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의 꽃들의 향연에서 푸릇푸릇한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싱그러운 초여름이 시작되었고 동우의 편지는 어느 날부터 인가 일주일, 열흘... 그렇게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처를 주고받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는지 편지에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답장에 늘 전화번호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동우와의 주고받은 편지와 사진을 보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면서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귀찮아 진건가..’
“엄마 오늘도 편지 안 왔어요?”
“글쎄다.. 안 왔나 본데?”
“그 녀석은 이제 나를 잊었나 봐요.”
“그건 아닐 거야.. 사정이 있겠지.. 아! 학교 생활 하느라 정신없는 거 아닐까?”
“그때 전화번호를 물어봤어야 했나 봐요.”
“우리 다 낫고 나면 다시 한번 가보자.”
“네. 그때 되면 혼내 줄 거예요.”
그리움과 실망... 미워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동우라면 어떤 무슨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노력했다.
늘 그래왔듯이 다시 만나면 아무 일도 없다며 장난칠 것 같았기에...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차례 장마가 찾아오더니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때쯤 뜸해졌던 동우의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비록 답장은 오지 않지만 새봄이는 계속해서 편지를 썼고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봄이 공여자가 나왔습니다. 검사 결과로도 적합하고요. 새봄이가 잘 버텨준 덕분에 수술도 받을 수 있겠어요. 하루빨리 수술 일정을 잡읍시다.”
“네? 정말인가요? 이거 꿈 아니죠 선생님?”
“맞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새봄이에게 맞는 공여자가 나타났다.
부모님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그동안 마음고생 한 만큼의 눈물을 흘렸고 새봄이는 처음에 믿기지 않아 꿈은 아닌지 얼떨떨하다 현실로 다가오자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술 일정도 잡고 이 소식을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에 써내려 갔다.
그리고는 핸드폰 사진 속 동우를 보며 이야기한다.
‘나 드디어 수술하게 되었어.. 근데 나 조금 무서워.. 수술이 잘 될 수 있을까? 우리 꼭 크리스마스에 만나자..’
그렇게 수술 날을 잡고 가족들과 함께 친구들의 응원 연락을 받으며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으면서 병을 이겨내기 위해 몸건강에 더욱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수술 날이 점점 다가오자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 들어와 숨이 턱 막혀 온다.
“엄마 아빠 나 수술이 잘 못 되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요.”
“우리 딸,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잖아.”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아참, 오늘 동우에게서 편지 왔더라.”
“정말?”
편지 이야기를 듣자 불안을 잊어버린 채 신난 새봄이는 재빨리 편지를 뜯었고 엄마는 급히 자리를 피하셨다.
왜 자리를 뜨는지 순간 의아했지만 내용이 궁금한 게 우선이었는지 나중에 물어보자 하며 접어진 편지를 펼쳐보았다.
편지에는 오랜만이라는 인사와 함께 학교생활을 하느라 정신없다 보니 이제야 답장을 쓰게 되었고 미안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공여자가 나타나서 정말 다행이라며 불안하고 걱정될 것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농담도 있었으며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편지가 늦어 섭섭함은 있었지만 동우의 응원에 용서해 주기로 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어느덧 수술하는 날이 다가왔다.
수술실 앞 이동 침대에 누워 긴장하고 있는 새봄이의 손을 엄마 아빠는 꼭 잡아주었다.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엄마 아빠 나 수술한다고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야 해요. 그리고 많이 울지 마요.”
“알겠어. 우리 새봄이 생각해서 엄마 아빠가 힘낼게. 사랑한다. 우리 딸.”
“사랑해요.”
‘엄마, 아빠 저 잘하고 올게요. 그리고 동우야 나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응원해 줘.’
수술실 문이 열리고 새봄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새봄이의 엄마 아빠는 한참을 수술실 앞에서 기도를 하며 기다리고 한 번씩 서로를 위로해 주면서 수술실 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 선생님이 나오신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이제 회복만 잘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생했어 새봄아.. 고마워...”
부모님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서로를 안아준다.
곧이어 잠들어 있는 새봄이가 이동침대에 누운 채 나와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중환자실로 이동하였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듯 보였다.
깊은 잠에 빠진 새봄이는 벚꽃이 가득한 공간에서 거닐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롯이 새봄이 혼자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걷다 한차례 벚꽃 바람이 불더니 여행 때 보았던 푸른 나무가 보였고 그 옆에 동우가 있었다.
“동우.. 너야?”
“안녕?”
“뭐야, 연락도 없고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미안.”
“근데 왜 여기에 있어?”
“너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 나무 기억나?”
“응. 네가 얘기해 줬잖아.”
“맞아, 잊지 않아서 다행이다.”
새봄이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한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지금은 기분이 좀 어때?”
“좋아, 편해.”
“다행이다. 그럼 이제 마음 편히 가도 되겠다.”
“어디가?”
“......”
말없이 미소 짓는 동우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또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고 옆에는 부모님이 지키고 계셨다.
“새봄아 깨어났어?”
“엄마, 아빠?”
“새봄이 정말 고생 많았어. 우리 새봄이 잘 이겨내줘서 너무 고마워.”
부모님의 환한 미소와 눈물을 보니 수술은 잘 되었구나 생각 들어 기뻤다.
‘이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어.’
새봄이는 중환자실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이제는 제법 앉을 수도 있게 되고 밥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마음과 함께 동우의 편지를 기대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감감무소식이다.
하루, 이틀 동우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며 새봄이는 빠르게 회복하였고 긴 무더위가 지날 때쯤 회복도 많이 좋아져 통원 치료 하기 위해 퇴원하기로 했다.
“엄마 나 퇴원하고 편지가 오면 어떡해요?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동우가 깜빡하거나 편지가 분실되어 여기로 올 수도 있잖아요.”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보았고 새봄이는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바라만 보다 말을 건넨다.
“무슨 일 있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엄마는 이내 입을 열었다.
“있잖아 새봄아...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애써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