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기대가 겹쳐 있던 그 시절
19세, 고등학교의 마지막을 바라보던 시기였다.
시작부터 공기의 흐름이 달랐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사실이 주는 긴장감과
어떤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함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었다.
고3은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학교에서도 건물을 따로 썼다.
그 안에서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의 갑갑함과,
고등학교를 떠나면 정말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래서 야자를 해서 피곤해도,
토요일에 나와 공부를 해도,
스무 살이 되면 할 수 있을 꿈과 자유를 상상하며 버텼다.
.
.
그래서 엄청나게 몰입해서
꿈을 향해 달렸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마지막 기회가 절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만큼 피하고 싶었다.
공부가 너무 안 되거나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이면
공부하는 척, 몰래 책을 읽었다.
고3 때,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닌
나를 위해 책을 읽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도
고3 명찰을 단 얼굴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딘가 잘못된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늘 깔려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진학 상담을 하고 나와 울면서 오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상담은 괴담처럼 퍼졌고, 담임선생님은 냉정하고 정 없다는 말들이 오갔다.
방과 후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교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도 긴장했지만, 상담은 무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동기부여를 줄 만큼의
성적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치열함을 쌓아가고 있지만,
그때의 치열함과는
또 다른 온도라고 느낀다.
그 시절에는
원하는 방향도,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함께 준비하고, 울고, 버티고, 긴장하는
‘우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공부가 안 돼서 서서 함께 공부하던 우리.
야자 시간, 연예인 이야기와 웃긴 얘기로
서로를 붙잡으며 시간을 버티던 우리.
대학에 가면 어디를 여행할지,
어떤 취미를 배울지 상상하며
잠시 행복해하던 우리.
지나치게 예민했고,
지나치게 피곤했고,
성적 하나에 울고 웃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리던 우리들.
수능이 끝나고 다음 날
학교는 유난히 추웠다.
수능 당일도 차갑다고 느꼈지만
그날의 공기는 온몸으로 스산하게 스며들었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표정은 모두 달랐다.
완전히 끝났다는 후련함을 느끼는 얼굴도 있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불안에 잠긴 얼굴도 있었다.
예상보다 잘 봤다며
자신이 세웠던 전략을 후회하는 아이가 있었고,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에
우울함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치열하고 애틋했던 고등학교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했다.
누가 가장 빨리 결혼할지,
20대의 끝에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졸업 후에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각자의 희망을 품은 채
우리는 서로를 인터뷰하듯 기록했다.
19세의 나는
치열함 앞에서 회피했고,
생각보다 나오지 않은 성적에 절망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후회 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달라질 나의 미래를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며
조용히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찬란하고 불안했던 19세의 나에게.
이 편지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