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좋아지는 듯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어떨 땐 의욕이 상실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방문을 잠그고 거실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상담을 받으면 금방 좋아져 학교를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는데 그 기대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해 중학교 입학은 하지 못했다. 시후도 지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방에 주저앉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더니 서서히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지금까지의 울음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그날의 울음소리는 낯설었다. 덫에 걸린 산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였고 지옥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소리였다. 심장이 터질듯한 답답함과 통증에 숨이 막혀왔다. "시후야 왜 그래? 진정해." "엄마 내 병.. 내.. 병이 우울증이 아니라 정신병이래요.. 인터넷에 찾아.. 봤.. 어요." "시후야. 우울증도 정신에 병이 생긴 거니까 엄연히 따지면 정신병이야. 몸에 생긴 종양은 수술하고 상처난데는 연고를 바르듯이 정신에 생긴 질병은 상담받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면 나아. 스스로 자제가 안된다 싶음 그땐 약으로 조절하면 되고.
마음 편하게 먹고 상담 잘 받으면 나을 수 있어. 걱정 마. 엄마가 꼭 고쳐줄게."
"아니에요. 그런 정신병이 아니라 조현병이래요. 불치병이에요."
나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그동안 규모가 큰 다른 병원도 가봤었다. 의사는 정확한 병명을 말해주지 않고 이것저것 복합성이라서요.. 라며 말끝을 흐리며 애매한 말만 되풀이해 왔었다. 그때는 병명을 물으면 자꾸만 얼버무리고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의사가 야속했고 실력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의사도 앞날이 창창한 어린아이한테 차마 조현병이라는 진단으로 족쇄를 채우기가 잔인한 짓이라는 걸 알고 나름 배례를 한 것이라는 건 후에 알았다.
조현병이라는 병명보다 그 말이 의사가 아닌, 시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이, 더 정확히는 시후가 자신의 병명이 단순한 우울증이 아닌 조현병임을 인지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천벌을 내리냐고 왜 하필 우리 시후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냐고. 지금껏 살면서 내가 남한테 사기를 쳤냐고.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한테 상해를 입혔냐고. 하다못해 욕을 한적 있냐고..."
믿지도 않은 하나님을 애타게 불렀다. "하나님 우리 시후한테 왜 그러세요. 저한테 천벌을 내리시고 우리 시후는 좀 살려주세요." 울다가 지쳐 침대에 기댄 채 미동도 없는 시후를 끌어안고 같이 피를 토하듯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가게 갈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울다가 지쳐 기진맥진한 채 쓰러지듯 엎드려 있는 시후를 일으켜 침대에 눕혀놓고 가게로 달려갔다.
마침 배달을 나서는 남편과 가게 문 밖에서 부딪쳤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며 쌍욕세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그냥 지나쳐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달려가버렸다. 가게로 들어와 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퉁퉁 부은 눈이 토끼눈처럼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상황을 인지한 남편이 차마 이 몰골에다 대고 육두문자를 날릴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게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안 가고 가로등이 꺼진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정처 없이 몇 바퀴를 돌고 돌았다. 그때 유난히 빛나는 교회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꼭 나를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았다. 귀신에 홀린 듯 그 불빛 따라 걸음을 옮겨 예배당을 들어섰다.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고 그냥 하염없는 눈물만 흘렀다.
한참을 눈물을 쏟다가 온몸에 기가 다 소진 돼버린 듯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이 일고 자꾸만 몸이 휘청거렸다. 몇 번을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나왔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휘청이며 걸어갔다. 새벽의 고요와 적막이 가슴을 후벼 팠고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한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무작정 차를 끌고 나와 달렸다. 죽음의 질주였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 바다 보러 가자. 한 시간 반을 달렸다. 노랗게 흩날리는 은행나무 가로수를 끼고 한참을 달렸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오늘만큼은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조롱하는 저주의 손짓으로 보였다.
짭짤한 소금냄새가 진동하는 바다에 도착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거대한 파도가 몸부림치며 돌진해 오는 이 대자연의 웅장함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인가? "아아아악~~
아아아악~~"심장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러봐도 파도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컴컴한 백사장위에 주저앉아서 나를 집어삼킬 듯 끓어오르다 산산이 부서져내리는 파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한한 우주에서의 이 지구란 한 점에 불과하거늘 거기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란 또 얼마나 허무한가?
잘난 인간도 못난 인간도 먼지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건 매한가지 이거늘 우열을 가리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은가? 잘난이와 못난이는 근본은 동일할진대.. 그렇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다시 한번 힘내보자.
집으로 오는 사이 이미 여명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슬그머니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온 집안을 진동했다. 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무렵 집에서 한 시간 반거리의 부지에 신축공사가 한창인 대안학교가 내년에 개교한다는 플래카드가 가는 곳마다 나부꼈다. 시후를 위한 학교구나. 시후와 며칠 전 학업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었다. "엄마 아빠 저는 일반중학교에는 진학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중고과정 마스터 할게요. ""시후야 엄마 아빠는 네가 일반학교로 진학해서 친구들도 사귀고 한 번뿐인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지만 네가 부담스러워하고 건강이 우선이니 네 생각에 따르마. 대신 중간에 포기하기 없기다. 스스로 공부해서 중고과정을 마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엄마는 네가 남들보다 앞서라고는 안 할 테니 마음의 부담은 내려놓고 차근차근 준비해 보자." " 집에서 교재사서 EBS로 공부할게요. 그래 그러자꾸나. "
검정고시에 도전하기로 이미 얘기가 끝났지만 혹시나 싶어 대안학교를 권해봤다.
"시후야 대안학교에 입학해 보면 어떨까? 그곳은 야외학습위주로 하고 예체능은 실기위주로 수업을 운영한다는구나. 친구들도 너처럼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주로 오니까 어쩌면 그 아이들과 잘 통할 것 같기도 한데 어떠니?" "그런데 전 교우관계가 부담돼 어렵겠어요. 그렇지만 신중히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해가 가기 전 겨울에 시후는 대안학교를 가겠다는 의지를 전해왔다. 우리 셋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시후의 새로운 앞날을 축복하며 케이크를 잘랐다. 이듬해 완공을 앞둔 대안학교의 건축현장에도 가서 학교가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의지를 새로이 다졌다. 상담선생님도 함께 축하해 주셨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따뜻한 봄과 함께 1년간의 공백기를 거치고 시후에게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기다리던 입학식이 다가왔다.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입학식에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첫 개교인 만큼 입학생들이 일반학교에서는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휴가를 내고서라도 부모가 함께 참석하는 가족이 많아서 더 붐볐다. 입학식이 시작됐고 교장선생님의 연설이 있었다. 입시위주의 공부가 아닌 체험학습 위주로 이루어지며 기숙사생활이 원칙이나 통학을 원하는 학생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의 상황에 맞춰 선택이 가능했다. 그리고 '1인 1 악기'를 지향하는 대안 학교라는 타이틀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우리 부부는 시후가 지금껏 부모를 떠나서 생활해 본 적이 없었고 성격상 기숙사생활의 적응이 다소 부담스럽고 걱정됐는데 선택사항이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부디 시후가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을 잘 해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학생들에게 악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능숙하게 다룰 때까지 집중적으로 교육시키는 것 또한 맘에 들었다. 심리치료와 안정에 음악이나 미술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시후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무대경험은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성인가요와 팝송을 능숙하게 불러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었다. 드라이브를 할 때면 차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가사와 박자, 음정 하나 안 놓치고 따라 부르는 영특한 아이였다.
성대한 입학식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일일이 포옹해 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소 긴장되고 얼어붙었던 시후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뒷날 설레는 맘으로 시후의 첫 등교를 위해 우리 셋은 드라이브하는 상쾌한 기분으로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꽃들이 뭉게구름이 새들이 우리를 환영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듯했다.
우리의 애마도 그에 화답하듯 마치 은반 위의 스케이트 선수처럼 리드미컬한 리듬을 타며 미끄러져갔다.
교문을 가볍게 통과해 "시후야. 다 왔어. 수업 마치면 아빠가 시간 맞춰 데리러 올게. 공부하러 간다는 부담 버리고 그냥 즐겁게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와라." 그런데 시후가 미동도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시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긴장되니?" 내가 물었다. 그런데 시후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니?" " 엄마 아빠 죄송해요. 저 학교 못 가겠어요. 저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려 했는데 몸이 말을 안 들어요." 하며 울기만 했다. "그럼 며칠 병가 내고 마음 추스르고 올까?" "아니요. 그냥 자퇴할래요."
참담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장밋빛으로 물든 내 마음에 폭격이 내리치는 충격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행여나 마음을 돌릴까 싶어 한 시간 동안 설득을 해도 먹히지 않는 요지부동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차를 돌려 학교를 벗어났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춤추며 노래하는듯한 나무도 꽃도 초상집 분위로 전락했다. 설상가상 중간쯤 달리는데 갑자기 여름도 아닌 초봄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퍼붓는 것이었다.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도로옆 논과 논 사이에 제법 넓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백미러로 본 남편의 눈에서도 슬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폭우가 차 안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구슬픈 눈물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이대로 저수지로 돌진해 버릴래?"
심신이 지쳐있던 난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그냥 남편이 저수지에 돌진해 그대로 끝내버린다 해도 이 더러운 세상 미련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시후도 몸을 옆으로 돌려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갑자기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따라 나갈까 하다가 시후도 걱정되고 몸이 말을 안 들어 그대로 죽은 듯이 퍼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정신이 들어 운전석을 보니 남편이 없었다. 그사이 비도 그쳐 있었다. 불길한 생각에 뛰어나갔다. 저수지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후 아빠~ 시후아빠~ 어디 갔어." 미친 듯이 저수지 둔치를 뛰어갔다. 둔치길을 반쯤 뛰어가니 큰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옆에서 바위에 기댄 채 앉아 울고 있었다. 나의 인기척에 재빨리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일어섰다. 그렇게 미워했던 욕쟁이 남편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남편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갈 텐데 뭐 하러 왔어." 하며 차있는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따라 걸으며 축 처진 남편의 어깨를 보며 처음으로 저 양 어깨에 얹힌 커다란 슬픔이 보여 가슴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