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손

오냐오냐 귀한 늦둥이 외동아들

by 김해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곳과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내가 지내는 곳의 거리는

시내버스로 한 시간 전후로 걸렸다

정말 자주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자주 오셨던 것 같다


주일에 교회에 함께 가기 위해서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새벽에

우리 집에 오셨고

어떤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 댁에 갔다


외가를 갔던 기억은 많지 않은데

찬가에 갔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할아버지에게

미운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와 어린 내가 티격태격하다가

할아버지가 달래준 적도 있고

나에게 나무로 새총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

어디 효도관광 다녀오시면

장난감 자동차도 사다 주셨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좋을 수 만 있을까

좋은 기억도 그렇지 못한 기억도 있다

이제 와서 늘어놓으면 뭐 하나 싶지만

지난주에

할아버지와의 기억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보겠다고

말을 해둔 게 있어서

잊고 지냈던 기억의 일부분을 꺼내보려 한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원래부터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양반 혹은 선비 아같은 이미지에

어디 시골 훈장님 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내가 뛰어다니거나 어른들 앞에서

큰 소리로 웃거나 먹을 때 흘리면

째려보며 한소리 하시는 정도

딱 옛날 세대 어른 갔았다고 해야 하나


언제부터 미워졌을까

글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빠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아빠를 챙겼고

막내 작은 아빠네 자식들은 예뻐했으나

큰아들 자식인 나는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으셨다는데

어린 나의 기억에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지팡이 부러뜨렸을 때와

친척 형이 무엇인가 잘못했을 때

즉 어른에게 혼나야 했을 상황의 결과가 달랐다는데

어느 정도 수긍은 된다


기억도 제대로 없는 그것들이 쌓여

그렇게 미워졌을까

그것은 아니다


나 초등학교 4학년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점점 이상해졌다

괜히 당신 자식들에게 화를 내고

오랜 기간 아팠던 할머니의 소천을

아빠 탓을 하고


내가 할아버지 댁에 있었고

아빠가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서

어디를 데려다 드렸는데

왜 뭐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너희 집에 다시는 안 가 라며

아빠에게 소리를 쳤다


그 이후 몇 달 동안 아빠와 할아버지의 왕래는 없었고

엄마와 나는 주말마다 할아버지 댁에 갔다

아마 엄마의 중재였을까

속상했지만 자식으로서의 아빠의 도리였을까


그 어느 주말

엄마와 나는 할아버지댁에 있었고

아빠가 와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나에게 잠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라 했을 때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가긴 어딜 가 앉아있어라고 했다

그냥 아빠의 말에 딴지를 걸어보려는 것일까

아빠가 혼이 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빠가 못마땅했고 아빠가 한심했으며

동네사람들은 아빠의 욕을 했다

할아버지의 말


아빠는 술을 끊지 않았고 담배도 열심히 피웠다

명절이 되면 고모부와 아빠만 술을 드셨는데

그것을 보는 할아버지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교회 나가서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였던 것일까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일화를 가지고

이 글을 써내려 가는 데에

그동안의 아빠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아빠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아빠도 할아버지에 대해서 좋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아빠가 답답했고 할아버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나에게 할아버지도 나에게

과거 있던 그들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할아버지가 나에게 아빠 험담을 하고

아빠는 아빠의 억울한 입장에서의 해명이었다


어쩌다 저 둘의 사이가 저렇게 되었을까 싶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해가 되었다


나도 언제부터 할아버지가 미웠을까

내 기억 가장 어린 시절로 들어가 봐도

당시 그날 그 시간부터 준비 시작 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엉킬 대로 엉킨 듯 보이는 저 두 분의 관계도

아마 같은 맥락 아닐까

서로 처음부터 대화를 했었다면

자신을 따라주는 아들

서운함을 들어주는 아빠

서로가 받고 싶은 것을 받았다면

지금 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설명할 수 없지만 이해는 된다

답답했지만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가

왜 아빠는 회피하고 침묵했는지


할아버지가 예뻐하는 다른 자식들은

할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

혼자 지내시고 병원에 갈 상황이 더 많아지게 되어

내가 중학교2학년 될 때부터 함께 지냈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도 아빠를 싫어했고

아빠와 할아버지 사이가 살갑지 않았기에

당연히 우리 집으로 오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제들이 떠넘기듯

가까운 곳에 살고 원래 지내던 곳인데

다른 지역으로 모시는 것이 어렵다며

큰아들 집으로 모시는 게 났지 않냐

집에 방도 없었지만

나는 학교 갔다가 공부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는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며

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밀어 넣었다


싫으면 싫다 안된다 말을 제대로 했으면 될 텐데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상황에 대한 어려움과 고생은

고스란히 나와 엄마에게 돌아왔다


할아버지와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정말 불편함이 많았다

새벽 4시가 되면 할아버지는 방에 불을 켰고

찬송과 성경암송으로 나의 잠을 깨워주셨다

늘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는 나는 성질이 났지만

불편했던 것이지 할아버지가 밉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생활에서 부딪혔다

일단 티브이 리모컨은 무조건 할아버지의 것이었다

채널도 몇 개 안 나오는데

그래도 보고 싶은 것 보면 좋으련만

본인이 보시고 싶은 것 만 보시다가

밤이 되어 티브이를 켜둔 상태로 잠에 드시면

리모컨을 만질 수 없으니

티브이 버튼을 직접 눌러 티브이를 끄면

리모컨을 내게 던졌던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방 구조가 암방 및 거실 그곳에 나와 할아버지가 지내고

문 밖을 나가서 건넌방이 하나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지냈다

할아버지는 침대를 쓰시고 나는 바닥에서 이불을 폈다 접었다 하며 지냈는데

한 번은 집에 왔을 때 할아버지 침대 위에 교복을 던져두고 바닥에서 뒹굴다가

늦게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내 얼굴에 교복을 던진 적도 있었고

내 생일에 친구들이 선물해 준 케이크를

나는 구경도 못하고 할아버지가 가지고 나가셨던 적도 있다

물론 엄마가 할아버지 기분을 풀어드린다며 들려 보냈을 테지만

내가 받은 선물을 내게 이야기하지 않고

가져간 것에 화가 났던 적도 있다


밖에 나가면 친척들 오면

늦둥이 외아들 얼마나 오냐오냐 컸냐는 말에 치가 떨렸다

우리 집에서 나는 늘 내가 우선이었던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우선이었고

할아버지가 우선이었고

나와 엄마는 늘 뒷전이었는데

앞뒤 사정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오냐오냐 커서 궂은일 안 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내서 버릇없을 것이라 단정 지었다


더 어렵게 지냈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더 편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모두 문제와 상황도 다르지만

다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르며 결핍도 다르지 않겠나

왜 내가 편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내 마음고생을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그들이 싫었다


평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본인 삶에 걸리적거릴 때 말고는

정말 괘씸하고 괘씸할 때는

누가 우리 집에 올 때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찾는 것이었다

공자 같은 우리 할아버지

말은 또 얼마나 잘하시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에 나는 예쁨 받은 장손으로 보였고

그 모습이 아니꼬워 심술이 났던 나는

오냐오냐 커서 버릇없는 애로 보였을 것이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해 미웠지만 미웠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경멸하게 된 이유는

내게 아빠를 닮지 말라는 말을 할 때였다

그 말의 기억들이 모여 미움이 되었고

나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괜찮다며 접어두었던 이 감정과 기억을

괜히 끄집어내는 것이 맞을까 싶다

다시 또 교만하고 정죄하며 미워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진 것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모든 엉킨 실타래를 다 풀어내어 살 수는 없지만

이 응어리는 잘라내던가 풀어내어야

내가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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