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한탄하는 사이 있다. 그의 인생에 귀중한 가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시간은 그리 황급하게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
10대에는 시속 10km로 인생이 흘러가고, 20대는 20km, 30대는 30km, 50, 60대에는 5~60km로 인생이 흘러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건 경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꽤나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참 안 갔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가 지나있고, 또 정신 차리고 보면 금요일이 되어있고 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죠.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데 왜 특정 세대에게 더 빠르게 흐른다고 하는 걸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10대는 바쁩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죠. 20~30대도 바쁩니다.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취업준비에 결혼, 육아까지도 해야 하니까요. 4~50대부터는 덜 바빠집니다. 아이들은 클 만큼 컸고, 공부도 안 해도 되며, 놀 것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냥 해야 할 '일'만 하면 되고 덜 바쁜데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이상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까요? 10대에는 공부도 중요하고 같이 노는 친구들도 소중합니다. 20대에는 취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공부도 중요하고 미래를 함께할 연인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4~50대 이상에게는 공부도, 친구도, 배우자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이미 다 해봐서, 이미 내 것이어서, 혹은 내 것이 아니어서. 소중한 것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소중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꿀벌처럼 맴맴 돌며 살게 됩니다. 바쁘죠. 꿀벌이 꽃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듯이.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뭐 하나 진중하게 하지 못하고 계속 맴맴 돌며 날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새해가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끝나갑니다. 사실 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3개월이었습니다. 글쓰기도 중요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현업도 바빴거든요. 그러다 보니 책과 키보드 그리고 사무실에 맴맴 돌면서 바쁘게만 움직인 3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어요. 아직은 30대 후반이라 39km/h로 간다고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빨리 간 것 같습니다. 눈 깜짝할 새 3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바쁘게 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는 안타까운 3달이었습니다.
반면에 2024년은 저에게 가장 선명하게 통째로 기억에 남는 한 해였습니다. 현업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책과 키보드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책을 읽고 제가 창조할 수 있는 책을 한 권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이 통째로 기억에 납니다. 1~2월에는 초안을 쓰고, 3월에는 투고를 했으며 4~7월에는 퇴고를 하고, 8월에는 디자인 그리고 9월에는 출간을 했었죠. 10월에 누렸던 출간의 기쁨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바빴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많은 알찬 1년이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안타깝기만 할 것인지, 혹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알찬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몰입의 정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몰입을 해도 시간은 빨리 가고,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만 해도 시간은 빨리 갑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난 후의 그 시간에 대한 나의 감정은 큰 차이가 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의 허무함이 남을 것인지, 보람이 남을 것인지는 몰입의 유무가 결정합니다.
너무 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입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사랑도 잘해야 하고, 외모도 잘 가꿔야 하며, 때에 맞춰 승진도 잘해야 한다고 이 세상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우리에게 노력의 분산을 강요합니다. 그런 세상에 길들여져 살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몰입하는 방법을 잃어버립니다. 몰입도 습관이거든요. 습관을 잃은 채로 나이가 들다 보니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이 빠른 시간을 허무함으로 채우는 것이죠. 그래서 '하는 것도 없이 바쁜' 세상이 되어갑니다. 사실 하는 것도 없이 바쁜 세상을 만든 건 나와 나의 습관인데 말이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것, 도파민이 흘러나오는 것,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들만 하는 삶을 살다 보면 속도는 빠르지만 목적지가 없는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의 빠름만 탓하는 삶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몰입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몰입을 통해서 나만의 알찬 것을 만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내' 시간을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만큼 보람찬 것은 없으니까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탄만 하는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주체적으로 창조하는 사람들은 한탄만 하지 않습니다. 몰입 때문에 시간은 빨리 흘렀지만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충만함으로 채웁니다. 꽉 찬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죠.
나이가 들수록 이런 몰입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굳이 몰입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큰 문제는 없으니까요. 생존과 몰입이 직결되지는 않으니까요. 먹고살려면 몰입보다는 남들이 몰입하기를 원하는 무언가를 맴맴 도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남들이 몰입하기를 원하는 것을 맴맴 도는 것이 바로 레버리지 당하는 삶이기도 하죠.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 그게 바로 레버리지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몰입할 만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남들의 인생에 몰입해서 내 인생을 빼앗기기 전에 내 인생에 몰입하고 시성비를 찾도록 말이죠.
여러분의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10년 후의 인생의 시간도 느리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노력으로 채우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여러분만의 무언가를 창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공허하게 빨리 가지 않을 겁니다. 꽉 차게 흘러갈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꽉 차게 보낸 시간들은 분명 내 인생을 짙은 인생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강물처럼 흘려보내는 인생이 아닌 댐처럼 막아두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 댐에 가둬둔 물을 통해서 나만의 힘을 만드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드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시간을 허망하게 빨리 흘러가지 않도록 도와줄 겁니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네... 난 뭐 했나...'라고 이야기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적어도 '무언가'는 했을 테니까요. 그 '무언가'를 통해 고통스럽지 않은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