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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Nov 21. 2024

그림자 끝에 걸어둔, 오후 4시

아주 오래전 늦은 가을에

  언제나 그랬을 테지만,

  이번 계절도

  제 오고 감을 미리 말하지 않았다.


  계절...


  정신없을 정도로 일을 벌여놓고 보니

  어느덧

  가을과 겨울이 자리바꿈을 시작했나 보다.


  가을...


  지독히 가을앓이를 하는 나로서는

  제모습을 느끼기도 전에 훌쩍 떠나가주는 가을이

  어쩌면 고맙기도 하지만

  왠지 아쉬우기까지 한건,

  글쎄

  왜일까?


  겨울...


  며칠 전,

  시답잖은 날씨에 바람까지 불더니

  그예 눈발을 했다.

  그나마 첫눈이라고 호들갑 떠는 몇몇을 보다가

  아끼던 와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밤을,

  취했다.


  그날,

  와인에 젖어 서서히 취해가며

  뿌연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근 일여 년 동안

  잠깐의 휴식조차 갖지 못한 나에게 휴가를 줘야겠다고.

  잠깐이라도.


  매년 가을이면 훌쩍 떠나던

  그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휴가라도 주려고 생각하니

  가벼운 기대감마저 생겼다.


  바다...


  11월 끝자락의 어느 바닷가

  오후 4시경.

  동안 지겨우리만치 싸워왔던 생활일랑

  딱 그 시간만큼 길어진

  그림자 끝에 걸어둔 채

  그저 내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오랜만에 내.얘.기.를...


  시간이 허락한다면

  낮에는 싱싱한 활어에 소주 한잔을,

  밤엔 밤바람에 와인을 마시는 호사도 누려보고 싶다.

  다시 날고 있는 이 생활이,

  이 날개가,

  내가 생각하던 그것인지

  답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하늘에 감사까지 하련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지 않기에,

  이미 그것은 날개가 아니기에,

  다시 펼친 이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아주 오래된 노트에서......靑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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