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생

함부로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by 김해난

입장 바꿔 생각해라

그 말대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고 해서

정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나로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봤을 때를 상상하는 것인데

상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상대의 삶 전부를 알지 못하는데

과연 함부로 입장 바꿔 생각해 봤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1932년생 나의 할아버지

나와는 거의 70년 차이가 난다

당신은 6.25를 실제로 겪었고

나는 6.25를 교과서에서 배웠다

과연 내가 함부로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려 시도했다는 말 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할아버지의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정도

좋았다 에 가깝지는 않았으나

나쁘지 않았다


주로 혼날 때가 많았지만

내 마음이 삐뚤어졌을 때에

좋지 않은 것들에만 집중해서 들여다봤을 때

그렇게 보였던 것이지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면

분명 좋았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 살아계셨을 때니까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서 여행을 다녀오셨고

다녀오시는 길에 내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로 사다 주셨다


할아버지 댁에 정말 자주 갔는데

굵은 파이프 가지고 훌라후프도 만들어 주셨고

본인이 직접 내 새총을 만들어 주셨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좋은 기억들 받은 기억들

분명 더 많이 있을 텐데

대부분의 것들은 잊고 살았다

아니

들여다보지 않았다


미울 때 화가 날 때

예전 억울했던 것들만 꺼냈으니까


써 내려가는 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대부분 내가 서운했던 것들을

나열하고 있다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아닌

시도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관계가 박살이 난 것일까


미워하는 마음에 힘을 빼고

서운하고 억울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보면

좋은 기억도 많은데

왜 나는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나빴다 보다는

할아버지를 대했던 내 마음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내 기분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 나누어진다


이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부족했던 것을 인지하고

상대가 아닌 상대를 대했던 내 마음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동안 시달렸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생각에 따라 시달렸다고 느꼈던 시간이 쌓였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바뀔 수가 있을까


노쇄하여 힘 빠진 당신

안타깝게 느껴지고 연민의 마음도 들지만

미운 것은 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대화를 시도하려고

말을 걸어보거나 잘 드시던 간식을 사다 드려도

탐탁지 않게 반응을 하실 때가 많았다

나름 다가갔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따가운데

누가 통증을 감수하며 다가가고 싶을까

집에 같이 있어도

혼자가 되셨던 것 같다


아무도 당신을 오라 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고

같은 집에 있어도 혼자라고 느끼는 당신이

왜 날카로워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네 아빠는 닮지 말라며

네 아빠는 잘못했다며

왜 그렇게 당신 자식을 욕할까 싶었는데

그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마도 당신은

아빠에게 기대 비슷한 것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듣고 봤던 당신의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잘했다 여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형편에서

아빠를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난 당신을 이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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