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이야기
나를 둘러선 모든 자들이
무릎 꿇은 나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이 후로 자신들의 모든 불행을
내 탓으로 여길 것이다
평생 내 자유를 속박하고
굴레 아래 나를 가두어
내 자손들에게까지
이 멍에를 지울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의 위협과 싸우고
매일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자연의 이치조차
나의 책임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할
고귀한 자다
-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는 순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런 뻔한 클리셰가 이 시에 녹아 있다.
하지만, 소싯적 이 겉멋 잔뜩 든듯한 말이 얼마나 마음을 뛰게 하고 도전을 주었던가?
고난 속에서 되뇌는 'No pain, No gain'이나 'No cross, No crown'은 가렵긴 해도 솔찬이 위로가 되었다.
왕관을 쓰는 왕의 마음이 '이제 다 죽었어'라는 마음이면 그 왕국이 많이 불편해지겠지만, 다 감당하겠다는 각오라면 그 왕국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내게 주어진 책임들도 이 뻔한 클리셰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왕자는 되고 싶었지만 왕은 왠지 안 끌렸다. 어린 마음에도 본능적으로 왕이 가지게 될 책임은 좀 부담스럽고 왕자는 왠지 거저먹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