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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길

by Firefly

땅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길


서문리의 골목 끝,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오래된 담벼락 너머에는
한때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했던 마당이 있었다.
이제는 풀꽃과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 흙길 위에 부드러운 초록빛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봄이 왔다.
첫 삽이 흙을 가르자, 오래된 땅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듯 포근한 흙 냄새를 내뿜었다.
그 냄새 속에는 아이들이 뛰놀던 웃음소리, 장독대 옆 고양이의 발자국, 저녁밥 짓는 연기의 기억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땅은…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이준호 씨는 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햇빛 속에서 먼지가 반짝이며 흩날리고, 담장 너머 감나무 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오래된 농기구를 꺼내 들었고, 누군가는 손수 씨앗 봉투를 가져왔다.
어르신은 무릎을 꿇고 흙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참… 따뜻하구나. 옛날 생각이 난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들이 삽자루에 매달려 장난을 치고, 어딘가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채움뜰은 그렇게, 땅과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이어주는 마을의 심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서 있는 모두는 알았다.
이곳은 더 이상 버려진 땅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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