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ce 06. Cotton candy tornado
위이잉-! 솜사탕 기계가 돌아가고,
페프리카씨는 자루에서 설탕 몇 스푼을 푹 뜨더니
솜사탕 기계에 촤르르-부었다.
기다랗고 뾰족하게 미리 말아둔 종이 막대를
안쪽으로 돌돌 휘저으니,
작은 구름 같은 솜사탕 몇 개가
별안간 회오리를 일으키고는
조금씩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솜사탕 회오리는 점점점.. 점점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솜사탕 기계 상단에 난 구멍사이로
몸집을 불리고는,
따뜻하고 달큰한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솜사탕 회오리가 되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렇게 커지다 보면 저 예쁘게 노을 진 하늘을
모두 휩쓸 만큼 거대해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캔자스 도로시의 집을 통째로
오즈로 데려가버린 거대한 토네이도처럼
흥미로운 일을 잔뜩 품은
더 큰 토네이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Cotton candy tornado_나의 작가노트 중 >
고백하건대 분명 그림을 그리는 일은 대부분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지만, 종종 어느 단계에선가 갑자기 막혀버려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지없이 내 머릿속을 잠식해 버리는 날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때이다. 며칠을 공들인 그림을 만족스럽게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그림은 뭘 그려볼까 하는 질문이 바로 따라올 때가 있다. 여유 없는 그 질문에 어떤 운 좋은 날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주렁주렁 따라올 때도 있지만, 또 그중의 어떤 날은 하루종일 앉아서 골몰해 있어도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은 안정을 취하며 심호흡을 해보거나 산책을 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카페로 출동해서 커피를 사 와 다시 앉아 보아도, 혹은 잠깐 친구와 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거나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는 등 일부러 딴청을 피우려고 해 보아도 머릿속은 여전히 꽁꽁 숨어버린 아이디어를 찾느라 분주하곤 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조금이라도 빨리 이 답답함의 늪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어 자꾸만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외의 다른 일은 몽땅 방해스럽게 여기는 뾰족뾰족한 사람이 되어 버릴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그런 때에는 이렇게 뾰족해져 버린 나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답답함의 늪 속에서 며칠을 허우적거린 후에야 겨우 실마리를 찾기도 하는데, 그렇게라도 실마리를 찾게 되면 며칠을 답답할만치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쨍한 해가 나온 듯 마음이 다시 동그래지고,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사람이 되어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려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 대부분의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나에게 그림을 그리면서 제일 신이 나는 순간은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스파크 튀는 즐거움을 만나기 위해 자꾸만 책상으로 향하고, 익숙한 길을 걸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에도 조금은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모으기 위한 채비를 하게 된다. 그 작은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나의 생각의 자루에 모아두었다가, 하얀 종 이 앞에서 유독 자신이 없는 어느 날, 툭-꺼내보기로 한다. 그럼 페프리카씨가 자루에서 몇 스푼 덜어낸 설탕이 거대한 솜사탕 토네이도가 되는 것처럼, 나의 작은 아이디어 조각들도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아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키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꿈을 갖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