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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6화) 시후의 전학과 무단결석

by 피닉스

"시후야 학교에서 고개를 못 드는 이유라도 있니?"

"이유는 없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저도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더 이상 묻지 마세요."그러고는 대성통곡을 하는 시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 심정이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해봐도 아이들과 특별한 갈등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다가가도 시후가 밀어내는 것 같다고 했다.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게 답답했다. 상담선생님은 교우관계에 알게 모르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다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예민해져 친구나 선생님이 던진 어떤 말이 상처로 박혔을 거라는 것이었다. 상담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인 시후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를 놓치고 그것이 몇 번 쌓이다 보니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데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자존감이 꺾인 듯했다. 외향적인 아이 같으면 목소리를 높이고 우겨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켰을 텐데 그럴 용기와 강단이 시후에게는 부족했을 것이다.


"엄마 더 이상 ○○ 초등학교에는 갈 수 없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주세요. 제가 저 ○○ 학교에 더 다니다가는 죽을 것 같아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단 말이에요." 초등학생 입에서 '도살장'이란 표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도살장이란 단어가 나온 이상 더 이상 설득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즈음에 학원도 가지 않았다. 학원 선생님이 문제를 틀렸을 때는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쳐서 기분 나빴다는 말을 한적 있었다. 선생님과의 전화통화로 그 상황을 언급하며 그런 식으로 아이에게 인격을 모독하고 상처를 주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고 전달한 뒤 그런 행동을 멈췄다고 했다. 그때 받았던 상처가 누적되어 폭발한 모양이었다. 학원장이 하교시간에 맞춰 직접 학교를 찾았고 시후를 만나 설득해도 학원을 데러 가는 것을 실패하고 말았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누적돼 있는 상태에서 학원을 다니는 게 무의미했다. 그렇게 학원도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지금의 학교 반대편에 도로를 사이에 둔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전학 가는 첫날 남편이 미리 주문해 둔 제과점에서 호두빵 상자와 음료수를 챙겨 들고 교실을 찾았다. 시후반 아이들에게 호두빵 한 봉지와 캔 음료 한 개씩을 돌렸다. 아이들한테 시후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몇몇 친구에게는 시후가 직접 전달했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남편은 전학 간 학교에서는 시후가 무탈하게 적응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초등학교 마지막해를 멋지게 마무리 짓고 행복한 졸업식을 맞이하기만을 간절히 빌고 빌었다.


그즈음 일을 하면서도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시후는 학교생활 잘하고 있을까? 친구는 한두 명쯤 사궜을까?" 온통 시후 걱정으로 가득 찼다.

일을 하면서도 낮이나 밤이나 오직 그 생각뿐 다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었다. 그 때문에 배달 주소를 잘못 기재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남편이 엉뚱한 집에 배달하는 바람에 그 집주인한테 왜 잠을 깨우냐는 싫은 소리를 듣게 되자 그 화살은 나를 향했고 남편의 거침없는 쌍욕세례를 원 없이 맞기도 했다.


참다못한 나도 남편에게 막말을 했다. " 실수 한번 했기로소니 그게 쌍욕까지 들을 일이니? 내가 너 같은 놈 만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고 비극이다. 네 친구들이 아내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네 눈으로 귀로 똑똑히 좀 보고 듣고 배워라. 내가 시후 때문만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너한테까지 이런 쌍욕을 들어가며 참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서로 막말이 오가고 한참을 싸우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배달 주문이 쌓이면 둘이 일에 관련된 대화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날이 반복됐다.


내가 남편한테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내한테는 온갖 입에 담지도 못할 쌍욕을 끓어 부으면서 손님들한테는 부당한 갑질을 당해도 대항한마디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다. 옆에 있는 휴지통이라도 들고 머리통을 가격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려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떠서 혹시 하는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시후의 담임선생님이었다. 나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시후가 결석을 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오며 현기증이 일었다. " 선생님 시후가 결석을 했다구요? 오늘 아침에 학교를 갔는데요."

"아마 다른 곳으로 간 것 같군요." " 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저희가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지금까지 몸이 아플 때 빼고는 한 번도 학교를 결석한 적은 없었다. 더구나 5학년때도 6학년때도 현재까지 결석을 안 했었다. "어디 가서 시후를 찾아야 하나? 시후는 평소 게임도 안 하는 아이니 PC방에도 안 갔을 테고.." 혹시나 싶어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 부근의 PC방 몇 군데와 공원을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했다. 세 시간을 다녀도 못 찾고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큰 아이가 길을 잃었을 리도 없을 테니 때 되면 집에는 들어오겠지 싶어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번도 학교 가다가 사라진적이 없었기에 혹시라도 나쁜 마음이라도 먹은 게 아닐까 싶어 1분이 한 시간처럼 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마른침을 꿀꺽 삼치며 떨리는 손으로 받으니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인은 B박물관의 미화원인데 시후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즉시 달려갔다. 박물관 뒤쪽으로 난 산길에서 배회하고 있던 시후를 눈여겨본 미화원 아주머니가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이곳에 있으니 접근해 말을 걸어보았다고 하셨다. 얼버무리는 걸 보니 가출한 아이임을 직감하고 부모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그때는 또 순순히 알려주더라 했다.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배고픈 것 같아 박물관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빵과 사발면을 먹였다고 하셨다. 세상에 일면식도 없는 남의 아이한테 먹을 것을 챙겨주신 그 미화원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허둥지둥 달려 나오느라 지갑도 두고 왔다. 호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지니 다행히 3만 원이 나왔다. "사례를 해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요. 이것은 빵값이고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주시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했더니 그분은 손사래를 치며, 돈을 바라고 선행을 베풀지는 않았고 그저 자식을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말씀에 감동해 눈물이 났다. 삼만 원도 극구 사양하셨다. 그래도 그냥 오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럼 연락처라도 주시면 다음에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겠다고 해도 끝내 사양하셨다. 완강한 그분께 뭔가 할 도리를 못한 것 같아 찜찜한 마음으로 연신 감사 인사만 드리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날의 가출 이후로 시후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학교를 안 가려고 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갔고 사람이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실시한 후, 우울증으로 판정이 나왔고 약물복용과 함께 거기에 소속된 상담실에서 상담도 함께 이어갔다. 겨울방학을 한 달가량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 되니 학교는 가야 되지 않겠냐고 설득해도 학교 이야기만 꺼내면 경기를 잃으킬 정도의 강한 거부반응을 해 강압적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공부보다 치료가 우선이라 휴학신청을 하고 치료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심각한 정신병이 아닌 가벼운 우울증이니 약 먹고 안정을 취하면 낫겠지 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석 달이 가도 차도는커녕 약물 부작용과 함께 증세는 더 심해져 갔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졸업 때가 되었다. 졸업식만이라도 참석하자는 설득에도 끝내 시후 없는 졸업식만 쓸쓸히 거행되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힘없는 모습으로 오후에 졸업장을 찾으러 갔다. 담임선생님은 자리에 안 계셨고 다른 선생님이 전해주는 졸업장을 들고 교문을 나서는데 말할 수 없이 씁쓸하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은 수술을 받거나 상처부위에 약을 도포하면 금방 치료효과가 나타나지만 정신적인 질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약효도 금방 나타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정신약은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시후는 우울증 약을 복용함과 동시에 식사량이 세배 이상 늘었고 감당이 안될 만큼 방금 먹고 돌아서면 또 먹을 것을 찾았고 안 주면 냉장고를 뒤져 과일이든 반찬이든 닥치는 대로 꺼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시후야 안돼 그만 먹어 탈 나겠다." 의사한테 상담을 했더니 처음에는 약 때문이 아니라더니 나중에는 약물자체가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고 밥맛을 당기게 해 살이 찔 수는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3개월 만에 몸무게 10킬로가 넘게 불었고 배가 임신 4개월처럼 두리뭉실한 게 누가 봐도 40대 아저씨의 몸매로 변화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지 3개월이 되니 만취상태처럼 발음도 어눌해졌다. 또 눈빛도 해롱해롱 해지고 공중에 붕붕 뜨는 풍선처럼 영혼이 도망가고 껍데기만 남은 처참한 몰골로 변해갔다. 마약에 취한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평소 마약을 하는 사람의 증상을 들은 바에 의하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지만 의사는 결론은 약 때문이 아니라고 했고 지금까지 학계에 그런 부작용은 보고된 바 없다는 무심한 사설만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그런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없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있나요?" 하니 "그건 그렇죠... 그렇긴 합니다.." 의사는 당황해하며 말끝을 흐렸다. 속 시원한 답변도 듣지 못하고 돌아왔다. 의사들도 학계에 보고된 바 없었다는 둥, 그런 부작용은 약 때문이 아니라는 둥 자기주장만 내세울게 아니라 개인차가 있으니 충분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자와 보호자 측의 증상을 귀담아듣고 신중한 처방을 해주길 바랐는데 실망스러웠다. 이 상태에서 더 이상 약을 먹이는 건 잔인한 짓이라 여겨 과감히 끊고 상담에만 집중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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