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아빠를 그대로 닮은 나
너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
늘 이야기했다
나의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왜 항상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을 했던 것일까
왜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늘 부족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내 나이가 소년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어른이 더 어울리고 나서부터는
아빠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내가 보는 아빠는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의 세뇌
엄마의 넋두리 등으로
독단적 판단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느낀 아빠도 답답할 때가 많았다
겁쟁이였다
이 낡고 허름한 오래된 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집 이사 가는 게
내 평생소원이자 기도제목이었다
말의 시작과 끝은 늘 돈
돈돈 거리면서
돈은 모이지 않았다
아빠만을 탓했다
우리 집에 아빠의 편은 없었다
내가 어릴 때에
엄마의 고향인 서울로 이사를 갈 뻔했단다
좋은 일자리가 있어
외가 쪽에서
아빠에게 소개를 시켜줬는데
아빠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엄마 때문에요
엄마 때문에 못 가요
그 시절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내가 어렸기에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동안 내가 봤던 아빠의 모습으로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엄마 때문에요
아픈 할머니를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연고가 하나도 없는 그 서울이 무서웠던 것일까
아니면
여태 가지고 있던 습관들을 내려놓기 무서웠던 것일까
친가 외가 모두 교회를 다니고
나름 신앙이 깊은 집안이었다
나의 아빠는
술과 담배를 즐겼던 사람이었고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고
성인 장년의 흡연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는데
교회 다니는 우리 집안과 맞지 않았을 뿐
아빠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아빠는 잘못된 사람이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한다며
엄마는 아빠를 답답하게 여겼고
할아버지는 아빠를 한심하게 여겼다
따라서 아빠의 동생들이라고 달랐을까
그동안 할아버지가 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물었다
서울로 갈 것이냐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이곳에 남아있겠다는 이유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아빠는 이곳에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갈 이유도 없었는데
그냥 만약 서울에 갔더라면
이렇게 돈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살았을 텐데 하는 추측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중얼중얼하며
아빠를 공격했던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심술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제 정말로
아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아빠는 겁쟁이가 되었다
시간이 한참이 흘러
내 나이 반 오십이 되어갈 즈음
우리는 옆동네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올 때에도
앞으로 다달이 나가는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며
아빠는 두려워했지만
엄마와 나의 소원을 들어줬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빠의 일거리는 꾸준히 생겼다
예전 나 어린 시절 아빠는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비 오면 집에 있고
눈 오면 집에 있고
장마철과 겨울철 대부분을 집에 있었다
일을 나가지 못했으니
당연히 우리 집 수입도 없었다
엄마도 일을 해서 간간히 벌긴 했으나
사실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우리 집이 살았는데
그것에 대한 공경이나 고마운 마음은 없었다
이사도 가고 살 만 해 지니까
다른 문제와 고민거리가 생겼다
역시 감사는 감사할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감사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문제를 문제로 보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아닌데
나는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고
아빠가 벌어온 돈 받아 살면서
나도 따라 문제라고 생각하며
아빠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내가 밖에 나가 사회활동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
돈이라는 것을 벌어오면서부터
아빠의 심정이 느껴졌다
일 없어서 집에 있는 아빠를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기운과 분위기로 답답하게 여겼던 식구들을 보는
아빠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돈이라는 것을 벌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아빠의
낮 시간은 내가 볼 수 없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아빠의 바깥 생활이 절대 웃을 거리 가득하며
편안한 것들로 채워져 있지 않았겠구나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치사한 것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속이 상했다
이런 상황도 참아야 하고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했고
정말 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아빠는 얼마나 하기 싫었을까
집에 오면 그 고생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아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무도 아빠를 알아주지 않는데
아무도 아빠를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아무도 아빠를 몰랐는데
돌아오는 말은
네 아빠는 모른다였으니까
할아버지와 나는
가끔씩 대화를 했다
그냥 두면 안쓰럽기도 했고
연민일까 동정일까 헛갈리는 그 마음에서부터
할아버지에게 나름 내밀었던 내 쭈뼛거리는 손이라고 해야 할까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역시나 변함없이
절대로 어김없이
아빠를 욕 했다
다른 자녀들 모두 모시기 싫어서
어쩌다 가장 한심하게 여기던 자식
본인의 큰아들 집에서 살게 된 이 상황을
정말로 당신은 모르는 것일까
내가 모시겠다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내가 가장으로서 또는 자녀로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나는 어린 방관자였고
또 주제넘게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유세를 부리는 것도 절대 아니지만
나름 잘 지내던 부모 자식 간에도
한쪽 배우자가 돌아가셔
남은 한 분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자식의 집 이 아닌 요양원으로 모시는
여러 가정의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사회 분위기가
노인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나무라지 못하는 분위기인데
사이가 절대로 좋지 못했던 자식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아빠에 대한 고마움이 있을까
나와 의 대화에서
할아버지는 늘 아빠의 험담을 했다
난 화가 났다
아빠에게 고맙지도 않냐며
다른 자식 모두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가장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아들이
당신과 함께 지내기로 했는데
그것을 알고 있냐
고마움이라는 것을 모르냐
이 말이
정말 목구멍 앞까지 왔던 적 이 많았다
나와 할아버지가 서로 소리를 지르며
말다툼을 했었지만
끝내 그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어른에 대한 마지막 공경이라고 해야 할까
노쇄한 어르신에 대한 존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긁고 할퀴어 상처 내는 당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하면 맞을까
무엇인지 모를 당신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끝끝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적당히 좀 하셔라
여러 가지 상황을 말하며
나름의 아빠를 대변하고
당신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
당신 자식을 자식의 자녀에게 흉을 보는 게
정말 말이 되는 것 같냐면서
내가 아빠를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공경하기 원한다면 그런 말 더 이상 하지 말라며
여러 번 말을 했었지만
당신은 절대 듣지 않았다
네 아빠를 닮지 말아라
네 아빠가 학교 안 가고 돈 벌어와서
집에 보냈던 것처럼 말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 집안
이 가정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았던 것
네 아빠는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서 나의 아빠는
늘 모자랐고
늘 부족했고
늘 답답했고 한심했다
당신을 절대로 내가 아빠를 닮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를
그대로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