 나오자 엄마와 언니는 자기들 말을 무시하고 반박하는 거냐며 흥분해서 날뛰었다.


나르 엄마와 새끼나르 언니는 전문가들이 회색돌 기법을 쓰면 나르시시스트가 보일 반응이 어떨지 말해줬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행동을 했다. 두 나르들은 나에게 분노하거나, 갑자기 잘해주면서 나를 회유하려고 했다. 두 사람은 어느 날은 분노하고 화내다가도, 어느 날은 내게 이사하는데 챙겨줄 것은 없냐며 갑자기 잘해줬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가까운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회색돌 기법을 쓰면서 무관심하게 하다 보면 죄책감이 들 수도 있지만 절대 나르시시스트 들을 불쌍해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단단한 회색 돌이 되어갔다.


꼭 나에게 상처되거나 선을 넘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엄마와 언니가 말하는 일상 이야기에 대해서도 회색돌처럼 무미건조하게 대답해야 했다. 별 반응 없이 내 생각도 말하지 않고, 나르 엄마와 새끼나르 언니가 관심 가질 만한 그 어떤 주제로도 대화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언니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엄마나 언니랑 결혼 관련된 얘기를 할 경우 회사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팀장님과 업무 관련 대화를 했던 것처럼 꼭 해야 할 말만 했다. 엄마 언니가 나한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거나, 나와 잡담을 원할 경우에도 별 감흥 없이 대충대충 대답했다.  


나는 당시 미리 구한 신혼집에서 남자 친구와 지내다가 주말에 하루 정도는 짐 정리를 하러 본가에 갔었다. 엄마 언니와 같이 지내면 분명 계속 두 사람이 나를 자극할 것을 알았고, 두 사람과 같이 있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엄마 언니와 떨어져 있었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두 사람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엄마 언니와 같이 살기 전 혼자 오래 자취를 해서 정리할 짐이 많기도 했고,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몇 달을 앞당겨 이삿짐센터를 부른 탓에 본가에 가면 엄마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릴 것들과 챙길 것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 언니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나는 아무 표정도 없이 엄마와 언니가 하는 모든 말들에 무미건조하게 반응을 했다.


엄마와 언니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하거나, 재밌는 말을 해도 나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는 결혼 준비 전부터 나와 내 남편에게 박사를 할 생각이 없냐고 항상 물어봤다.

엄마 언니와 식사를 하다가 엄마가 나에게 "너 남자친구는 크게 야망도 없는 것 같은데 걔는 박사 할 생각은 없니?"라고 말을 해도 나는 전에 했던 것처럼 "제 남자 친구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기분 나빠요! 저나 오빠나 박사 생각 없다고 했잖아요, 그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야망 없는 거 아닌데요. 아니요, 생각 없어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밥을 먹자 언니는,

"너는 너 생각해서 걱정해주는 엄마가 고맙지도 않냐? 엄마한테 잘해. 너 진짜 엄마가 니 결혼식에 안 갔으면 좋겠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전처럼 어떻게 결혼식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면서 그런 말 할 수 있냐고 화내지 않았다. "아니."라고 짧게 대답하고 먹던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와 언니는 어이없어하며 나를 개념이 없는 애라고 씹어댔지만, 나는 "나 개념 없지 않아."라고 대답하며 밥을 싹싹 비운 후 정리할게 많아 먼저 일어난다고 말하고 다시 내 방에 들어가서 짐 정리를 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짐 정리를 끝낸 뒤 신혼집으로 다시 가보겠다고 하면, 엄마는 "벌써 가려고? 엄마랑 결혼 전에 시간 좀 더 보내지... 조심히 잘 가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이후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그 다음 주에는 며칠 동안 집에서 지내면서 회사를 나가거나 두 사람과 전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마자 두 사람은 내게 막말을 하고 상처를 주며 나를 힘들게 했다.



역시 나르시시스트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나는, 그 이후 두 사람과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가 필요없는 옷과 책들을 버리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거나, 같이 영화를 보거나 맛집에서 브런치를 사 줄 테니 식사하러 가자고 말해도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몇시간 만에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을 챙겨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둘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 이었다.


나르 엄마와 언니는 변한 나를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자신들을 무시하고 가족의 도리도 안한다며 화내고 나를 비난했다.


엄마는 몇 시간 만에 짐 정리를 하고 바빠서 가봐야겠다고 현관을 나서는 나한테 늘

"너는 결혼 전 엄마랑 같이 밥도 안 먹고 시간도 안 보내고 가버리는 나쁜 년이야"라고 했다.


엄마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깨달은 지 한 달 만에 나는 "저 나쁜 년 아니에요. 잘 지내세요."라고 말하고 죄책감 없이 가볍게 집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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