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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별냥 Sep 26. 2024

어느 멋진 날(3)

 “사실 나 많이 아프거든.”

      

 “아프다고? 어디가?”


 “그냥.... 좀...”


 “말하기가 좀 그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다음에 얘기하고 싶어지면 그때 얘기해.


 “아니야, 나 사실 오래 살지 못해.. 큰 병에 걸렸거든.. 암 이래.. 이식 수술해야 하는데 맞는 장기가 아직 없다네? 그래서 마지막이 될 수도 모를 여행이라 생각하고 온 거야.”

               

 동우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고 새봄이를 바라보며 묵묵히 들어주었다.


 “근데 말이야. 사실 아직 잘 안 믿겨... 가끔 통증이 와서 아프긴 하지만 이렇게 숨을 쉬고 감정도 느끼고 하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그렇지만 무서워...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올까?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도 없어.. 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나 없이 살아갈 부모님도 걱정이 되고... 내가 없어도 우리 부모님은 잘 살아야 하니까... 내가 힘들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자꾸 마음을 말할 수가 없었어..”


 새봄이는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 내기 시작했는데 마치 자동응답기 마냥 술술 나왔다.


 “정말 힘들었겠다. 지금도 많이 아파?”


 “가끔? 어쩔 땐 너무 아플 때도 있어.”


 “이렇게 나와 있어도 돼?”


 “지금은 괜찮아.”


 “다행이다. 근데 너무 참지 마. 바보 같은 짓이야. 걱정되어 감추었던 일이 가족에게는 더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가족이잖아. 아마 너의 그런 마음을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거라 생각해. 네가 말할 때까지 아마 기다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울고 싶을 땐 울고 힘들 땐 힘들다 얘기해. 가족이잖아.”


 “걱정하시면 어떡해? 아니 왜 말 안 했냐고 혼내면?”


 “그동안 숨긴 벌이라 생각해야지.”


 “뭐?”


 “미안미안. 농담이야. 혼나면 어때? 혼내는 것도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거야. 남은 시간 동안 너를 많이 보여줘. 그래야 너도 부모님도 후회가 없지. 생각보다 부모님은 강해.”


 새봄은 지난날 부모님이 자신 몰래 힘들고 아파하던 모습이 생각나자 혹시 부모님도 자신처럼 똑같은 마음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없으면 나 믿고 얘기해 봐. 내가 책임져 줄게.”


 “뭐야 그게..


 “내 말이 맞다니까. 넌 지금 용기가 필요해. 난 그 용기를 낼 수 있게 믿음을 주는 거고.


 “한번 생각해 볼게.”


 그러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자신의 병을 고백해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처음 만났을 때부터 똑같은 동우를 보니 신기했다.


 “넌 내가 안 불쌍해?”


 “응? 왜?”


 “다들 불쌍하다 하길래..”


 “글세, 감추고 싶었던 네 마음을 알았나? 그리고 며칠간 같이 노는 동안 넌 하나도 아픈 아이처럼 안보였어.”


 “그래?”


 “그리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매번 장난치고 울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너 때문에 운 거 아냐”


 “나 때문이 아니야?”


 “응. 그냥 그동안 우는 법을 좀 까먹었달까? 네 덕분에 좀 울게 됐어.”


 “......?”


 “그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고마워,,, 오랜만에 뛰어도 봤고 놀아 봤거든.”


 “그렇다면 다행이다. 역시 내가 쫌 하지?”


 “아, 취소야 취소”


 “농담 농담, 음.. 새봄아 이 나무 어때?”


 너스레 장난치던 동우가 이들 앞에 있는 삐뚤빼뚤한 모양의 커다란 초록색 나무를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응? 뭐 그냥 큰 초록색 나무인데.”


 “이 나무가 말이야. 작은 묘목일 때는 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많이 약하데, 그렇지만 햇빛, 바람, 흙, 물과 같이 영양분을 먹고 견디고 견뎌서 자라면 이렇게 크고 멋진 나무가 되는 거지. 어때? 멋지지 않아? 지금은 봄이라 다른 나무들의 꽃들이 워낙 화려해서 눈에 띄지 않고 별거 없어 보이지만 겨울이 되면 이 나무가 여기서 제일 멋지고 예쁘다?”


 “그래?”


 “너도 지금은 아프다는 사실에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해서 긍정적인 마음은 가둬 놓은 채 보았기 때문에 주변의 좋은 모습만 보였을 거야 이 나무처럼..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 나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치료받으면 이 나무처럼 제일 예쁜 나무가 될 수 있어.”


 “쳇, 그게 뭐야?”


 새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지만


 “진짜야 내 말 믿어봐. 원래는 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던 나무인데 매년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올해는 축제도 한다더라. 크리스마스 저녁에 한번 와서 봐봐. 내 말이 맞는지.


 “그럴 수 있을까?”


 “그럼. 나만 믿으라고. 아까 드라이브처럼 날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러니깐 기운 내서 치료 잘 받고 알았지?”


 “뭘 그리 또 믿으래?”


 새봄이는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괜한 소리라 넘기려 했지만 동우의 위로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며칠 동안 풀지 못한 어려운 수학 문제를 술술 풀 수 있게 해주는 힌트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환하게 빛나 보였다.

 

 “알았어.”


 자신만만한 동우의 표정을 보자 새봄이의 속는 셈 치며 대답하였고 동우는 만족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나도 이 나무처럼 잘 견딜 수 있어.’

 

 새봄이의 눈에 커다란 나무가 아른아른거렸다.


 “야, 신동우.


 잠시 여유로웠던 분위기를 깨고 저 멀리서 아까 이들을 쫓던 동우의 형이 숨을 고르더니 다시 뛰어온다.


 “미안, 나 이제 가봐야겠다. 집에 혼자 갈 수 있지? 또 놀러 갈게, 다음에 봐~”


 동우는 재빨리 형에게 갔다.


 동우의 형은 화를 내고 있고 동우는 형의 마음을 풀고자 미안하다며 두 손을 모으고 이야기했지만 귀를 잡힌 채 따라갔다.


 그리고 동우의 형은 잡은 귀를 풀더니 뒤돌아 새봄이를 보자 경계하더니 휙 하고 돌아서 다.


 ‘뭐야? 나 찍힌 건가?’


 순간 당황해했지만 이내 동우와 한 약속을 곱씹어 본다.


 ‘크리스마스? 그때까지 내가 정말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생각지 못한 먼 훗날이라 마음이 좀 무거워졌지만 새봄이의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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