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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가지마!" 가야만 하는 아빠는 또 운다...

아이의 질문

by 밍작가 Apr 08. 2025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두고 이혼을 한 지 2년. 다른 아이보다 말이 빠른 우리 공주는 어느새 숫자도 1부터 10까지 셀 줄 알고, 각종 동물 이름도 말하고, 심지어는(?) 어떤 동물이 파충류고 포유류 인지도 안다. 아빠 이름도 말할 수 있고, 가끔 본인이 불리하면 말도 안 되는 변명도 할 줄 아는 귀여운 공주로 자라고 있다. 아 물론 말로 하는 떼도 잘 쓴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아빠 이거 드세요!"라고 이야기하며 젓가락으로 찍어서 떠먹여 주기도 한다. 하필 그게 쌈장이라 속이 쓰릴 정도로 쌈장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또래에 비해서 말을 잘하는 것 같고, 잘 커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도 참 다행이다. 


이렇게 쑥쑥 잘 크고 있는 공주지만, 아빠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단둘이 나가서 키즈카페도 가고, 전시회도 다니고 했다. 하지만 세돌이 되었을 때쯤, 언어와 생각의 크기와 비례한 의사표현이 확실해졌고, 아빠와 단둘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싫다'라고 명확히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의사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으며, 공주의 마음속에는 아빠라는 부분이 굉장히 적다는 의미이고, 결국 '별로'인 아빠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별로인 아빠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별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양육자가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있기에. 최악은 아니고 적당히 별로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공주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가지마!!! 나랑 계속 놀자~"


순간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꽤나 많이 울었었다. 부부가 사랑해서 태어난 소중한 아이이지만, 부부가 잘 사랑하지 못해서 다른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평범한 '아빠, 엄마'를 선물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많이 울었다. 데려다주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자주 울었고, 키즈카페에서 아이가 방방을 뛸 때도 박자에 맞춰 울었었다. 얼마 전에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도 공주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슬픔의 포인트는 참 많았지만, 남들과 다른 눈물 포인트는, 양관식은 둘째치고 학씨 아저씨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슬펐다. 

학씨아저씨도 결국 딸을 위해 한방을 하지 않던가!

이렇게 '별로'인 아빠는 사랑스러운 공주에게 좋은 세상을 선물하지 못했으며, 이 감정은 '죄책감'이 되어서 항상 마음속에 뿌리 박혀 자리 잡고 있다. 조금만 톡 건드려도 이 뿌리는 저 밑으로 뿌리를 파고 내려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다. 



(키즈카페에 이렇게 앉아서 '푸른세상 만들기'라는 노래를 듣는데, 이걸 들으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푸른 하늘을 만들어줘요. 새하얀 뭉게구름 두둥실 예쁜 새 모여 노래 부르는 저 파란 숲속 나라도 만들어줘요. 아빠가 만들어 주시나요. 엄마가 만들어 주실까. 아니야 우리가 해야하죠. 아름다운 푸른 세상 만들기 우리가 푸른 씨앗 되어 세상 만들어요"
(아빠가 푸른 세상을 못 만들어주니 우리가 해야 한다는 가사.. 찔리는 아빠는 또 울었다.)

주말마다 우리 형제와 재밌게 놀아주지 않았어도,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시진 않으셨어도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기준'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함의 감정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 나니, 나는 과연 공주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으로 남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 나를 넣어 둘 감정의 공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가끔 들기도 한다. 


"아빠! 안 가면 안 돼?"라는 질문은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으니 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테니까, 마음속에 아빠의 공간이 조금은 생겼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질문의 연속이 결국 세상을 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몇 년이 지나고 세상을 조금 더 알면 몇 단계 더 나아간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엄마와 아빠의 세상을 알아갈지도... 그리고 그 답변을 언젠가는 해줘야 한다.


"엄마랑 아빠는 왜 이혼했어?"


이혼 후의 인생은 그냥 인생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해 내 삶으로 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과정 속에서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결과로써 이유를 증명해 내는 삶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말로 얼버무려도, 대충 살고 실패한 삶을 살면, '이래서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구나..'라고 생각할 테고, 그래도 잘 살아야 '아빠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힘내서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이라도 들 테니까. 인생이 버거워서 가끔은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게 하는 의외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혼을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이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아이도 납득가능한 이유인지, 그리고 지금은 당장 어렵더라도 훗날 이해를 해줄 만한 이유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혼이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으면 아이보다는 내 삶의 '이유'가 우선순위가 되기 쉽다. 그래서 잊어버리기 쉽지만, 아이에게는 설명해 줄 이유가 꼭 있어야 한다. 


아이가 그 누구보다 엄마 아빠에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아이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기 위해서.

아이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 부정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설명해 줄 이유가 빈약하거나 애매하다면 그 헤어짐의 충동은 순간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고 있다 보면 그 바람은 또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 때문에' 살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아이 때문에 살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서 이혼하는 황혼이혼의 현실을 볼 때, 아이 때문에'만' 사는 것 또한 꽤나 큰 고통이다. 적어도 헤어지기 전에 해볼 수 있는 것, 고민해 볼 고민은 다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고민해도 나중에 아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확률이 크니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에게 평범함을 선물해주지 못하는 것도 꽤나 큰 고민이니까. 


양육이든, 비양육이든 이혼을 하고 건전한 관계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분들을 존경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본인이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으니까. 부부간의 사랑은 놓쳤을지 몰라도 가장 순수한 부모로서의 사랑은 놓치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니까. 이 책임감은 처음 가졌던 죄책감을 점점 지워버릴 테고, 항상 함께하진 않더라도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더 열심히, 굳세게 살아야겠다.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죄책감을 점점 희석시키기 위해서, 죄책감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많이 주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 


이제 거의 매번 공주는 가려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빠 가지마!"

"에구 아빠 가야 돼~ 열심히 일해서 공주 맛있는 거 사줘야 하니까~"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가야 해. 하지만 지금 같이 못 있더라도 너무 아쉬워 마. 나중에 공주가 세상을 알아갈 때쯤,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얼굴 보며 주는 사랑은 못 주더라도, 

아빠도 더 성장해서 공주에게 큰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게.)


"사랑해 공주~ 10밤 자고 봐! 밥 잘 먹고, 엄마 말 잘 듣고,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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