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도 많고 그러니 가까운 지구대에 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선배는 능숙하게 말했다.
우리는 '나친해'와 함께 역 근처에 있는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에게 소속 신분을 밝히고 조사실 사용을 협조받았다.
선배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김○○ 씨가 현재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잘 몰라요. 술 마시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마시고…."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그러니까 자세하게 말해줘요. 지금 우리가 이유 없이 이러는 거 아닙니다. 용의 선상에 '나친해'씨를 올려놓고 확인하는 것이니 의혹이 없어야 할 거 아니야!" 선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러니까 어디서 마지막으로 김○○ 씨 봤어요?"
"신○동 노래방인데, 저는 몰라요." 큰 덩치의 사내는 선배의 매서운 눈빛에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 뭘 계속 모른다고만 말해!" 선배는 물 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그 노래방 상호가 어떻게 돼요?"
남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상호는 모르겠지만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간 것 같아요."
(나는 근무 수첩을 꺼내 위치를 받아 적었다.)
"그다음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고, 저는 술에 취하고 피곤해서 먼저 나왔습니다."
선배는 질문을 마치고 그를 보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선배는 다시 담배를 태웠다."이 사람은 아니야. 거짓말하고 있지 않아."
나는 처음에 그를 범인이라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선배의 칼 같은 질문을 통해 그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다.
우리는 '나친해'가 알려준 곳으로 갔다.
거리는 각종 상점, 음식점으로 가득했다. 구시가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래방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은 4층 높이로 1층은 상점, 2층은 악기점, 3층은 음악 관련 학원, 4층은 공실 그리고 지하에 노래방이 있었다.
노래방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계단을 통해 각층을 살펴보았다. 계단과 복도에 CCTV는 없었다. 그리고 1층 상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운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고 출입구는 사슬로 잠겨있었다. 건물 구조가 일반의 그것 과는 조금 달랐다.
'구조가 복잡하네.'
선배와 나는 1층 상점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경찰관입니다. 실종자를 찾고 있는데 가게 앞 CCTV 영상 볼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나는 신분증을 제시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보세요. 하지만 조금 있으면 손님이 많아지니 빨리 끝내주세요." 상점 종사자가 말했다.
"여기 CCTV는 내가 볼 테니 홍 형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봐." 선배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음식점 밖으로 나갔다. 또 다른 CCTV를 찾고자 돌아다녔다.
'여기 좀 이상하다. 주변 다른 곳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건물 사 방향 주위에는 카메라가 없네.'
그때였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홍 형사, 여기로 다시 와봐, 찾았어. 근데 이상해."
"이상하다니요?"
"실종자 이○○과 '나친해'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어. 그리고 한 참 있다가 '나친해'만 혼자 걸어가는 것이 보여."
이렇게 말한 후 선배는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상한 것은 상점 앞 외부 카메라에 찍힌 것이 아니야."
"네? 그럼…. 내부 카메라?"
나는 선배가 있는 상점으로 돌아갔다.
상점 종사자가 CCTV 영상을 보고 있는 선배 옆에 서 있었다.
태연한 척 말했다. "형님, 뭐 좀 나와요?"
"홍 형사 왔네, 아니 아직은 없어. 좀 더 봐야 할 것 같아." 우리는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이때 상점 종사자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더 봐야 해요?"
"아, 네 10분만 더 볼게요. 죄송합니다." 선배는 말했다.
상점 종사자는 퉁명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섰다. 그러고 서는 계산대로 걸어가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작은 목소리로 선배는 내게 말했다.
"홍 형사, 저기 천장에 달린 CCTV 방향으로 몰래 가서 한 번 봐봐 실종자가 그곳으로 갔어."
나는 조용히 선배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갔다. 통로를 기준으로 양쪽은 방(룸)이 늘어서 있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작은 승강기가 벽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문이 있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살펴보았다. 어둠 속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바로 노래방 내부 문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노래방 내부 문은 잠겨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순간 너무 깜짝 놀라 소리칠 뻔했다.
사람 형상처럼 보이는 것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니 마네킹이었다.
'인제 그만 나가자.' 발을 옮겼다.
근데 구석에 작은 철제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조심스럽게 철제문을 열어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작은 방이 나왔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에는 비교적 깨끗하게 보이는 이불이 깔려있었다.
나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춰보았다.
그곳에 맨홀 뚜껑 크기의 원형 덮개가 방바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선배가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나와!"
상점 주인이 선배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인은 소리쳤다. "아니 경찰이면 다야! 왜 CCTV 영상을 함부로 보는 거야!"
선배가 대답했다.
"여기 종업원분에게 허락받고 봤습니다."
종업원이 말했다. "조금만 본다고 했잖아요!"
cctv 열람이 계속되자 종업원이 사장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사장과 종업원은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선배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선배는 고개를 옆으로 끄덕끄덕했다.
나는 그 뜻을 눈치채고 조용히 상점을 빠져나왔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사장은 과시하며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역 유명 변호사도 많이 알고 활동도 해!"
선배는 내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사장의 말을 끊듯이 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잘 못했네요. 몰라봤습니다."
선배는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몸을 돌려 빠르게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선배와 나는 확신했다. '대형 사건이다!'
이후, 늦은 밤까지 지역 일대 CCTV를 봤으나 실종자 이○○ 씨는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가는 모습은 있으나 어디에서도 나오는 모습은 없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실종자의 동생에게 전화했다. 사건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실종자의 동생은 ○○구청 관제센터 앞으로 한달음에 왔다.
선배는 실종자의 동생에게 말했다.
"형님 실종 사건은 범죄 수사 사건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실종자의 동생은 이미 나쁜 상황임을 눈치채고 있는 표정이었다.
선배 대신 내가 답했다.
"범죄 피해 확증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범죄에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됩니다."
실종자의 동생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태웠다. 나와 선배는 가만히 그가 다 태울 동안 기다렸다.
'그도 생각의 여유가 필요할 테니까.'
실종자의 동생이 선배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범죄 수사도 두 형사님이 하시는 거죠?"
나는 뒷목을 손으로 가볍게 잡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답했다 "저,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먼저 관할 문제가 있고, 현재 우리가 추측하는 범죄 종류를 고려할 때 강력팀에서 움직일 것 같습니다."
"○○경찰서는 못 믿겠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이어서 계속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형이 걱정된다며 ○○경찰서로 일전에 방문했었는데, 거기 경찰관은 이런저런 말을 하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 없었고요!"
"형이 실종 전에 112 신고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경찰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두 형사님이 맡아 주세요."
이번에는 선배가 대답했다.
"의견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결정권자에게 한번 건의해 보겠습니다."
선배는 담배를 손에 들고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경찰서 경찰관들도 훌륭합니다. 만일 우리가 끝까지 수사하지 못하고 넘기게 되더라도 그들을 믿어주세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실종자의 동생과 헤어지고 나와 선배는 경찰서로 이동했다.
아침에 보고하기 위한 서류를 만들고 퇴근했다.
손목시계는 새벽 3시를 알리고 있었다.
5시간이 지나고 나는 출근했다. 선배는 이미 먼저 자리에 앉아있었다.
선배는 팀장에게 수사 진행 보고를 했다.
실종 수사에서 범죄 수사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 실종자의 동생이 부탁했던 우리 경찰서 실종 수사팀에서 사건을 끝까지 이끌고 가길 바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도 알렸다.
팀장은 보고할 서류를 가지고 회의에 들어갔다.
나는 그사이 책상을 정리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팀장이 내려왔다.
"사건은 다시 ○○경찰서로 관할 이첩하고, 그간 고생했다." 그리고….
다른 말은 내게 들리지 않았다.
나와 선배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이 사건의 끝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매달렸던 사건이 이런 식으로 손에서 떠나자,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선배는 삼겹살과 소주를 한잔 하며 지친 몸을 달랬다.
선배가 말했다.
"홍 형사 고생했어. 나머지는 ○○경찰서 동료에게 맡기자고."
"네, 형님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우리는 이런저런 사건에 관한 소회를 밝히며 저녁을 보냈다.
이후 본 사건의 진행은 언론에 발표된 바와 같다.
[출처: 나무위키]
허 씨는 2021년 4월 22일 오전 2시경 김 씨에게 술값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하다가 화가 나 김 씨를 주먹과 발로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2021년 4월 21일 오후 7시 30분께 동네 후배 1명과 이 노래방에 와서 허 씨에게 선불로 30만 원을 내고 놀았다. 후배는 그날 오후 10시 30분에 노래방에서 나갔고, 김 씨는 혼자 더 놀다가 술값 1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금이 부족했던 김 씨는 허 씨와 실랑이하다가 112로 전화해 "술값을 못 냈다"라고 말한 뒤 잠시 업주와 대화했다. 이어 경찰관에게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다"라고 말하자, 경찰관은 김 씨가 신고를 취소한 것으로 여기고 먼저 전화를 끊었고 출동은 하지도 않았다.
2명의 말다툼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됐고, 결국 허 씨는 4월 22일 노래방에서 김 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 허 씨는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노래방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했고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했다.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는 허 씨가 4월 24일 승용차에 싣고 부평구로 옮겨 철마산 중턱 수풀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운영한 노래방은 구청에서 유흥주점으로 허가받은 업소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상황에서 유흥주점은 정부의 방역 수칙상 집합 금지 대상이었다.
피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전말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공개된 정보에는 실종 수사 담당자였던 나와 선배는 물론 우리 경찰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나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제부터는 독자 여러분도 필자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사건 전체가 평가되고 정리될 때쯤 피해자의 동생으로부터 장문의 글이 왔다.
[... 두 분의 형사님께 감사하고, 자칫 묻힐 뻔한 일이 두 분 덕에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의 내용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뉴스 사회면에 게재되는 범죄 소식과 내가 겪고 있는 범죄 현장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범죄로부터 누군가의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 상식 이상의 노력(비효율적인 노력)이 투입되는 현장에 대해,
경찰활동에 대한 과도한 절차적 통제에 대해,
머리와 팔, 다리가 각각 따로따로 움직이는 경찰조직에 대해,
기울어진 인권 보호에 대해, 등.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안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형사 절차 간소화, 경찰 업무 배분 및 수사방식 개선, 적극적 경찰활동에 의해 발생되는 부수적 문제에 대한 면책 규정,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한 언론의 해설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상식에 맞지 않는 제도들이 바른 방향으로 바뀔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나는 내 가족, 내 이웃, 내 동료, 내가 속한 시민 사회가 늘 많이 웃고 행복하기를 바란다.