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s Feb 28. 2024

2) 가출청소년, 아이는 부모의 거울

2) 가출청소년, 아이는 부모의 거울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가공한 글입니다.)


여름날 토요일 오후,

나는 쌓여있는 실종신고 사건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기지개를 켰다.

잠시 뒤.....

긴급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실종수사팀 사무실로 무전이 들어왔다.


112 No. 0720 "고등학생 딸이 사라졌다. 납치된 것 아니냐?"


나와 동료 수사관은 현장으로 이동했다.


신고자인 부모의 말을 따르면, 딸이 학원에서 수업 중 잠시 밖을 나갔는데 이후 돌아오지 않았고 최근 불량스러운 남자가 집 근처에서 배회했다. 때문에 납치가 의심된다고 하였다.


현장은 무용학원이다. 해당 여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예체능 입시 준비 학생이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나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나는 범죄 피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발생현장을 유심히 살펴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실종자의 친구가 내게 다가와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라나리(실종여학생, 가명)는 최근 약간 들떠있는 모습이었어요. 쉬는 시간에 잠깐 나갔는데 휴대전화도 꺼놓고 지금까지 이렇네요." 친구는 비교적 평온하게 말했다.


나는 추적수사를 위해 옷차림, 머리 모양 등 질문했다.


"흰색 반팔 상의, 검정 타이즈 하의를 입고 있었어요." (그때 실종자 부모인 신고자가 학원에 왔다.)


실종자의 부(父)와 모(母)는 번갈아 나에게 말했다.

 "수사관님! 빨리 안 찾고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나가서 찾아야지요!"


나는 수사진행 방향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부모는 갑자기 "아오!"라는 괴성을 렀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빨리 위치추적하고 CCTV영상 보고 찾으라고!"


나는 이들의 태도에 짜증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정을 억제하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영화와 다르게 경찰관에게 이런 것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종자의 부모 심정은 이해되나 사람과 사람 사이는 기본 예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입법자 들이여, 제발 국민 법감정을 헤아려 법을 제정하고 개정 좀 해주시라. 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내가 감정의 배설물 통이 되어야 하는가...'


무용학원 건물의 앞은 4차선 도로가 있고 뒤편에는 이면도로이다. 나는 건물 앞쪽을 살펴보았다.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미어캣처럼 머리를 들고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내밀고 주위를 둘러봤다. CCTV가 설치된 곳은 없었다.


건물 뒤편으로 갔다. 이면도로 사이로 빌라가 일렬로 줄 맞추어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길가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어르신, 경찰관입니다. 혹시 30분 전 여기 건물에서 나온 여자 보신 적 있으세요? 머리를 위로 묶고 날씬한데."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형사님이신가?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좀 거시기혀. 몇 명 봤어.", "한 여자는 다 보이게 바지 입고."


나는 할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네? 다 보이게 바지를 입다니요?"

할머니는 "거 있잖아, 민망하게 엉덩이 다 보이게 입는 옷." 쯧쯧


나는 할머니가 레깅스 바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그녀가 뛰어가더니 흰색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고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인사 후 나는 '다행히 납치 사건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끝은 아니다.


나리의 부모는 딸이 자발적으로 어디론가 갔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여성 또는 미성년 학생이 관련된 실종사건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 실종수사팀의  불문율이다.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종자가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절차를 진행했다.

전원 꺼짐 전 마지막 위치가 통신기지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 위치는 약 1Km 반경을 의미하므로 현재 상황에서는 도움 되지 못했다.


차량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정했다.

골목과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관리자의 협조를 받아 열람했다.

하지만 어떠한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거리의 네온 간판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낮에 봤던 나리의 학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까 봤던 경찰관 아저씨야. 혹시 나리로부터 연락 온 것 없니? 메시지든, 전화든."

돌아오는 대답은 "없어요."였다. 전화를 끊었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분이 흘렀을까.....


실종수사팀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나리의 아버지가 전화한 것이다.


"확인되는 것 있습니까?" 나는 숨김없이 추적 수사한 내용을 말했다.


수화기 너머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는 이야기죠?" , "내 딸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이야." 그러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의 날카로운 어투와 두꺼운 목소리는 나의 신경을 긁었다.


나리의 부모가 낮에 보였던 행동과 말, 그리고 예의 없는 전화 통화,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했다.


결국,

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XX! 이게 경찰관 잘못이야!", "XXXX!"

업무 중이 있던 동료가 깜짝 놀라서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몸의 피곤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피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씩씩거리며 퇴근했다.


경찰관은 수색, 검거, 추적, 법률 적용 및 절차를 준수하며 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찰활동을 하는 전문가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신고자에게 반문하고 싶다. '본인이 직업으로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훈수하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뒤척이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경찰서로 출근했다.

계속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팀장에게 사건을 보고 다. 그리고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하여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보통 국민들이 알고 있는 통화기록 등을 말한다.)


이는 영장이 필요한 강제수사에 해당한다.

'미성년자인 여성이 연락두절 되어 소재를 확인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범죄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만들어 입건하였다. 각종 서류를 절차에 따라 작성하고 통신 영장을 신청을 했다.


이제 '나리 사건'에만 집중해야 한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다른 실종 신고는 신경 쓸 여유가 없게 되었다.

수사하는 동안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통신 허가장이 발부되었다. 나는 즉시 이동통신사 상대 영장집행 했다.


나리의 통화기록을 제공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아...", '나리의 학원친구..... '


형광펜을 이용하여 서류 위에 줄을 그어가며 살피고 또 살폈다.

그때, 실종수사팀 사무실로 누군가 방문했다.


건장한 남성이 나를 찾았다.

그는 나리의 사촌 오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요?"

밖에 나가서 찾지 않고 왜 여기에 앉아 있느냐며 항의했다. "이러니 경찰이 욕먹는 거야!"


나는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돌아가 기다릴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말 해서는 안 되겠네. 이봐요 내가 다 알아, 당신 말만 하고 그냥 앉아 있잖아! 내가 아는 판사에게 다 물어봤어! 당신 가만히 둘 거 같아! 잘해! 언론에 다 제보할 거야!"


나는 항의와 억지를 한 시간 넘게 가만히 듣고 있었다. 왜냐면 답할 가치가 없었고 이들 가족에게 나의 어떤 설명도 의미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도가 지나치자 팀장이 나서서 그를 설득하고 돌려보냈다.


나의 마음은 또다시 시궁창 되었다.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자료분석을 계속 이어갔다.

사건 발생 시점 전후에 걸쳐 특이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수사 대상자를 특정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 경찰서 건물 뒤로 해가 가라앉고 있었다.

'내일은 나리의 학원 친구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다음 날 나는 무용학원에서 나리의 친구를 만났다.

"왜 거짓말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니 제가 뭘요?" 나리의 친구는 약간 위축된 모습으로 답했다.


"나 경찰관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나리가 학원에서 나간 그날,  21시경 너는 나리와 전화통화 했고 21시 20분에 나와 통화했잖아." "그때 너는 나리와 연락한 사실 없다고 내게 말했어."

잠시 여유를 두고 나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22시문자메시지 주고받았더라."

"이제 그만하고 솔직하게 말해줘. 거짓말은 친구를 위하는 것이 아니야."


나리의 친구는 그제야 제대로 답했다.

"나리가 부탁했어요. 죄송합니다."

"나리가 그 오빠 좋다고 했어요. 일주일만 오빠하고 있다가 돌아올 거라고 말했어요."


나는 되물었다. "오빠?", "몇 살인데?", "그 녀석 전화번호 010 XXXX XXXX 맞지?"


나리의 친구는 나의 질문에 모두 답 해주었다.

"용기 내어 사실대로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리를 위한 것이니 절대 나와 이야기한 것 나리에게 전달하면 안 돼. 알겠지?"


"네."


나리와 함께 있는 남자는 22살 김○○이다.

이미 자료 수사를 통해 집주소 등 소재 정보를 확보해 두었다. 이제 검거하면 된다.


나는 동료 형사와 함께 문○동으로 갔다.

주거지 앞 노상에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기다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쯤 빌라 공동현관문이 열렸다.


나리와 김○○이 서로 팔짱 한채 나왔다.

이제 검거하면 된다.

'집중하자.'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김○○!, 실종아동등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한다.", "변호인선임 할 수 있고..."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러고 나서 수갑을 채웠다.


"라나리!, 너는 미성년자로 경찰관이 강제보호조치 할 수 있어. 그러니 조용히 가자."


경찰서로 이동 중인 차 안에서 김○○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얇은 법률이야기로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나는 한 마디만 하고 더는 말 섞지 않았다.

"당신은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해당되어 체포된 거야."


경찰서 도착 후 김○○을 절차에 맞추어 처리하고, 라나리를 그의 부모 입회하에 피해 조사했다.


나는 라나리의 부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리는 그 사람이 좋아서 자발적 가출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라나리의 부모는 내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사건이 마무리되니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동료와 함께 톡 쏘는 맥주를 마시며 그동안 들었던 모욕적 말을 마음에서 털어냈다.

밤거리가 왁자지껄 했다.

이전 14화 1)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의 실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