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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별냥 Sep 27. 2024

마음 보여주기

 다음 날 새봄이는 동우를 기다렸지만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대로 가버린 바람에 다음 약속이 없긴 하지만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그네에 괜스레 앉아보기도 하고 집 앞을 서성이기도 하였지만 어쩐지 집은 조용했고 차마 초인종을 누를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새봄이를 아빠가 멀리서 지긋이 보더니 다가온다.


 “예쁜 딸, 우리 오늘은 엄마 아빠랑 산책하고 바비큐 해 먹고 장작도 태우고 할까?”


 ‘아 맞다, 그러려고 여행 왔는데... 깜빡했네..’


 순간 여행의 목적을 깨달은 새봄이는 동우랑 놀다 보니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게 생각나 너무 죄송해서 오늘만큼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네, 좋아요.”


 마을 가벼운 산책 코스를 돌면서 봄꽃들로 사진도 찍고 야외 먹거리를 둘러보고 솜사탕도 먹으면서 작은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 도시락도 먹고 따스한 봄 햇살 아래에서 일광욕도 하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눈을 감으니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등 너무나 평화로운 소리였다.


 “우리 새봄이 어렸을 때 생각나네. 저렇게 넘어질 때면 엄마아빠를 찾고는 했는데 말이지.


 엄마의 말에 새봄이는 눈을 뜨고 일어나 앉더니 엄마 아빠의 시선에 보이는 한 가족들이 보였다.


 어린아이가 비눗방울을 잡으러 다니다가 넘어졌는지 울면서 아이의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고 있었다.


 “내가 그랬어요?”


 “그럼, 무슨 일만 있으면 그렇게 엄마아빠만 찾고 아주 껌딱지가 따로 없었다니까.”


 “그때는 언제 크나 했는데 벌써 이렇게 자라고..


 엄마는 추억에 젖어 생각하시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혀지더니 가족들이 알아챌까 싶어 일어난다.


 “아이고 물이 없네. 빨리 가서 좀 사 올게.


 “가 갔다 올게요.


 “아니야, 잠깐 쉬고 있어. 엄마가 금방 다녀올게.


 엄마는 금세 자리에 일어나더니 빠른 걸음으로 가시는데 눈물을 닦는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너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났나 보다.”


 “.....”


 새봄이는 엄마가 또 슬퍼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빠는 그런 새봄이의 모습을 보고 화제 전환을 시킨다.


 “우리 저녁은 마당에서 먹을까? 캠핑 분위도 내면서.


 “좋아요.”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또다시 복통이 찾아와 새봄이는 배를 움켜쥐고 아빠는 그런 새봄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딸 괜찮아?”


 저 멀리서 간식거리와 물을 가지고 오던 엄마도 새봄이의 모습에 손에 들고 있던 걸 떨어뜨리고는 새봄이에게 뛰어 왔다.


 “많이 아파?”


 ‘힘들 땐 힘들다 얘기해. 가족이잖아. 오히려 숨기는 걸 더 속상해하실 거야.’


 문득 동우가 해준 말이 생각이 났지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새봄아...”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대답하고 부모님은 안 되겠다 싶어 새봄이를 데리고 돌아가기로 한다.


 급히 산책을 마무리하고 나서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우네를 보지만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봄이는 내심 아쉬워하며 대문을 들어간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산책도 다 못하고...”


 “그런 말이 어딨어.. 잠깐 좀 쉬고 있어. 아빠가 저녁 준비할 테니 다 되면 부를게.”


 “네, 알겠어요.”


 잠시 다녀온 나들이에 조금 피곤했는지 새봄이는 잠깐 눈을 붙이고 이윽고 아빠의 부름에 눈을 비비고 마당으로 나온다.


 “와 이게 다 뭐예요?”


 마당 곳곳에 노란 전구로 꾸며놓은 조명과 맛있는 바비큐에 돗자리와 테이블까지 한껏 예쁘게 꾸며놓으니 정말  캠핑 느낌이었다.


 “예쁘지? 아빠가 준비했어. 아직은 저녁에 좀 쌀쌀하더라. 우리 딸 추울 수도 있으니 이거 입자.”


 아빠는 따뜻한 외투와 담요를 칭칭 감는데 어찌나 많은지 눈사람이 되었다.


 “아빠 나 이러면 밥 먹기 힘들 거 같은데요.


 “아 그런가?”


 “조금만 풀게요.”


 아빠의 엉뚱함에 웃음이 나오는 새봄이.


 모처럼 캠핑 분위기에 고기도 먹고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리를 하고 아빠가 준비해 놓은 화로대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인다.


 처음에 연기가 많이 나서 도망 다니느라 컥컥 거리기도 하였지만 자리를 잡아 놓고 은은한 조명과 밤하늘을 별을 보며 타탁 타닥 타들어가는 장작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그렇게 한참을 불을 보던 새봄이는 갑자기 심하지는 않지만 한차례 복통이 살짝 왔다.


 부모님께 들킬까 봐 눈을 질끈 감고 꾹 참는데 어제 동우가 이야기해 준 말과 낮에 부모님이 해준 이야기에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나 어렸을 때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나 별로 안 아팠는데 걱정해 주는 부모님을 보고 일부러 엄살 피우며 더 응석 부렸는데... 하.. 동우 말대로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볼까?’


 새봄이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엄마 아빠에게 말을 건네어 본다.


 “엄마 아빠.”


 “왜? 우리 예쁜 딸~”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음... 끝까지 들어주셔야 해요...”


 새봄이의 아빠는 두 손으로 새봄이의 엄마의 어깨를 잡고 서로를 바라보다 새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 거린다.


 “저 사실....”


 새봄이는 용기를 내기 운을 띄우기는 했지만 아직은 완벽한 용기가 아니었는지 괜스레 나무 막대기로 바닥에 낙서를 하였다.


 부모님은 궁금해 하지만 보채시지 않고 새봄이를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더니 이내 결심한 듯 새봄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저.. 그동안 많이 힘들고 아팠어요. 근데 엄마 아빠 걱정 시킬까 봐 애써 괜찮은 척했어요. 사실 나 너무.. 무서워요.. 이식 소식은 없고 검사 소식은 늘 안 좋고 이러다 내가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닌지 매일매일이 깜깜한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울먹거리는 새봄이의 말에 엄마 아빠는 끝까지 귀 기울여 준다.


 “예전부터 이야기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엄마 아빠가 몇 번 우는 모습을 보니 내가 응석 부리면 더 힘들어하실까 봐... 말 못 했어요... 죄송해요..”


 드디어 새봄이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했다.


 차분히 이야기했지만 순간 부모님께 혼날까 봐 겁이 나 두 눈을 찔끔 감았고  엄마 아빠는 지난날 자신들의 모습 새봄이가 보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지만 새봄이의 모습을 보고는 말을 꺼낸다.


 “아니야 새봄아 괜찮아..”


 “엄마 아빠는 다 알아..”


 “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새봄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엄마 아빠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흐르는 눈을 닦으며 새봄이를 안아주더니 등을 쓸어내리면서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부모잖아.. 엄마 아빠는 말이야.. 우리 딸 표정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알 수 있어.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어.. 무조건 괜찮다고 하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며 자꾸 어른처럼 굴려는 우리 딸이... 엄마아빠에게 기대지도 못할 만큼 못 미더운 건 아니었을까.. 대신 아팠으면 좋겠는데 우리 사랑하는 딸 아프지만 않게 해 준다면 그깟 암 다 가져가도 괜찮을 텐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부모로서 죄책감도 많이 들었단다. 언제 우리 딸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이렇게 컸을까.. 어쩌면 우리 딸이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덜 슬퍼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 딸 입장이 되어 조금씩 이해해 보려고 했어.. 그렇게 이해하고 기다려주다 보면 어렸을 때처럼 엄마 아빠를 찾아 주길 기다리고 있었어.”


 ‘다 알고 계셨구나.. 다 알고 계셨어..


 “미안해 우리 딸.. 엄마아빠가 먼저 우리 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야 했어.. 그러면 우리 딸이 이런 고민도 안 하고 솔직하게 말해줬을 텐데..”


 “새봄아, 앞으로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 줘.. 엄마아빠가 힘든 건 견딜 수 있지만 우리 딸이 힘든 건 견딜 수가 없어.. 이제는 우리 딸 마음의 짐이라도 같이 들어주고 싶어.. 언제나 엄마아빠에게 기대주렴... 그러면 엄마 아빠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나 정말 무서워요. 아프기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


 무거웠던 마음이 내려앉자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했다.


 엄마도 참았던 눈물이 터지셨는지 새봄이를 안아주며 위로해 준다.     


 “그래 우리 딸 많이 힘들었지? 이야기하고 싶었을 텐데 마음에 얼마나 더 속상했겠어... 미안해 엄마 아빠가..”


 “아니에요..”


 아빠는 말없이 눈물을 닦으며 엄마와 새봄이를 토닥여 주었다.


 밤하늘 가득한 별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빛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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