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세상은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고요했다.
거리는 비어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려졌으며, 마음마저 움츠러든 계절이었다. 인도에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눈에 익은 담벼락과 골목길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을 흐르는 공기는 예전과 달랐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오래전부터 지워져 있던 한 채의 집.
무려 20년 가까이 방치된 채, 벽돌은 삭아내리고 창문은 부서져 검은 공허를 드러내고 있었다. 잡초가 길을 막아섰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처마 끝이 삐걱이며 쓸쓸한 울음을 토했다. 이곳은 사람들 사이에서 ‘암흑가’라 불리며, 낮에도 발길을 멈추는 이를 보기 힘든 장소였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오래도록 집을 바라보았다.
낡고 버려진 공간, 멈춰버린 시간,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잊힌 이야기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붙잡았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나는 한 줄기 가능성을 보았다. 손길이 닿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그 변화가 마을의 숨결을 바꿔 놓을 것 같은 확신이었다.
이 책은 그날의 멈춤에서 시작되었다.
폐가 앞에서 마주한 시간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마을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버려진 것은 다시 채워질 수 있고, 멈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어떻게 한 마을의 풍경과 마음을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