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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9화) 방송출연 그리고 검정고시 합격

by 피닉스

많은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하고도 중간에 한번 취소했다가 재 신청하고 다시 마음을 굳힐 만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지역방송이긴 해도 방송은 방송인지라 행여라도 내 지인들이 볼까 싶어 두려웠고 그들의 두 가지로 갈리는 반응이 제일 두려웠다. 하나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에 대한 충격의 파장이었고 또 하나는 그 충격에 더해 좋지도 않은 일을 방송까지 해서 대대적으로 알리냐는 반응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포기 쪽으로 기울면 솔루션을 받았던 사람들이 방송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이 눈앞에 아련거려 미련이 남았다. 그러다, 딱 하나 시후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소중한 자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다면 그까짓 얼굴 팔리는 게 뭐 대수라고. 자식을 살리는 일이라면 폭격이 내리치는 전쟁터가,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이 두렵겠는가? 눈 딱 감고 방송을 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약속된 날짜에 속전속결로 방송국 피디와 카메라맨이 들이닥쳤다. 피디는 피디였다. 시후의 담임교사 전화번호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 삭제해 버렸기에 학교 이름만 알려주었는데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4학년 때 담임을 모셔왔다. 아쉽게도 왕따를 시켰던 아이들은 방송이라는 특성상 그 아이들 입장을 생각해서 배제시킨 모양이었다. 전학 간 곳에서 그나마 시후랑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한 명도 섭외했다. 왕따를 시킨 아이들을 찾아내 방송에 출연은 안 하더라도 사과를 받았다면 시후가 마음의 앙금과 응어리를 풀어내고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 부분은 훗날까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4학년 때 담임은 시후의 방문밖에 서 있고 시후는 차마 선생님을 마주 보고 말을 건네지 못하고 방 안에서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라는 멘트를 날렸고 그 선생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방영되고 말았다. 이 부분은 뺄 줄 알았는데 그대로 다큐의 한 부분으로 차지해 그 담임선생님을 미워했지만 그 부분은 미안한 감이 있었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피디의 교묘한 작전이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TV 화면에 비친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루션으로 치유에 막강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나는 대실망이었다. 방송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던 나는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의사와 상담사가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개입해 상담과 조언을 하며 치료를 위해 전념하리라는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눈속임이었던 것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촬영을 했고, 편집되어 TV 화면에 나왔을 때 비로소 방송국 측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3일에 걸친 밀착취재를 거쳐 선별되고 짜깁기된 영상에 모든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애초에 그들은 시후의 질병과 치유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고 수십 장의 영상 중에 최악의 장면을 앞에 배치하고 중간중간 섭외한 의사와 상담사의 인터뷰와 시후가 환하게 웃는 모습과 친구와 다정하게 피자와 치킨을 먹는 장면을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피디와 카메라맨이 시후랑 같이 캠핑 가서 모닥불 피우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은 다큐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와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마치 자신들의 노력으로 시후의 질병을 고치기라도 한 것인 양 내레이터의 설명이 곁들 여진 한 편의 훌륭한 다큐를 제작한 영상제작에만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배테랑이었다. 그 다큐를 유튜브에 같이 올려 시청자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유튜브 댓글란은 온통 피디와 카메라맨의 공을 높이 산 찬양댓글로 불이 붙었고, 나는 아이를 방치하는 무식하고 나쁜 엄마로 순식간에 전락해 수백 개의 악플세례로 몸살을 앓았다. 그들이 애초에 계획한 의도대로 훌륭한 다큐 한 편의 방영이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시후가 4학년 때 담임교사한테 욕을 퍼부어 그나마 그때의 복수를 조금은 되갚았다는 것과 방송의 함정에 함부로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 전부였다.


또 그 방송국에서 섭외한 우리나라에서 나름 권위 있는 정신과 의사가 처방한 약을 복용한 지 한 달도 안돼 다리뼈가 약간 휘어져 안짱다리가 되고 치아도 약해져 치아 끝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대참사 속에 씁쓸한 기억만 남긴 경험으로 끝났다. 그 약을 장기복용하면 뼈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미리 말씀하셨는데 시후는 초고속으로 부작용을 겪었다.


이처럼 정신약은 일반약과는 달리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기에 무턱대고 장기복용하기도 위험한 면이 다분히 있다. 물론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나타날수도 있고 그 부작용과는 결이 전혀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의사가 부작용이 아니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빌미를 준다. 똑같은 약을 처방받은 다른 누군가는 멀쩡하니 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가기 바쁜 것이다.


어느 환자에게 본인이 처방한 약이 안 맞으면 맞는 약을 찾기 위해 그 사람의 몸은 실험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귀찮은 의사는 자신의 고집과 신념만 믿고 환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동일한 약을 처방하거나 한 개씩만 바꿔가며 환자에게 조금만 더 먹어보자며 희망고문을 이어간다. 정신병은 초기에 약을 복용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된다. 부작용을 세심히 관찰해서 계속 약을 복용할지 끊을지는 의사말은 참고사항이고 최종적으로는 본인이 결정해야 된다.


시후는 시간이 갈수록 없던 틱장애와 강박증 길을 가다가도 제 또래의 남자아이가 마주 오면 눈이 허옇게 뒤집히면서 쓰러지는 공황장애도 나타났다.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졌다. 또 맥박이 빨리 뛰고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머리를 미세하게 흔드는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 의사 선생님도 믿기지 않으신지 자꾸 시후한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하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의사가 느끼기에도 다른 아이한테서 나타나지 않는 특이 증상이긴 한 모양이었다. 왜 약을 먹는데도 더 심해지냐고 물으니 의사는 새로운 증상의 병이 추가된 거라고 했다. 의사는 다른 직원을 시켜서 시후가 눈치 못 채게 멀리서 시후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느껴졌다. 연기를 하는지 실제로 그런 이상증상이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듯했다. 그 의사도 우스운 게 연기할게 따로 있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부러 그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어찌 보면 조현병의 부작용에 대한 이해와 대처능력이 한참 부족한 의사였다.


대형병원에서는 한 병원에서만도 네댓 명의 의사가 거쳐갔고 다섯 곳의 병원을 옮겨 다녀봐도 부작용 없는 곳은 없었다. 이제 정신과약은 시후에게는 안 맞아서 완전히 굿바이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병을 안 고쳐 주려면 약발이라도 받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신이 눈에 보이면 고쳐달라 매달리는 게 아니라 뺨이라도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러 새로운 증상과 약물 부작용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이래도 저래도 고칠 방도가 없어 미치고 팔닥뛸 노릇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시후는 종일 방에서만 지내려고 했다. 건강이 걱정된 나는 자전거 타기를 권했고 그때부터 매일 두세 시간씩 자전거 타기를 했다. 주로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우리 부부와 셋이 탈 때도 있었고 주로 혼자 타다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들어오곤 했다. 자전거 도로 옆에는 도심 속 농촌 마을이 있는 곳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시후는 그 마을로 진입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밭일하는 것도 구경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만큼 지나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으면 꼭 한번 쓰다듬어 주거나 한참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그 동네 어느 집 대문 앞에는 진돗개가 매어져 있고 사람이 지날 때는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맹렬히 짖어댔다. 시후는 개가 짖거나 말거나 한참 서서 개를 바라보다 제갈길을 가는 버릇이 있어 우리 셋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면 어서 가자고 재촉을 몇 번 해도 요지부동일 때가 많았다. 재촉해도 안 오면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시후를 기다리곤 했다. 작은 동네라 집이 다섯 채 밖에 안 남아 있었고 젊은 사람은 다 떠나고 없고 한 번씩 노부부가 집 근처 텃밭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였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온 날 시후가 말했다. "엄마 오늘 자전거를 타다가 길 옆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뒤따라와서 경찰이라더니 나이하고 학교를 묻더니 안 간다니까 왜 학교를 안 가냐고 물었어요." " 그래?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 지금은 몸이 아파서 당분간 학교를 쉬고 있다고 했어요." "경찰 아저씨가 왜 따라왔을까? 제복을 입고 있었어?" " 아니요. 사복 입고 있었어요." " 경찰차가 있었어?" " 네 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정차돼 있었어요." "그 차에서 내리는 것 봤어?" "아니요. 못 봤는데 쉬고 있는데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나는 것만 봤어요." " 시후야. 너 오늘 할머니 동네에 가서 개 구경하고 왔지?" " 네. 그게 왜요?" " 낯선 아이가 동네에 어슬렁거리며 개가 짖는데도 아랑곳 않고 서 있으니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질 나쁜 아이로 착각하고 동네 사람이 신고를 했나 보네. 다시는 그 동네에 얼씬도 하지 마라. 시후야. 좀 눈치가 있어라. 보통은 개가 짖으면 시끄럽고 짜증 나서라도 자리를 얼른 뜨잖아. 또 주인이 나올까 봐 겁을 먹는 게 정상인데 전혀 개의치 않고 서 있으니 누구라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네...."


이제 인지력도 저하돼 가는 듯 해 억장이 무너졌다. 학교도 안 가고 저러고 돌아다니는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이제는 하다 하다 경찰의 미행까지 당하는 신세라니.. 땅을 치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시후 앞에서는 내색도 못하는 내 심장은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자신도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그동안 미뤄두었던 검정고시 공부에 무섭게 파고들었다. 그러다 정신병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며 투정 부리고 울다가 시작하고 또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검정고시는 일 년에 두 번 4월과 8월에 있었다. 시작한 지 5개월 만인 이듬해 4월에 중등학교 과정을 마스터했다. 또다시 다음 해 4월, 1년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히는 병마를 꿋꿋이 헤쳐가며 환자로서 특히 뇌 질환자로서 뭔가에 집중하고 성과를 이룬다는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상반기에 이미 고졸자가 되었으니 다른 친구들보다 거의 3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우리 시후가 해 냈던 것이다. 시후가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한 다음 주에 시후의 앞날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호주의 시드니로 날아갔다.


(1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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