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님: 40대가 몇 년 남지 않았다니, 믿기지 않네.
나: 정말 그렇네.
마나님: 30대가 된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에 비해, 40대가 된다는 건 받아들이는 건 그럭저럭 쉬웠는데. 50대가 되는 건 어떨까. 인생 절반이 넘게 지났다는 건 확실한데.
나: (웃는다)
마나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앞으로 길어도 30년 미만일 테고, 나머지 여생은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될텐데, 정말 잘 살아야겠다.
나: 초인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마지막 인간으로 죽지는 말아야지.
마나님: 초인은 어떤 사람이야? 니체의 초인이지?
나: 음... (잠시 생각하다) 초인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지막 인간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초인은 마지막 인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야.
마나님: 그럼 마지막 인간은 어떤 사람이야?
나: 마지막 인간은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거든. 일어나서 먼저 운동을 해. 요가를 하거나, 헬스장에 다녀오지.
마나님: 나는 마지막 인간도 못되겠네.
나: (웃음) 운동을 끝내면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짧게 명상을 해. 마음 챙김은 중요하거든. 그리고 나서 요거트에 아몬드 한 줌으로 식사를 하지.
마나님: 뭐야 이 완벽함은.
나: 회사에 가기 전에 30분 정도 독서를 해. 보통은 자기계발서거나 영어책이지. 마지막 인간은 어제보다 늘 나은 오늘을 꿈꾸거든.
마나님: (약간 어이 없는 표정)
나: 누구보다 일찍 출근한 마지막 인간은 오전에 어려운 업무를 처리해. 이메일은 오후에 읽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거든. 마지막 인간은 회사에서 능력 있다고 평가 받아. 그래서 동기 중에 가장 먼저 팀장으로 승진했어.
마나님: 엥?
나: 마지막 인간은 점심 식사는 꼭 옆 부서 사람들과 해. 네트워킹과 평판은 무척 중요하거든.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실력과 실적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걸 마지막 인간은 알아.
마나님: ...
나: 시사에도 밝아야 하기 때문에 남은 점심시간엔 웹서핑을 해. 마지막 인간은 늘 가던 A 사이트에 들어가. 마지막 인간은 모든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다는 걸 알아. B 사이트는 왜곡된 뉴스로 가득하니 가지 않을거야. A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던 마지막 인간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곡해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다른 정당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잠시 분노해.
마나님: 아...
나: 이번엔 주식 사이트에 잠시 들어가. 마지막 인간은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부자가 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집 마련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최근 주가가 좀 떨어졌지만, 실망하지 않고 좀 더 기다리기로 해.
마나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나: 주말엔 부모님이 주선한 소개팅이 있어. 혼기가 꽉 찬 마지막 인간은 결혼을 해야 하거든. 아이는 꼭 낳을 거야. 부모님은 손주를 꼭 원하시고, 마지막 인간도 아이를 좋아하거든. 아마 마지막 인간은 가족에게 충실할 것이고,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야.
마나님: 그러니까 마지막 인간은...
마나님: (잠시 생각한다)
마나님: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
마나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
나: (기다린다)
마나님: 자기가 없는 사람이구나...
나: 그렇지. 맞아. 마지막 인간은 어릴 땐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살고, 사회에 나와서는 사회가, 국가가, 자신이 속한 계급이, 상사와 회사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야.
마나님: 어떻게 보면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나: 마지막 인간은 자기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몰라. 마지막 인간은 자기가 없는 텅 빈 사람인데,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나님: 초인은 그 반대라는 거지?
나: 그렇지. 초인은 그 반대에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초인도 태어날 때 부터 초인은 아니야. 초인이 되는 과정은,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
나: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위대한 정오야.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 진짜 나를 숨길 수가 없는 순간. 진짜 나와 대면하는 순간. 그 순간은 모두에게 다르게 와. 해지는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에서 일 수도 있고, 휴일 오전 일어나 세수를 하고 물끄러미 거울을 바라봤을 때 일 수도 있고, 캠핑장에서 멍하니 나무 타는 걸 들여다 보고 있을 때 일 수도 있어.
나: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하고 물어버린 사람, 즉 위대한 정오를 만난 사람, 혹은 내가 마지막 인간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은 이제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어. 한번 질문해 버린 사람은, 고개를 들어버린 사람은 그 위에 새로운 지평과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거거든.
마나님: ...
(잔을 부딪힌다)
마나님: (잠시 생각한다)
마나님: 오빠, 나도 니체 좀 읽어볼까?
나: (웃음을 터트린다) 이제야 꼬셔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