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라
그 말대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고 해서
정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나로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봤을 때를 상상하는 것인데
상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상대의 삶 전부를 알지 못하는데
과연 함부로 입장 바꿔 생각해 봤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1932년생 나의 할아버지
나와는 거의 70년 차이가 난다
당신은 6.25를 실제로 겪었고
나는 6.25를 교과서에서 배웠다
과연 내가 함부로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려 시도했다는 말 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할아버지의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정도
좋았다 에 가깝지는 않았으나
나쁘지 않았다
주로 혼날 때가 많았지만
내 마음이 삐뚤어졌을 때에
좋지 않은 것들에만 집중해서 들여다봤을 때
그렇게 보였던 것이지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면
분명 좋았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 살아계셨을 때니까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서 여행을 다녀오셨고
다녀오시는 길에 내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로 사다 주셨다
할아버지 댁에 정말 자주 갔는데
굵은 파이프 가지고 훌라후프도 만들어 주셨고
본인이 직접 내 새총을 만들어 주셨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좋은 기억들 받은 기억들
분명 더 많이 있을 텐데
대부분의 것들은 잊고 살았다
아니
들여다보지 않았다
미울 때 화가 날 때
예전 억울했던 것들만 꺼냈으니까
써 내려가는 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대부분 내가 서운했던 것들을
나열하고 있다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아닌
시도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관계가 박살이 난 것일까
미워하는 마음에 힘을 빼고
서운하고 억울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보면
좋은 기억도 많은데
왜 나는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나빴다 보다는
할아버지를 대했던 내 마음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내 기분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 나누어진다
이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부족했던 것을 인지하고
상대가 아닌 상대를 대했던 내 마음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동안 시달렸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생각에 따라 시달렸다고 느꼈던 시간이 쌓였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바뀔 수가 있을까
노쇄하여 힘 빠진 당신
안타깝게 느껴지고 연민의 마음도 들지만
미운 것은 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대화를 시도하려고
말을 걸어보거나 잘 드시던 간식을 사다 드려도
탐탁지 않게 반응을 하실 때가 많았다
나름 다가갔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따가운데
누가 통증을 감수하며 다가가고 싶을까
집에 같이 있어도
혼자가 되셨던 것 같다
아무도 당신을 오라 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고
같은 집에 있어도 혼자라고 느끼는 당신이
왜 날카로워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네 아빠는 닮지 말라며
네 아빠는 잘못했다며
왜 그렇게 당신 자식을 욕할까 싶었는데
그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마도 당신은
아빠에게 기대 비슷한 것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듣고 봤던 당신의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잘했다 여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형편에서
아빠를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난 당신을 이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