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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ul 01. 2018

내 인생 첫 번째 트라우마

디즈니 영화에서 무서움을 배웠어요....

진짜 많이 컸다!
이제 어린이네 어린이.


내 친구 중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 그녀에겐 이제 세 살이 된 아이가 있다. 가장 먼저 결혼한데다 가장 먼저 낳은 조카라서 주위 이모, 삼촌들에게도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아이.


오랜만에 친구와 마주 앉아 점심(다운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근황을 나누며 최근에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그 여행에서 아이의 애착 인형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당황했지만 아이에겐 인형이 아파 먼저 집에 갔다고 설명하고, 새로운 인형을 사주기 위해 디즈니 스토어에 들어갔단다.


아이가 고른 인형은 신데렐라. 3박 4일의 여행 동안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행 사진에 아이가 들고 있던 인형의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친구가 덧붙인 말, “근데 영화는 백설공주만 보여줘.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애들 동화가 생각보다 무서운 장면이 많더라구.” 그 얘길 듣자마자 떠오르는 내 인생 첫 번째 트라우마.


우리 엄마는 지금까지도 문화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 부분에선 부족함 없이 보고 즐겼던 기억이 있다. 딱 하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지금도 지울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디즈니 영화 중 “알라딘”이다.


자파 사진을 찾긴 무서우니까 지니로 대체해서 올리는 중


대여섯살쯤 되었을 때였나, 영화관 큰 스크린 가득 빨간색 노을이 지고 자파가 떠오르는 장면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장면을 보고 생전 잘 울지 않던 나는 영화관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당장 나가야 한다며 영화관을 나갔다 온 거 같은 기억도 나는데 어째서인지 알라딘의 결말까지 알고있다. 영화관에서 못 본 걸 집에 와서 봤나?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장면을 보고 온 다음부터는 한동안 밤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화장실 안쪽 벽면 가득 빨갛게 불타는 듯한 장면이 그려지면서 자파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거든. 어렸을 땐 스위치를 누를 시간이 없어 불을 안켜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더 했던 거 같은데, 한동안 눈을 질끈 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도 이 버릇은 나이가 들고도 계속 되었는데, 그게 어디든 화장실에 들어갈 때 불이 꺼져있으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벌써 20년도 훨씬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알라딘” 영화는 다시 본 적이 없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황급히 돌렸던 적도 있다.



어렸을 땐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동화인데, 다 크고 나서 다시 보니 이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걸 동화라고 내놨단 말이야? 하는 이야기도 많다. 사실 디즈니에서 각색한 대부분의 동화들이 그렇다. 내가 겨울왕국을 보고 나서 언니로써의 엘사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쩌면 어른들은 동화로 각색했지만 이미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해선 혹독한 인생의 쓴 맛을 봐야만 한다는 교훈을 모두 담은 것마냥. 그나저나 다시 떠올려봐도 자파의 표정은 온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무섭네. 으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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