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눈을 떠 보니 해가 난지 좀 되어 보이자 깜짝 놀라 시간을 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다행히 약속시간까지는 좀 남았지만 생각해 보니 늦게 잠든 적은 많아도 이렇게 늦잠 잔 건 오랜만이었다.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어보는데 푹 자서 그런지 몸이 평소와 다르게 개운하게 느껴졌다.
머리맡에는 아침밥과 약이 있는 걸 보니 부모님께서 너무 곤히 자고 있어 깨우지 않은 모양이다.
‘어제처럼 아프면 안 되니 든든히 먹자.’
새봄이는 밥을 뚝딱 해치우고는 약도 야무지게 먹고는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우리 딸 잘 잤어? 어머 이걸 다 먹은 거야?”
“네. 왜요?”
“아니, 요새 통 별로 안 먹어서 남기더니 웬일로 다 먹었나 싶어서.”
“아.. 오늘따라 밥이 맛있어서요.”
새봄이는 멋쩍은지 둘러대고는 후다닥 주방 밖으로 나서고 엄마는 그런 새봄이를 한번 보고 빈 그릇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신다.
새봄이는 가지고 온 옷들을 침대 위에 촤르르 펼쳐놓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예쁜 옷 좀 가지고 올걸..’
옷을 뒤적뒤적거리다 어제 그냥 나갔던 게 내심 맘에 걸렸는지 오늘은 제대로 허락받고자 계단으로 내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아빠 저 점심때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
“혼자?”
“아니요.. 사실.. 여기 놀러 와서 알게 된 친구가 생겼는데.. 아, 옆집에 살아요”
“어머 그래?”
“네,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다녀와도 될까요? 멀리 안 가고 이 인근에 있을게요.”
“음.. 알겠어. 대신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야 해!”
“그럼요. 당연하죠.”
허락 안 하실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너무 신났다.
티 내지 않으려 태연하게 행동하지만 시계만 쳐다보며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새봄이와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한 듯 쳐다보는 부모님이다.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거야..’
약속에 늦을까 점심 식사를 빨리 마치고 약을 잘 챙겨 먹고는 창문으로 다가가 살며시 커튼을 열어 보니 대문 밖으로 약속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그 녀석이 보였다.
새봄이는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를 킨 후 확대를 시킨 후 그 녀석의 모습을 조심스레 담아 보는데 살짝 흡족 해하는 표정을 하더니 이러다 늦게 다며 헐레벌떡 뛰어 나가다 아차 싶어 다시 여유로운 척하며 나간다.
“다녀오겠습니다.”
“핸드폰 잘 챙겼지? 무슨 일 있으면 꼭 바로 전화해야 해.”
“알겠어요. 바로 연락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새봄이는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밖에 나갔고 그런 새봄이를 보면서 엄마는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따라가 보는 게 좋겠지?”
“뭐, 누구 만나는 지도 이야기 해주고 근처라 하고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한다고 하니.”
“그래도..”
“믿어 보자고. 우리가 믿어줘야지 누가 믿겠어. 그럼 난 마음 놓고 저녁에 모닥불이라도 피우게 한 번 장작을 주우러 가볼까?”
엄마를 안심시키던 아빠지만 막상 밖에 나가 대문 밖을 기웃거리면서 나뭇가지를 대충 줍더니 조심스레 밖으로 나간다.
창문을 통해 보던 엄마는 아빠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웃어넘긴다.
“안녕? 잘 잤어?”
“뭐... 오늘은 학교 안 가나보다?”
새봄이가 대문 밖으로 나가자 녀석은 어제와는 달리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뭐.... 그렇지.”
순간 그 녀석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여 의아했지만 새봄이는 계속 물어보면 약속을 취소하고 가버릴 까봐 그냥 믿어주기로 하고 넘기었다.
“어제 많이 혼나는 거 같던데.. 괜찮아?”
“조금?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
“아니..”
“그럼 우리 드라이브 갈까?”
“우리 아직 면허도 못 따는데 무슨 드라이브야”
“에이 나만 믿어보라고~”
그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으쓱이더니 따라오라며 먼저 앞장선다.
삑. 학생입니다.
“뭐야, 버스?”
“그럼, 우리가 합법으로 할 수 있는 드라이브지..”
그 녀석은 새봄이를 향해 싱긋 웃더니 뒤돌아 앉을자리를 찾아간다.
“난 또 뭐라고.”
“에이 실망 하지 마. 나만 믿으래도.”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 녀석의 선택에 피식 웃게 되는 새봄, 동우는 새봄이에게 창가 자리를 안내해 주었고 그렇게 버스가 출발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몰래 보고 있던 아빠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더니 펜션으로 돌아간다.
“왜 벌써 돌아와?”
“버스를 타더라고..”
“응?”
“아니 버스를 타고 가버리는 바람에... 놓쳐버렸어....”
아빠는 망연자실하며 하다 급 화가 났는지
“그 자식 마음에 안 드네. 감히 우리 딸을... 생긴 것도...”
“얼굴은 잘 생겼던데..”
“아빠를 보고 자랐으니 우리 딸 눈이 높을 수... 아니, 그 녀석을 그냥..”
“진정해 여보.”
“전화해 볼까?”
같은 시각 버스 앞 창문 바깥 풍경을 보는데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도로가 보였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도로 양쪽에 만개한 벚나무가 펼쳐졌고 그 모습은 마치 꽃 터널 같았다.
“뭐야... 정말 예쁘잖아..”
“그렇지? 벚꽃 드라이브야~ 지금이 제일 예쁠 때야.”
평일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했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자 새봄이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 보았는데 손바닥에 닿은 꽃잎은 마치 따뜻한 눈송이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새봄이는 창문을 좀 더 열더니 눈을 감았다.
봄의 향기가 바람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느낌을 주었고 그 순간만큼은 걱정, 아픔, 우울, 슬픔을 모두 잊어버린 채 온전히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녀석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해하는 새봄이를 보며 잠시 즐길 수 있도록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더니 새봄이를 따라 눈을 감더니 봄 내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사이 잠깐 눈을 뜬 새봄이는 그 녀석의 모습을 한참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고 그렇게 둘은 잠시 마나 시간이 멈춘 듯 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