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집의 역사

달동네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

by 질풍검객

달동네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던 추석 즈음 어느 늦은 오후 나는 태어났다. 어린 시절엔 할머니의 사랑과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7남매 중 맞이로서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셨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장의 역할까지 맡으셨다. 아이스크림 장사부터 안 해 본 것이 없으셨다는 아버지의 생활력과 정신력은 국가 대표급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동대문 뒤편으로 한양도성 성곽길이 멋지게 이어진 혜화문이 위치한 낙산 근처였다. 지리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그곳은 값이 쌌고 저녁이 되면 서울 시내를 환하게 비추어 주는 달이 떠올랐다. 서울 사람들은 그곳을 달동네라고 불렀다. 한옥으로 지어진 우리 집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큰 가마솥을 이용해 밥을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서울의 시골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우리 집의 역사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봉제공장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은 공장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는데, 그곳에는 늘 활력이 넘쳤다. 1층에는 커다란 시장이 있었는데 다양한 먹거리와 생필품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간이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추억과 낭만으로 가득한 기억뿐이다. 부모님은 공장에서 니트를 직접 만들어서 평화시장에 납품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셨다. 니트(혹은 스웨터)는 실로 고리를 만들고 연결해서 이어 붙인 편물 원단을 가지고 만든 옷을 말한다. 씨실과 날실을 가로 세로로 번갈아 짠 직물 원단과는 다른 특성을 지녔다. 니트는 신축성이 좋고 위생적이며 바람이 잘 통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올이 풀리지 않도록 하거나 보풀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상에 주의를 필요로 하는 예민한 옷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일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맡았고 재단과 다림질 등 힘쓰는 일은 남자의 역할이었다. 어머니는 누나, 형들과 함께 공장에서 하루종일 미싱을 돌리셨다. 아버지가 동대문 시장의 거래처를 확장한 결과로 공장의 규모는 커졌고 납품처도 많아졌다. 공장은 공연장과도 같았다. 규칙적인 리듬으로 돌아가는 미싱, 칙칙 소리 나는 다림질, 윙윙 원단을 자르는 기계소리는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공연 한 편을 연상케 했다. 돈을 벌고 꿈을 꾸는 공간, 내 어린 시절 감성을 키우던 놀이터가 바로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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