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와 슬레진저
나의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같은
나를 갉아먹는 열등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를 망가뜨리는 이 병균들은
언제부터 나를 괴롭혔을까
물어도 답을 찾지 못하는 이 물음을
나는 또다시 물어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사춘기를 제대로 장착하고 나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까
나는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허름한 우리 집은
그나마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숨길 수가 있었다
옷이나 신발 등 바로 보이는 것들에
집착 비슷한 것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옷이 가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안 사주셨던 것은 아닌데
내 욕심을 다 채워주시지는 못 했다
어쩌다 가끔 시내로 옷을 사러 가면
나는 언제 또 옷을 살 지 모른다는 마음에
눈에 보이는 예쁜 옷을 집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한 벌로 끝내지 못했다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고
이 옷도 예뻐 보였고 그래서 저 옷도 사고 싶고
엄마랑 둘이 갔을 때는 상대적으로 괜찮았지만
아빠와 함께 옷을 사러 갈 때면 잔뜩 토라져서 집으로 왔다
옷을 사주는 아빠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얼른 사고 집에 가야지 뭐 하고 있냐
옷이 그게 뭐냐 거지 같이 구멍 뚫린 것 보기 싫다
아빠는 늘 성질을 냈다
바지통을 풍덩한 것을 사야지
그렇게 통이 좁아 달라붙는 것을 어떻게 입냐
뭘 그렇게 고민하냐
하나만 사고 얼른 가지 뭐 하고 있냐며
정말로
기분 좋게 옷을 샀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차라리 교복을 입으면 마음이 편해질까
그것도 아니었다
내적인 문제로 시작된 마음의 결핍은
어떠한 외적인 요소들로
절대 가려지거나 나이질 수 없었다
교복에도 브랜드가 있었다
잘생긴 연예인이 광고하는 교복 브랜드와
시장에서 파는 잡표 교복은
미세하면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잡표 교복이 나는 싫었다
당시에 우리 학교 교복은
팔에 줄무늬가 있었는데
잡표 교복은 얇았고
브랜드 교복은 선이 굻었다
얇은 선을 가진 교복 입은 나도
위축되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없이 사는 나의 자격지심이었을까
또 교복 위에 입을 겉옷 브랜드는 얼마나 많은지
그때 사지 못한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이제 성인이 되어 색깔별로 잔뜩 사놓았다
막상 가지게 되면 별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그 옷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오히려 내 옆에 있는 집 잘 사는 놈들은
사춘기가 안 온 것인지 다른 곳에 사춘기가 온 것인지
딱히 외적인 것에 신경도 잘 안 쓰던데
없이 살다 보니까
없어 보이기 싫어서 그런지
되려 있어 보이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각자의 결핍이 다르듯 원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진 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시장에서 팔았던 브랜드 없는 신발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다녔다
사춘기가 되어보니 온리스타라고 적힌
내 짝퉁 컨버스와
올스타라고 적힌 옆반 친구의 컨버스가
구별이 되었다
가짜와 진짜의 차이를 느끼고 나서부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더 보이는 게 많아지고 나서부터
나의 열등감도 높아졌다
과거 내게 양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겨울엔 두꺼운 양말 여름은 얇은 양말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 무늬가 있는
귀여운 양말을 좋아했지만
구멍 나지 않았다면 그냥 신고 다니는 정도
하다 하다 이제는
옆에 있는 놈들 양말까지 눈에 보였다
저 놈은 나이키
이 놈은 아디다스
양말을 안 신은 놈은 그냥 자유로워 보였고
없어 보이지 않았는다
내 옆에 있는 친구는 퓨마
나와 같은 퓨마
내 양말은 퓨마였지만 퓨마가 아니었다
같은 호랑이와 치타 그 사이 어딘가 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상표는 슬레진져였다
친구의 양말은 퓨마였고
나의 양말은 슬레진져였다
옷이 어땠고
교복이 어떻고
신발이 양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 나이에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를
이제 와서 왜 늘어놓는가
어릴 적 없던 것을 기억하며
없어서 느꼈던 결핍이
지금에 와서도 치료가 되지 않았으니까
성인이 되어 내가 번 돈으로 내 옷을 살 수 있었을 때부터
왕창 몰아서 한 가지 옷을 색만 다르게 여러 벌 산다
비싼 옷을 사지도 못한다
같은 돈으로 싼 것 여러 벌 보다
차라리 비싼 옷 한 벌 제대로 사는 것이 나을 텐데
없이 살았던 본성 탓일까
늘 나는 싼 옷을 여러 벌
색깔별로 모아둔다
막상 입지도 않고 얼마 입지도 못하는데
어릴 적 옷 못 샀던 한 이 맺혀 그랬을까
신발도 모아 쟁여두고 옷도 모아 쟁여 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넌 돈 벌어서 과자만 사 먹냐
넌 돈 벌어서 옷만 사냐
웃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 하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웃으면서
예전에 옷 못 산 것이 한 맺혀 그런다며
반박 아닌 반박을 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내가 저녁밥 다 되기를 식탁에 앉아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옷을 보고 있었는데
아빠가 또 옷을 사려고 하냐며
넌 돈 벌어서 다 옷에 갖다 쓴다 한소리 하시길래
예전에 옷 못 샀던 게 한이 맺혀 그런다며
서로 웃으며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한참 식사를 하던 중에
아빠가 내게 작고 민망한 듯한 목소리로
미안해
내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다시 물었더니
아빠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그때는 그렇게 어려웠다며
내게 사과를 했다
처음이었다
아빠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던 것이
표현이 투박하고 서툰 아빠가 내게
과거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아빠도 옷을 사고 싶다는 나에게
옷을 사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괜스레 화를 내었던 것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사과를 들으니까
마음이 좋지 못했다
왜 그렇게 옷을 사냐는 아빠에게
어릴 때 못 산 옷에 한이 맺혀 그런다는 이 대화를
몇 번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안 사주기는 뭘 안 사줬냐
못 사기는 뭘 못 샀냐 하며
서로 장난스럽게 웃어넘겼으니
나도 더 이상 상처가 아니며
아빠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아빠의 마음이
불편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괜찮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마음은
괜찮은 게 아니었나 보다
아빠도 나도
이제는 괜찮아졌으니
사과도 할 수 있던 것 인지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사과를 못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옷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없다 없다 말했지만
굶었던 적 없고 벗고 살았던 적 없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조심스러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시장 자표 신는다며 시장 자표 교복 입는다며
얼마 차이 안 나는데 왜 브랜드 교복 안 사주며 떼를 쓸 때
아빠는 옷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엄마는 고모가 버리고 간 옷 이모가 준 옷을 입고 지냈다
당신들 눈에 더 많이 보였을 부족한 것들인데
애써 왜면 했던 것일까
그 당시에도 그 사정을 어느 정도 알았지만
난 당장의 내가 더 중요했었다
그동안 혼자 컸던 것처럼 건방 떨었는데
나의 결핍 내가 없던 것에만 집중했었는데
당신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지
아니
당신들에게 내가 없었다면
더 편하고 여유롭게 본인의 이름으로 된 삶을 살았을 텐데
생각 없이 말했던
나의 농담이 반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