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돌, 바람, 여자 이 셋이 많다는 말은 예부터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엔 카페, 다이소, 국밥집으로 바뀌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제주도에 꼭 살지 않더라도 여행을 자주 와본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바로 '비'다. 제주도엔 비가 정말 많이 온다. 특히 요즘엔 기후변화로 인해 비가 더 자주 온다고 한다. 1월에 제주도로 이주하여 1년 가까이 살면서 날씨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강한 바람이 창문을 마구 흔들어댄다.
4월엔 정말 비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30일 중 25일은 비가 왔던 것 같다. 봄철에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도 부른다. 고사리가 비 온 뒤 더 잘 자라기 때문에 안개가 많이 끼고 봄비가 내리는 이 시기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점은 사람들이 우산을 잘 안 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이태원에 있는 미군부대로 운동을 하러 다닐 때 미군들이 우산을 잘 안 쓰고 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자라오면서 흔히 산성비라고 불리는 더러운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말을 들어오면서 자랐다. 특히 내가 살던 인천은 수도권이기도 하고 미세먼지, 황사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지역이었다. 비가 온 뒤 바닥과 차엔 먼지가 덮여있을 정도로 맞으면 잘 못 될 것 같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제주도에 와서는 비가 온 뒤 차에 먼지가 덮여있는 모습을 거의 못 봤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역시 공기가 좋긴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우산을 안 쓰고 다니나?'
조금 더 살아보니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많이 부니 우산을 써도 크게 의미가 없었다. 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옆으로 내린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정도다. 그러니 나도 자연스럽게 엄청난 폭우가 내리는 게 아니라면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육지에선 어릴 적 유치원 다닐 때나 입었던 우비를 더 많이 애용하고 있다.
제주도에 여행 오는 사람, 특히 웨딩촬영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을만한 팁을 주자면 날씨어플이나 일기예보에 구름표시가 되어있다면 비올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하루종일 내리는 비라기 보다는 동남아의 스콜처럼 잠깐씩 내리는 비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도민들은 잘하지 않는 짓(?)이지만 동서남북의 날씨가 다른 제주도의 특성이 있으니 제주시에 비가 내리면 서귀포에 가서 놀거나 하는 식으로 비가 안 오는 지역으로 이동하며 놀면 된다.
날씨는 내 힘으로 선택하고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날씨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그다음 선택은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씨는 그저 그냥 날씨로써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내 안에서나 비가 와서 짜증이 날뿐이다. 짜증을 낸다고 비가 그치는 것도 아니니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즐길 방법을 찾아보고
이럴 때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천재성을 발휘해 보길 바란다. 나도 비가 한창 많이 오던 장마철에 저녁 운동이 끝나고 관원분들이랑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씩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서 포구에 나가 낭만을 즐겼다.
비가 온다고 짜증을 내던 30년 넘게 제주도에서만 살았던 도민도 그 시간만큼은 비가 온다고 짜증 내는 것이 아니라 비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함께 즐겼다. 한평생 제주에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제주도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제주도의 이러한 날씨적 특성을 잘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곰곰이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말 제주도에서만 날씨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는 건지. 날씨에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어느 지역을 가도 불평불만을 한다. 평생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제주도의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그럼 다른 지역, 더 넓게는 다른 나라로 이주해라.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계절과 날씨가 일 년 내내 유지되는 나라는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곧 그에 따라오는 리스크들 때문에 또 불평불만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밥벌이문제, 집 문제, 새로운 환경, 사람들과의 적응 문제 등 불평거리들은 널려있다. 본인의 우선순위가 그래도 날씨라면 이러한 리스크들을 감당할 각오로 지역을 옮겨라. 만약 날씨가 본인에게 그 정도까지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수용하는 법을 배워라.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다면 30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름이 오는 것을 짜증 내고, 겨울이 오는 것을 짜증 내고 있다면 반성해봐야 할 문제이다.
나는 평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핸드폰이나 노트에 적는다. 보통 이런 아이디어는 운전 중이나, 버스를 타고 갈 때 잘 떠오르기 때문에 일부러 먼 거리를 운전하는 일도 종종 있다. 제주에 1년 정도 살면서 날씨와 관련해서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고 있다. 1층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다 보니 앞에 세워둔 배너가 계속 바람에 날아가 쓰러진다. 이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 상품을 생각해 적어놓았다. 수시로 비가 내리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가기엔 애매한 날들이 많다. 이럴 때 우산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생각해 적어놓았다.
요즘 러닝이 대세인데 여름철 러닝을 하다가 더우면 언제든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고, 수영을 하고 나와 다시 러닝을 할 수 있는 옷을 여럿 테스트해 보는 중이다.
이 아이디어를 모두 실행할지는 알 수 없지만 불평불만에 쓸 에너지를 조금 더 재밌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자, 우산, 테이블, 컵, 에어컨, 냉장고, 자동차, 비행기 등 그리고 그것들을 만드는 재질, 부품들까지도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 상상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세상에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상상이 현실로 재현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아이디어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10대 때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보이는 가게들을 보면서 저 가게를 어떻게 더 재밌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그때 했던 상상 중 자리값을 받고 음료만 판매를 하고 고기와 먹을 것을 각자 밖에서 구입해 오는 식의 실내 캠핑장도 있었고(그 후 몇 년 뒤 유행이 되었었다) 금액을 지불하고 들어가면 원하는 와인을 생맥주처럼 따라 마실 수 있는 와인바도 생각했었다.(이것도 누군가 시도해서 대박을 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남들도 다 하는 생각일 수 있지만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재미가 있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본인이 사는 곳의 날씨를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을 해결하는 것에 어쩌면 엄청난 아이디어와 사업 아이템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