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즉, 일에 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실력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내 앞으로 지나가도 잡을 수 없다. 나는 학교 기말작품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계기들이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준비 단계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3학년 기작 발표가 있던 즈음 나는 드라마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 작곡가를 만나게 됐고 뜻밖에 그의 제안으로 나는 드라마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든 잘 해내고 싶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기작을 준비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참여한 드라마는 체코국립교향악단(CNSO)과 녹음하기로 했는데 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곡을 쓰고 악보를 준비하는 보름 동안 스트레스성 장염에 걸려 골골댔다. 어쨌거나 나는 프라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녹음 세션 과정의 통역도 맡게 되었는데, 외국에서 자라서 영어 회화가 된다는 것도 기회를 얻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셈이었다.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케스트라 녹음 과정을 견학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녹음 디렉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내가 나의 곡을, 그것도 관현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진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 곡 사이에 내 곡을 녹음할 차례가 됐을 때 나는 지나치게 긴장을 한 탓에 연주자들이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주법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함께 있던 다른 작곡가가 잘못된 부분을 귀띔해주고 나서야 나는 토크백 버튼을 눌러 나의 의도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 후 두 달이 지나 드디어 나의 첫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나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TV를 켰고 나의 데뷔를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첫 장면의 첫 음악으로 내 곡이 흘러나왔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영상 음악 작곡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2012년 여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