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부러움이란 받는 것보다 바라보는 일이 익숙한 단어다. 대부분 내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오갔던 그들의 경험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내가 해보지 못해서, 나의 용기부재, 혹은 상황 탓 아니면 귀찮음 일지도 모를 여러 핑계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하여금 부러움을 산 것이다.
‘나 이번에 프랑스 가는데….’
‘나 이번 주말에 공연 보러 가!‘
’저번 주에 진짜 맛집 갔었거든?……‘
…..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때를 생각하는 눈빛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술관에서 이목을 끈 작품을 보듯 나는 그 눈빛을 옆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해 본다. 언어는 우리의 표현을 모두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꼼꼼하게 그려보려 한다. 아 이거 인 것 같다. 네가 말하는 것 이거구나. 또다시 부럽다고 말을 한다. 마음에선 나도 정말 그러고 싶어서.
어느 시기부터 나의 삶은 하루하루를 버티듯 사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그런 일상에서는 당연히도 여유가 사라지게 되고, 누릴 수 있는 건 몇 가지 선택사항으로 추려지는 어느 한 문제집의 객관식 문제 같은 누군가와는 다르지만 또 누군가와는 다를 것 없는 삶을 유영하고 있었다.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의 시점에서는 그나마 건강한 사회를 위해 돌아가는 일반적인 패턴이지만, 우주적 시점에서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아마 지구, 더 나아가 태양계의 존재조차 누군가는 모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낭만을 꿈꾸게 했다.
보통 쉬는 날이면 나는 바깥과 조금이라도 몸 섞이기 싫어서 침대와 함께인 날이 많았다. 나의 체질상 일을 하며 몰아 썼던 힘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간들이 조금씩 바보처럼 여겨졌었고 그럴 때마다 내가 평소 부러워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에서 행하기는 어려운 것들이 많았지만, 작은 거라도 해보자 라는 심산이었다.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상상 속에 담아 보았고 그거 하나로 밖을 나섰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가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좋지 않을 땐 그런 운치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며 고양이도 보고 조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하며 친밀감을 느껴보았다. 그러자 나도 이제는 부러워했던 것들을 하며 전보다 부러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부러움 수치가 줄어든 만큼 행복감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행복감은 부러움이라는 것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부러움이란 긍정의 것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부러워만 하다 행동하고 사소한 행복을 챙기며 돌아가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순환 말이다.
어느 날,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온 에너지는 책방에 들러 책을 두 권을 사고, 핸드폰이 가리키는 길 안내와는 다른 방향으로 골목길로 걸으며 도착한 두 번째 목적지인 소품샵에서 순환이 일어났다. 부러움을 시작으로 다녀왔던 길은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음악을 듣고 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골목길을 걷는 일상이란. 부럽다.’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받아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부러움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이래 첫 부러움을 산 것 일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꼭 기억해 누군가의 순환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일상 중에 나를 부러워했던 사람도 그 부러움으로 하여금 행복을 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행동은 다시 순환되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 실컷 부러워할 예정이다. 부러움의 깊이 보다는 빈도를 많이 가져갈 생각이다. 너무 행복하지도 않으며 너무 부러워하지도 않는 그런 삶을 지향해 갈 것이다. 행복함이 크면 좀 덜 행복할 때 느끼는 좌절감이란 크고 부러움은 하면 할수록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실컷 부러워하면서도 다시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행할 것이다. 누군가도 그러길 바라면서 힘닿는 곳까지 걷는 것이 나의 뿌듯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