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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뿌니 Oct 11. 2023

8. 주저 앉을 것인가? 앞으로 나아 갈 것인가?

내가 꿈꾸는 은퇴생활

<멀리 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누가 내 치즈를 겼을까?>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처음 학원을 시작했던 2000년도에 경영마인드 교육이 있어 갔다가 이 책 내용으로 하는 강의를 듣게 됐다

자기만의 치즈를 찾으라는 내용의 강연이었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연자는 말했었다


처음 들었을 때 학원을 시작하면서 막막하고 두려웠던 내게 긍정의 힘을 주었던 책이었다 

치즈를 찾아 미로 속을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네 명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만의 치즈를 찾기를 바라며 가슴 벅찬 다짐을 했었다


23년이 지나 개그맨 김영철 님 강연에 가게 되었다

강연이 시작되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책을 언급하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쓰인 PT화면이 보였다

처음 학원을 시작할 때 듣고 22년을 해오던 일을 관두고 가게 된 무료강연회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그 책

자신만의 치즈를 찾으며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멋있네!' 감탄하다가 소름이 돋았다

시작과 끝에서 만난 같은 책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미로 속에서 여전히 치즈를 찾으러 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강의를 듣고 얼마 되지 않아 자주 가는 서점에서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오래된 그 책을 발견했다

이런 우연이 신기하기도 했다

마법에 걸린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선채 책을 읽었다




결혼 전부터 반복되어 꾸는 꿈이 있다

회색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등학교 때 우리 반 교실책상에 앉아 있는 꿈이다

고등학교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 때면 어김없이

그 회색벽과 빼곡히 줄지어져 있는 책상에 앉아 어려운 수학문제가 풀리지 않아

끙끙대고 있다가 깨는 꿈을 꾼다


어느 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나의 결혼이 잘못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진짜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갓 태어난 아들을 포대기로 업고 법원 앞에 있는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맨몸으로 그냥 집에서 나오시면 그게 이혼하시는 거예요 결혼 한지도 몇 년 안 됐고 특별한 사유도 없으니

재산분할 할 것도 없고 위자료도 받을 수 없어요 직업도 없으니 아이도 키우지 못할 겁니다"


특별한 사유.... 외도 가정폭력 도박... 겉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이혼도 할 수 있었다

돌아와 하루종일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돈을 벌어야겠다!


미로 속에서 치즈를 찾아 나섰던 두 생쥐와 두 꼬마인간처럼 

매일매일 미로를 돌아다녔다

작은 치즈조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허탕을 치기도 하면서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치즈를 찾아 나섰고

결국 치즈가 가득한 창고를 발견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더 이상 고등학교시절 교실에 갇히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새해 첫날 교회예배에서는 해당 연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성경말씀 구절을 뽑는다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편 4절


치즈창고를 발견하고는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고 지낸 8년

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 저 밑바닥에 꼼꼼 숨겨 놓고 꺼내기가 무서워서

외면하고 지냈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난 그 특별한 사유로 그해 첫날 뽑았던 성경구절 데로 소원을 이루었다


매일밤 잠들기 전 누워서 머릿속으로  캐리어에 어떤 물건들을 넣어야 할까?

들어가지 않는 물건들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

캐리어에 물건을 다 넣을 수 없다면... 나에게 넣자!

책을 읽고 강연을 보러 다니고 무엇이든 나에게 넣으려고 했다


소원이 이루어진 날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들고 집에서 나왔다

그 캐리어에는 아파트권리등기증과 통장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간통죄가 없어지기 전이었다





그렇게 창고에 가득 들어있는 치즈를 매일 먹으며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그때서야 치즈는 얼마 남지 않았고 오래되어 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다시 고등학교 회색벽 교실에 갇히게 될까 봐 두려웠다


치즈가 다 없어지고 <누가 내 치즈를 겼을까?>

안절부절 어찌할지 몰라 망연자실해 있는 내 모습은 마치 우화 속의 헴과 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치즈를 찾으려 하지 않고 내 치즈를 누가 옮겼을까? 고민만 하고 있던 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선 허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곧 다시 갖다 놓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던 헴이 곧 나였던 것이다





22년 미로 속에만 있었던 나는 미로 속에 어딘가에 있을 치즈만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고혈압과 대상포진 갱년기로 무너진 나는 미로 속에 있을 치즈마저도 찾기를 포기했다

미로 속에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치즈가 없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는 무너져 버렸다


호프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치즈만 먹었던 내게 빨간 돌멩이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 빨간 돌멩이를 먹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치즈는 맛있고 빨간 돌멩이는 더 맛있다

블록체인기반으로 하는 공유플랫폼사업에 투자하고 그 빨간 돌멩이가 사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9개월 만에 나를 조용히 손절했던 J원장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파산으로 개인회생 중이라고 했다

하던 장사도 잘 되지 않아 정리 중에 있고 다시 공부방을 시작했다면서 그동안 일도 안 하고 지내고 있으니

내 처지도 그리 좋지 않을 거라 짐작되어 한 전화였다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던  빨간 돌멩이가 맛있는 사과였다는 사실을 말했다

서로 힘든 사정을 얘기하고 너나 나나 똑같이 살 것이라고 짐작하고 수다나 떨면서 사는 거 별거 없더라

위로도 해주고 위로도 받고 하려다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들은 J원장은 이번엔 나를 확실히 손절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원장들을 모아놓고 성공사례를 듣기도 하고 발표하는 기회가 있다

한 번은 학원운영 노하우를 강의하게 되었다


"노하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장들은 제각기 답변했다


"뭔가 특별한 것이요 그 학원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이 노하우 아닐까요?"

대답한 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특별한 비법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지금껏 들은 것 중 특별한 비법은 없었어요 다 내가 아는 것들이었어요"


"별거 없이 그저 그랬는데 그 노하우를 듣겠다고 또 오셨네요? 수첩까지 챙겨서?"


"매번 기대하고 오죠. 뭐 특별한 비법이라도 듣게 되면 적으려고요"


"비법을 적으면 나중에 다시 읽어보시나요?"

잠시 망설이다가 읽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저도 오늘 원장님들에게 특별하고 기발한 비법을 말씀드리면 좋을 텐데 죄송하게도 없네요

그러나 특별하거나 기발하진 않지만 저만의 노하우가 하나 있긴 합니다

저는 특별하지도 기발하지 않은 노하우를 특별하고 기발하게 만드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랬다 나는 성공노하우를 듣거나 책에서 읽으면 우리 학원에 맞을까 안 맞을까을 고민하기 전에

직접 해 보고 판단했었다

어쩔 땐 아주 하찮은 거라 해보나 마나 한 것들도 들은 노하우는 반드시 그대로 해 봤다

들을 때는 다 내가 이미 아는 것이고 이게 노하우라고? 되묻고 싶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별게 아니었다

그러나 직접 해 보면 진짜 노하우로써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내 노하우였다

노하우를 들으면 직접 해보는 것

헴도 호프가 건넨 빨간 돌멩이를 못 먹는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먹어보려고 시도조차 안 했다면 어땠을까?

미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 것이다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미로 밖으로 나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두운 모퉁이들을 피하기만 하다가 그 어두운 모퉁이 속으로 들어가 그 어두움을 확인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언젠가 미로 밖에 세상과 마주 할 것이다

요즘 글을 쓰면서 내 치즈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설레고 있다


50살의 나이는 치즈만을 고집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껏 존재했던 시간보다 내가 살아온 그 짧은 시간에 많이 변했고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 시간과 그 세상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내가 알고 있던 신념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왜 MZ라고 하는지 아느냐? 란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하는 것을 본 적 있다

MZ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MZ라고 부른다고 한다

 

X세대인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바로 내가 되고 있었다

늙어가는 것이 서럽고 두려운 것이 되는 건

내가 알던 신념만이 사실인 것처럼 고집부리며 살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견디면서 내 신념들을 한 번에  시간이 되었다


<신념이 자신을 주저앉게 하는가? 앞으로 나아가하는가?>


치즈가 맛있었다면 사과도 맛있을 것이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 광고 카피처럼 도전해 봐야 내 치즈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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