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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May 11. 2024

[서평5] 한순간에 - 수전 레드펀

죽은 나(핀)가 주인공이라니!

설정부터가 색다르다.


나는 죽었고, 내 영혼이 떠돌아다니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얘기한다.


94파트까지 있고, 730페이지다.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처음 1,2,3은 좀 지겹다. 역시 나는 미국문학이 안 맞다.....;;;

앵무새 죽이기도, 게츠비도 나랑 안 맞다고 생각하면서 읽어가는데

갑자기 5파트부터는 잠에서 확 깨더니 순식간에 25를 넘어서고 있었다.


흡입력도 있지만, 챕터 하나하나가 짧고, 궁금증도 더해졌다.





성선설 성악설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은, 단지 백지일 뿐이다.

그리고 환경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런데 마음속의 악, 즉 "본성"이 드러날만한 환경을 여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악이 드러나지 않은 뿐.

특정한 상황, 전쟁, 기아, 극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인간은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코로나 때만 해도 그렇다.

난 친구에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북한과 뭐가 다른가 하고 생각했다.

5인이상 모이면 신고했단다.

그 푼돈 받을라고 신고했다는 말과, 마스크 안 썼다고 칼부림 나는 뉴스들,

조금 재채기만 해도 치를 떨며 몸 사리고 째려보고 하는 것들 보면서 우스웠다.


결국 인간은 그런 것이다.

'도덕적', '양심적'은 평화로울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전쟁, 기아, 극한의 상황이 왔는데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안 한다고?

나보다 약한 인간의 죽어줘야 내가 살아남는데 공생하자고 한다고?




이 책은 두 가족이 체감온도 영하 20도쯤 되는 얼어 죽을 정도로 춥고 눈발치는 한겨울에

스키여행을 갔다가 자동차 추락사고를 당하고 추위와 어둠과 공포와 아픔에 떨다가 다음날 오후 가까스로 구조된다.


주인공 핀은 사고시점에 죽는다.

아빠는 중태고, 모와 엄마는 좀 큰 부상에 언니, 언니 남친, 개는 실종이였다가 구조대에 의해 발견했고,

오즈는 실종상태로 죽는다.


주인공은 밥삼촌 가족은 멀쩡하다는 것에 짜증 분노 절규를 느낀다.

안 그렇겠어?

아니, 그래야 한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느껴야 한다.


우리 가족과 니네 가족이 같은 차를 타고 여행 갔는데 우리 작은 딸은 죽고, 큰 딸과 아들과 개는 실종인데

니네 가족은 멀쩡하거나 고작 경상이라고?


그런 와중에 니네 가족 중 한 명이 지적장애아인 우리 아들을 꼬드겨 죽음에 몰아넣었다면?


칼부림 나게 싸우고 마지막에는 인연 끊는 거지, 안 그렇겠음?


이게 인간이다.


좋은 관계, 나쁜 관계 이런 건 없다.

상황이 맞게, 이해(利害) 관계의 의한 네트워크인 것 뿐이다.

그러다가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에 부딪히면 숨겨놨던 본성이라는 게 나오는 것 뿐이다.



40파트 부분쯤 가서 놀라운 걸 읽게 된다.


오늘아침 엄마가 주체하지 못할 만큼 통곡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절이라도 할까 봐 걱정할 만큼 끔찍한 슬픔을 격렬하게 쏟아내고......(중략)

여기(장래식)에 모인 사람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엄마가 자기 자식을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일을 앞두고도
아무 표정 없이 예배를 기다리는 얼음 같은 차가운 눈의 여왕처럼 보일 것이다.


일본방송을 보면 재난이 일어나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도 담담하게 남일 하듯 인터뷰를 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그걸 보는 한국인들은 의아해한다. 어떻게 저렇게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인터뷰를 하지? 감정이라는 게 없나?

그들의 뒷 배경을 모르니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다.


인도에서 골목에서 죽은 가족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하는 모습과

버닝가트에서 "노 포토!", "노 포토!" 하는 와중에 줌 이빠이 땡겨서 사진 찍는 인간들이

오버랩되면서 떠올랐다.


뇌가 있으면 생각좀 해 봐라. 니네 아들 장례식에 줌 땡겨서 사진 찍으면 좋겠니???



인간의 본성 따위가 그렇지 뭐 하며 흥! 치! 거리다가 계속 읽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이 사실과 다르게 말한다 해도 그걸 거짓말이라고 보기 어려워.


모와 번스경찰의 대화에서 번스가 하는 말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나는 줄곳 인간의 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중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모"처럼 이과 특유의 정확함, 증명, 팩트, 이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드라마를 봐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것에 포커스를 둔다.


사람들은 어떻게 왜곡할까.

왜곡한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아니면 무의식 중일까.


책은 도덕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빅터 프랭큰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유대인중에는 착하고 도덕성 있는 선한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오즈는 어떻게 되었을까? 찾았을까.

히말라야 눈이 녹으면서 몇십 년, 몇 백 년 전에 실종된 산악인의 유골이 드러난다.

그들은 그렇게 밖에서 그 추위에서 쓸쓸히 구조를 기다리다가 죽어갔을 거다.


나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거기에 앉아서 서서히 죽어가는 오즈와 그 옆에 핀의 영혼이 떠돌며 오즈에게 속삭이고 있는 슬픈 장면이 계속 아른거렸다.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 대사를 적어본다.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행동하고 싶다고 말했던 이유야. 그 사고가 다시 일어나길 바라서가 아니야. 하지만 내가 더 잘해 낼 자신이 있어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인생 전반에 걸쳐 드러내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이 그 비극적인 하룻밤 사이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들 친절하고 걱정은 해주지만 제대로 이해는 못하는 것 같거든.


악몽 속에서는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모든 것과 자신의 모습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과장된다.


두려움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 엄마도 두려웠을 것이다. 카일도 두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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