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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은하 Oct 12. 2023

이 순간 - Part. 2

왕국 이야기


두렵고 떨린다

창을 쥔 손은 하얗게 질려있다

혁명의 깃발아래 뭉친 동지들은

충혈된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눈보라는 매섭게 얼굴을 때린다


우리가 무너지면

가족들도 죽는다

죽음으로라도 대오를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


이 순간은 분명

우리와 후손들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멀리서 길게 울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대지가 흔들리고

자욱한 먼지와 

죽음의 향기 어내

상대편 기사들이 돌격해 온다


바닥에  딛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각오로

버틴다

창을 일제히 앞으로 내밀며

목이 터져라 외친다


“새 날을 위하여!”


-        근위기사단과 대치한 혁명군 민병대원



많은 옛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선으로, 이에 맞서는 상대방은 악으로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를 그어 독자들이 주저 없이 주인공을 응원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의 정의는 저편에서의 불의다'라는 말처럼 각각의 입장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사랑했던 공주의 미소에 낙담한 기사가 명예롭게 장렬히 산화하려 했던 전장은 상대편인 혁명군에게 있어서는 자신과 가족들의 미래가 걸린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전제왕권의 압제에 견디지 못해 일어난 농민 혁명대원들은 이날 죽기를 각오한 근위기사를 상대로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하지만, 옛이야기에서는 이 혁명대원들의 정의는 가려지고 기사의 장렬한 죽음만 안타까움으로 남게 된다.    
모든 이야기들에는 주인공과 동일한 순간을 전혀 다른 정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Part. 2'가 존재함을 가끔이라도 상상해 보자. 이때 우리들의 상상력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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