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된 시점에서 봤던
명절이 되면
엄마는 날카로워진다
친척들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누가 얼마나 올지 모르기에
음식 준비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언제 올지 대비를 해야 하기에
엄마는 예민해진다
먼저 연락을 하면 되지 않냐
맞는 말이다
먼저 연락을 해보면 될 텐데
그것 또한 속 사정이 있다
우리 집은 큰 집이다
엄마도 아빠도 각자의 집에 첫째이고
친할아버지도 우리 집에 계신다
외가 조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어른은 친할아버지 한 분만 남아계신다
과거 친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에
친할머니가 덜 아프셨을 때에는
종갓집에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준비했었다
제사도 없는데
교회 다니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음식을
여러 가지의 종류로 준비했었다
덕분에 내 기억은 풍성했지만
엄마는 지쳤을 것이다
친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거의 우리 집에 살다시피 하셨을 때부터
명절은 옆에 있는 나도 고달팠다
엄마가 바짝 날이 서 있는 탓에
나도 불편했다
외가 식구들도 아니고
다 아빠 동생들인데
이럴 때 아빠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주면 좋으련만
아빠는 애먼 엄마만 잡았다
네가 왜 그렇게 예민하냐
그냥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하면 되지 왜 그러냐
본인이 본인 동생들에게
너 언제 내려올 거냐
누구누구 내려올 거냐
전화 한번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의 회피로 엄마의 고생에 대한
피해 까지는 과한 것 같고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어른들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명절 전에 전화를 돌렸다
작은 아빠
막내 작은 아빠
큰고모 막내고모
언제 오시냐 이번엔 친척형들 내려오냐 등
크게 도움 된 것은 없지만
뭐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서지 않는 아빠가 답답하면
엄마가 전화를 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나도 깊게 알고 싶지 않았고
별것 아니지만 이 피곤하고 피 말리는 상황에
끼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추측에는
과거 고모가 외할머니 장례식에 와서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잘 하라며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데
그 마음을 넌 모를 것이라며 잘하라고 했었는데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의 엄마 장례식에 와서
남의 아빠에게 잘하라는 말이
상황에 맞는 말인가 싶었고
당시 그 대화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었다
이후 기분이 상했던 엄마가 고모에게
그렇게 못 미더우면 모시고 가라 이야기했었는데
지금 사는 집이 할어버지가 원래 살던 집이니
노인네 모시기 싫으면
우리가 나가서 살아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쉬워 보이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앞뒤 상황을 모르면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특히나 가족사는 더더욱
엄마도 상처를 받아서 연락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내가 어려서부터
나에게 네 아빠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본인 자식의 자식에게 본인 자식이 못났다고 말하는 아비는
도대체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싶었는데
당신 자식이 못났다며 닮지 말라는 말을 새끼에게도 하는데
그 동생들 앞에서는 얼마나 망신을 줬을까 싶었다
할아버지는 늘 아빠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밝은 분위기에서
아빠가 농담을 하면
너는 형이 되어서 진중하게 체면 차려야지
실없는 소리 한다며 면박을 줬다
다 늙어 힘없어진 노인네가 그 정도인데
젊었을 때에는 어땠을까
아빠의 표현은 서툴고 투박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도 아빠에게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내가 듣고 봤던 것만으로 판단했을 때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했던 것처럼
아빠가 나에게 똑같이 행동했다면
나 같으면 아빠를 안 보고 살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모시는 아빠를 보면
바보 같은 것인지 착한 효자인 것인지
아빠의 심정은 어떤 상태 일까
나라는 인간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이 짧은 글에서 다 풀어낼 수 없지만
아빠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나는 답답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이었던
그 낮은 자존감과 여린 마음을 내가 고스란히 닮았다
장남이라고 기를 세워주지는 못해도
무시당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아빠가 이렇게 동생들 앞에서 말을 못 할까 싶고
그랬다면 명절에 전화해서 언제 올 거냐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할 정도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싶다가
아빠가 나서지 못하니 엄마가 고된 상황이 생기고
엄마도 상처를 받아서 쉽사리 먼저 연락하고 싶지 않을 테고
난 그냥 나만 생각하며 철없이 살고 싶은데
들여다보면 깊은 속사정과 각자의 사정없는 집안 없을 테지만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나 싶을 정도의 우리 집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졌었다
할아버지가 죽네사네 했던 재작년 여름에도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다들 신경 쓰는 것 같았지만
쓰러져도 다시 살아나는 할아버지를 보며
다들 결국 평소처럼 무관심해졌다
각자의 삶이 바쁘고 어렵고 힘들다면서
명절에 엄마는 참 불쌍했었다
단어가 조금 불편하고 거슬리지만
달리 대체할 단어가 없었다
명절에 엄마는 참 불쌍했었다
외갓집은 제대로 가본 적 도 없는데
항상 명절 준비하느라 고생하고
음식 만들 때 도와주면 좋으련만
본인 귀찮은 것 절대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아빠는
음식 만들어두면 옆에 와서 안주삼아 소주 잡숫고
다 드시면 자러 가시고
나라도 도와줬으면 싶었을 텐데
나라는 인간도 참 인간이 덜 되어서 놀기 바빴다
올해의 명절은 그래도 괜찮았다
아빠도 어디 나가지 않고 엄마와 음식을 같이 만들었고
이제 주방의 실권을 엄마가 제대로 잡아서
음식 가짓수도 많이 줄여서 덜 고달팠을 것이고
어차피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었을 것이다
이번 명절은 정말로
나름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다
왜 나름 그래도 인가
어디 문제가 아예 없을 수가 있나
명절만 되면 할아버지는 아파진다
밥도 안 먹고 대답도 안 하고 성질을 부린다
우리 집 전통
예전부터 그랬다
올해도 식구들이 모였는데
대화의 주제가 할아버지의 건강이 아니었고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았기에
입이 나온 할아버지는 잔뜩 심술을 부리며
방으로 혼자 들어가셨다
지팡이로 땅을 퍽퍽 때리며
다들 지친 것인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버릇없고 주제넘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싶은데
나이가 들면 참
어려지는 것 같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다
다음 주 연재 글에서는
할아버지와 처음 살게 된 이야기를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