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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Jun 10. 2024

면교 가는 길 : 엄마랑 아빠랑

'24. 6. 8. (토)

아빠하고 단 둘이 나가지 않으려는 공주. 아빠랑 나가기만 하면, 엄마한테 가겠다고 이야기하며 울어대는 공주. 이 공주를 위해서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더 이상 면접교섭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다 보니, 더더욱 무언가를 해야 했다. 


아빠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해서, 이혼을 하고 처음으로 전 사람과 같이 공주를 데리고 나갔다. 같이 외출을 마지막으로 한 게 아마도 재작년 말이었을 테니, 1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공주가 돌이 안되었을 때 즈음.. 크게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같이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웃으며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서. 물론 엄마가 1등이긴 하지만, 확실한 2등(?)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토요일 아침 참 비가 많이 왔다. 그 비를 뚫고 다산으로 향했다. 아빠와 단둘이 갈 때는, 도착만 하면 "엄만테 갈래!"를 외쳐대던 다산. 도착하더니, 아울렛 중앙광장에 있는 강아지 조형물로 쪼르르 달려가서는 이리저리 오르면서 노는 모습이 참 신나 보인다. 


할미, 할비, 엄마랑 가서는 유모차를 빌려도 절대 앉지 않겠다고 하더니, 유모차에도 순순히 잘 앉는 공주. 확실히 엄마와 함께 나와서 그런지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매번 엄마와 외할아버지. 아빠와 할머니 이렇게만 다니다가, 공주의 인식 속에서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공주에게도 꽤나 좋았을 것이다. 이젠 공주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다른 아기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볼 테니까. 거기서 오는 '이상함'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공주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먹었다. 그리고 공주의 낮잠 후에는 집 앞에 있는 키즈카페에 가서 아주 신나게 놀았다. 그 좋아하던 키즈카페에서도 최근에 잘 놀지 않아서 걱정을 했었는데, 아주 신나게 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존재가 주는 힘을 느낀다. 


엄마와 아빠. '부모'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개념으로 통칭되긴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정서적으로 해줄 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내가 엄마처럼 해주지 못하고, 그 사람이 나처럼 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따로 분리해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분리해 둔 것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치 또한 참 다르다.

키즈카페에서 돌아오는 길, 공주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 그냥 흔한 곰 세 마리, 개구리 노래가 아닌 공주의 자작곡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 있는 공주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하면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노래도 지어 부르는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커지겠구나.' 


전 사람과는 이제 예전처럼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우지는 않는다. 싸울 것도 없다. 정리할 건 다 정리했고, 나는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노력하고 있고, 공주를 위해 나름의 노력과 희생을 한다. 물론 워낙 높은 기준을 가진 그 사람의 눈에는 성에 안찰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크게 갈등은 없다. 그냥 공주가 건강하기만 바라는 '부', '모'의 마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어느 정도 같이 시간을 보내야 공주가 아빠와만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질지는 모르겠다. 매일 붙어사는 것도 아니니 시간이 조금은 걸리겠지. 그래도 이런 솔직히 불편한 '부', '모'의 노력이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와 함께 나가지 않아도, 아빠와만 시간을 보내도 공주가 행복하고 즐겁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콧노래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엄마, 아빠가 공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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