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이 있는 풍경Landscape with Merchants>, 1629. Image source: The National Gallery, Washington D.C.
조르조네의 목가적 화풍의 또 다른 계승자로 알려진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4/05-1682)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그의 일생 대부분을 보내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풍경화가로 추앙받았습니다. 로랭은 이탈리아풍의 고전주의 영향을 받아 성서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기반을 둔 주제를 그려 풍경화를 역사화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는데요. 우리에게 흔히 역사화라 하면 유명한 전투장면이나 역사 속 사건을 그린 그림 정도로 생각되지만 17세기 당시 역사화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화의 개념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함대에 불을 지르는 트로이의 여인들The Trojan Women Setting Fire to Their Fleet>, 1643,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역사화라는 용어는 17세기 프랑스 왕립미술원에서 시작하여 처음에는 그리스 로마 고전이나 신화 혹은 성서적 주제를 그린 그림을 칭하는 용어로 통용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럽미술은 역사화와 종교화를 최상위 장르로 여겼고 반면 초상화와 풍경화는 비교적 하위장르로 치부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로랭이 역사화의 주제를 풍경화에 도입하여 하위장르인 풍경화를 역사화 수준으로 견인한 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조르조네의 목가적 풍경화법을 계승하여 평화롭고 전원적이면서도 동시에 웅장한 스케일의 풍경화를 그려 동시대인들에게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사후에는 18세기 영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 <목가적 풍경화: 로마 캄파냐 평원Pastoral Landscape: The Roman Campagna>, 1639. Image source: The Met, NY.
로랭의 풍경화가 특히 18세기 영국인들에게 각광받았던 첫 번째 이유로는 그의 풍경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3단계 레이아웃 구성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로랭은 조르조네의 시적인 뉘앙스를 계승하는 동시에 안드레아 프레비탈리(Andrea Previtali)가 그의 아카디안적 풍경화인 <테발데오의 전원시에서 따온 장면들>(1510)(왼쪽 이미지)에서 선보인 전경, 중경, 후경의 구조를 이어갔습니다 (앞글 '시인에게 바치는 경의' 참조). 더불어 로랭은 중경과 후경 사이에 다리, 강, 혹은 굽이굽이 흐르는 개울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후경의 풍경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입체 효과를 달성했습니다. 이런 일률적이면서도 명확한 구조는 그의 풍경화 작품 전반에서 사용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 풍경화를 처음 접한 영국인들에게는 이 새로운 미술장르를 비교적 쉽게 답습케 하는 일종의 공식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평가됩니다.
참고문헌: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Boston: Beacon Press,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